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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3

비정상적 빈곤

2022.09.20

언제부터였을까.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기를 포기했다. 매일 들어가던 SH(서울주택도시공사)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청약 홈페이지에도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그곳에 나의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비정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주택은 ‘정상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혼인을 해야, 직계존비속이어야, 자녀 수가 많아야, 한 지역에서 오래 살아야, 적정한 수준으로 빈곤해야 유리하다. 국민임대주택 같은 넓은 평수의 아파트는 그야말로 수십 년에 걸쳐 빈곤을 증명해야만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증명서인 셈이다. 문제는 빈곤이 다양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공공임대주택 정책이 커버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빈곤층이 많아지고 있다.

5년 전,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동생과 함께 집을 나왔을 때를 돌이켜본다. 대학 등록금을 몰래 환불받아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짜리 반지하 투룸에 살았다. 인간에게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비인간적인 곳이었다. 외부에 있는 신발장에는 툭하면 물이 고여 죽은 나뭇잎과 바퀴벌레가 둥둥 떠다녔고, 벽을 때리면 텅텅 소리가 났다. 주거급여나 청년주거지원 같은 국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 청년이라는 이유로, 동생과 나의 소득은 원가족의 그것과 합쳐져 산정되었기 때문이다. 직계가족이 아니라 방계가족이라는 이유로 동생과 나는 ‘가족’이 될 수 없었다.

비정상가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삶

그 이후로도 계속, 나의 가족은 언제나 국가가 인정해주지 않는 ‘비정상’ 가족이었다. 직계존비속이 아닌 방계가족 혹은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동성 커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가난은 증명할 수 없어서 시장으로 내몰렸다.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혹은 애인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월세가 비싼 민간 임대 시장으로 가야만 했다. 열심히 돈을 벌었지만, 돈이 모이는 속도보다 보증금 올라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대출이 아니고서는 답이 없었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내게만 있을 리 없다. 내 친구들은 모두 우울하고, 가난하고, 나약하고, 퀴어다. 내 친구들만 있을까. 통계에 따르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 10% 이상이 퀴어다. 정상성의 확고한 기준이 되는 혼인과 혈연은 당신과 나에게 별나라 이야기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로 인해 ‘독립’ 자체가 임시적 상황으로 치부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인구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독립의 기본은 ‘1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1인 가구’에 오로지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재생산만을 보장하는 임시 거처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1인 가구는 혼인하지 않았으므로 미완적이고, 젊으므로 임시적이고, 원가족에 예속적이기 때문이다. 1인 가구가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잠시 존재하는 가구 형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체 노인 인구 중 독거노인 비율이 20%에 달하고, 전체 가구의 3분의 1 이상이 1인 가구인데도 말이다.

실제로 당신이 ‘1인 가구 청년’으로서 수도권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싶다면 5~6평짜리 원룸에 살 각오를 해야 한다. 최저주거기준 4.2평(14㎡)을 간신히 웃도는 숫자다. 간혹 8~9평짜리 원룸도 있지만, 그건 경쟁률이 치열하거나 자격 기준이 높거나 교통편이 좋지 않을 것이다. 5~6평대 주택이란 어떤 공간이냐. 최근 만들어진 청년주택 중에는 큼지막한 전동 휠체어가 한 바퀴 돌 수 없는 공간도 존재한다. 5평이란 그런 공간이다. 당신은 씻고, 자고, 먹고, 일하고, 공부하고, 노는 것을 단 5평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싫다면 결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하는 순간 많은 것이 주어진다. 전세 자금 대출의 대출 한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지원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의 범위가 달라지며, 주거지의 평수 자체가 달라진다. 아마도, 그제야 당신은 원룸에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주거 정책이 주거 정책으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기능하고 있기에 생기는 문제점이다. 국가는 지금 우리에게, 정상성에 편입하지 않으면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사람들은 빈곤마저 정형화된 틀에 가두어 그간 정책에서 배제되었던 사람들, 바로 정상성과 자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다.


글 | 사진. 김경서
3년간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주거권 운동에 몸담았다. 주거 영역에서 나타나는 차별과 소외 문제, 타 권리와의 교차성에 관심을 가지며 활동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영화, 문학, 남들 웃기는 일을 좋아하지만 소질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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