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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4 컬쳐

가난이 드러날 때 감춰지는 것들 ― tvN '작은 아씨들'

2022.10.04

ⓒ 이미지. tvN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난에 대한 드라마이다. 1회가 시작하면 낡은 빌라의 실내가 보이고, 자매인 인주(김고은)와 인경(남지현)은 케이크가 없어서 삶은 달걀에 촛불을 놓고 꺼야만 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경험”들이다. 드라마에는 이외에도 가난을 표현하는 여러 대사가 있다. 1회 방송국에서 면박받는 인경에게 선배는 “가난하게 컸어? 하도 잘 참아서”라고 멸시하듯 말한다. 3회 인주는 어렸을 때 동생을 병으로 잃은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때 가슴에 새겨졌어. 돈이 없으면 죽는다. 난 아버지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집에 돈을 가져왔으면 했어. 우리가 먹고, 우리가 살고, 우리가 죽지 않게. 사람은 가난하면 죽으니까.”라고 숨긴 기억을 털어놓는다.

드라마의 갈등도 가난과 부의 대립에 있다. 캐릭터들의 행동은 가난에 대한 의식에서 촉발된다. 서민들의 돈을 빼앗아 쌓아 올린 비자금 700억, 친구 화영(추자현)의 죽음으로 이 돈을 손에 넣게 된 인주는 좋은 겨울 코트를 갖기 위해, 동생들과 새시가 멀쩡한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더 이상 죽지 않게, 이 돈을 차지하고 싶어 한다. 반면 기자인 인경은 가난한 건 괜찮지만 도둑이 되는 건 부자들에게 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돈을 가질 수 없다고 한다. 막내 인혜(박지후)는 언니들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부자인 친구 효린의 집에 가서 살고 부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연기하는 무대 속 단역을 자처한다. 분명히 <작은 아씨들>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의 계급을 논하고 있다.

ⓒ 이미지. tvN

하지만 계급을 말한다고 반드시 가난을 표현하는 것일까? 진짜 가난을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드라마에 드러난 가난은 여전히 예쁘다. 모리 마리의 책처럼 “우아한 가난”이다. 상업 장르인 드라마는 가난의 누추함을 여러 겹으로 감춘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만들어낸 인주 자매의 빌라도, 화영의 빌라도 개성적인 톤을 띤 생활 공간이다. 여름옷에서는 어떻게든 가난한 티를 감출 수 있지만, 겨울 코트는 숨길 수 없기에 돈 생기면 좋은 코트를 사고 싶다던 인주는 360만 원짜리 르메르 코트를 입고 다닌다. 화영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갈 때 자신의 수수한 옷차림을 부끄러워하던 인주가 멘 가방은 로에베의 미니 플라멩코 백으로 약 180만 원 정도였다. 명품들은 아주 우아하게 가난을 연기한다.

서사 내적으로도 <작은 아씨들> 속 가난은 복잡한 빛을 띤다. 어린 시절의 생일 파티와 치약 대용 소금을 넘어 성인이 된 자매에게 닥친 가난은 막냇동생의 유럽 수학여행 비용 250만 원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지만 인경은 서랍 속에 데킬라 열 병 정도 넣어놓을 여력은 됐다. 호세쿠엘보와 비슷한 제품이라고 치면 20~30만 원쯤 되리라). 자매들이 망가진 창문 새시를 고쳐주지 않는 주인을 언급하지 않는 걸 보면 주택은 자가일 수도 있겠다 싶다. 무엇보다도 돈을 빌리러 갈 수 있는 고모할머니가 있다. 드라마 안에서 그려진 가난은 현재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기억 속에 남은 회한이나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는 욕망의 좌절에 가깝게 보인다.

진짜 가난하다는 건?

ⓒ 이미지. tvN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태도가 존재할 수 있다. 하나는 가난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을 가리킨다는 주장이다. 즉, 가난은 삶을 바꿀 기회의 제약이며, 그 때문에 일어나는 존엄의 손상이다. 다른 사람이 스테이크를 먹을 때 나는 돈가스밖에 먹을 수 없는 유의 불행이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없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은 도전을 꺼리지만 부모의 경제적 기반이 있다면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이것만으로도 가난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빈곤으로 생존이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 앞에서 박탈감을 가지고 가난을 말하는 건 소위 흙수저조차도 훔쳐 가는 행위가 된다. 우리는 기숙사에 홀로 남아 세상을 떠나기로 한 보호 종료 아동의 비극적 선택을 기억한다. 학교 급식이 끊기면 배를 채울 다른 길이 없는 아이들을 안다. 이런 가난 앞에서 자신의 박탈감에 바탕을 둔 빈곤을 말하는 행위엔 이미 품위가 없다. 드라마 내에서 인주는 큰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며, 인경은 주식 귀재에 남들 보기에 번듯한 방송국 직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난하다고 자기 정의를 한다. 드라마는 환경을 넘는 도덕성을 갖추기 위해, 혹은 환경을 이기려 비도덕적 선택을 하는 극한을 보여주기 위해 인물을 가난하게 만든다.

ⓒ 이미지. tvN

“진짜” 가난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경제학적으로는 명확해도, 일상생활에서는 그렇게 쉽지 않은 문제이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2023년 대한민국 중위소득을 4인 가족 기준 540만 964원으로 정했다. 이 중간값의 소득을 올리지 못하면 모두 가난한가? 나라에서 생계급여를 지급 받는 기준은 4인 가족 기준 162만 289원이며, 1인 가구는 62만 3368원이 된다. 그렇다면 월 소득이 이 이하여야만 가난하다는 뜻일까? 540만 원과 162만 원의 격차는 어마어마한데, 그 사이에 가난의 스펙트럼이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일까?

최근에 여성의 계급투쟁이 범죄가 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 몇 편이 있었다. 쿠팡플레이의 <안나>와 넷플릭스의 <애나 만들기> 같은 드라마들이다. 둘 다 평범한 여성이 상류층을 사칭하는 내용이다. <작은 아씨들>을 포함해서, 이런 드라마들은 맘카페에서 흔히 말하는 귀티, 풍요의 흔적에 대해서 말한다. 피부, 머릿결, 곧은 자세, 고급스러운 겨울 코트. 가난은 아무리 해도 피부에 쌓인 각질처럼 남고 부유함은 물광 피부처럼 속에서부터 빛난다는 담론들이다. 물론 반발도 있다. 이런 발언 자체가 가난의 낙인을 찍고 심리적 가난을 만들어낸다는 비판도 SNS에서 퍼져갔다. 좋은 코트를 사 입지 못하면, 주기적으로 피부와 헤어 관리를 받지 못하면 악기나 발레 레슨을 받지 못하면… 이렇게 흔적이 남는 가난의 범위는 확대된다. 중위소득을 넘어도, 대도시에 집이 있어도, 부모의 유산을 받지 못하고 때마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기 때문에 가난한 내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진짜 가난은 뒤로 더 물러나고 숨겨진다. 나는 드라마가 그려내는 건 대체 어떤 가난인가 생각하게 된다.

ⓒ 이미지. tvN

"그때 가슴에 새겨졌어. 돈이 없으면 죽는다.
난 아버지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집에 돈을 가져왔으면 했어.
우리가 먹고, 우리가 살고, 우리가 죽지 않게. 사람은 가난하면 죽으니까."


글. 박현주
이미지.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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