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영란(류현경)과 호철(김주헌)은 결혼 후 장사가 잘되는 영란의 카페로 사업장을 합칠 것을 고민한다. 두 사람에게 석(김신비)이라는 아르바이트생이 나타나며 상황은 역전된다. 석이 호철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 호철 가게의 매상이 눈에 띄게 오른 것. 이러한 ‘행운’이 석의 존재 때문임을 먼저 알아챈 영란은 석이를 자신의 카페에서 일하게 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낸다. 부부 사이에 누가 돈을 잘 버느냐에 따라 권력관계가 생기자 영란과 호철 사이에는 신경전이 시작된다.
<요정>은 우연히 나타난 행운으로 달라지는 사람의 심리를 그림과 동시에 가족애와 인간이 더 나은 선택을 통해 요행 없이도 삶을 더 낫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영화다. 다소 이기적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귀엽고 착하기도 한 평범한 여자 영란을, 류현경은 자기 옷을 입은 듯 자유롭게 그려낸다. 류현경은 벌써 데뷔 20년이 훌쩍 넘은 배우다. 공백 없이 연기를 해왔지만, 비로소 영화 현장이 즐겁다는 배우 류현경을 만났다.'
ⓒ 사진제공_싸이더스 / 영화 <요정> 스틸
<요정>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에 끌려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됐나.
신택수 감독님께 시나리오를 전달 받았고,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감독님이 ‘영란 역할에 현경 배우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셨는데, 저는 일단 시나리오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합심하는 일반적인 부부가 아니라 묘한 심리 싸움을 하는 관계가 잘 그려져 있었고, 장면들이 귀여우면서도 영화가 전반적으로 희망적이라 연기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하게 되면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접근하는 경우보다 그 영화 자체의 덕후가 되는 편이다. 이 작품도 그런 묘한 매력이 있었다. 평범했던 영란과 호철이 신비로운 상황을 맞이하면서 관계가 변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흥미로웠다.
‘요정’이라는 게 결국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주는 기회나 희망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류현경 배우에게 올 한 해 ‘요정’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내가 나의 요정이었던 것 같다. 긍정적인 기운도 스스로에게 얻는 편이다. ‘내가 나의 복덩이다.’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과 생각이 결국 복을 만들더라. 살다 보면 별의별 마음과 생각이 들지 않나. 결국 의지할 것이 나 자신이고, 내가 나에게 영감을 받게 되더라. 이전에는 친구, 부모님이 나의 요정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내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니까 내가 나의 요정이고 복이어야 맞는 거더라. 내가 나를 좋은 사람이자 배우로 잘 꾸려서 키워나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영란’은 실용적이면서도 다부지고, 착한 것 같지만 이기적이기도 한 평범한 여성이다. 류현경 배우가 맡으면서 이 캐릭터에 덧붙여진 설정이 있나.
처음 영란에 대해 생각했던 게,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여자라는 거였다. 영란은 설정상으로 ‘전에 결혼을 한 번 했던 경험이 있는 여자’였다. 감독님에게 ‘이게 결혼일까요. 그냥 같이 살았던 거였을까요’ 물어보긴 했다. 이성적으로나 친구 관계나 여러 가지로 경험치가 많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영란을 옥죄었을 것 같았다. 그 돌파구로 내 가정을 꾸리려고 했는데 거기서도 영란은 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석이가 등장한 후 남편과의 관계도 바뀌고, 언니에게 계속 집착하기도 한다. 남편이 생기고 자기 가정이 생겨도 영란은 계속 가족에 대한 갈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족에게 배신당하면 그 상처가 큰 여자일 것 같았다.
ⓒ 사진제공_싸이더스 / 영화 <요정> 스틸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어두울 거란 선입견이 생기지만 보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인물들이 나쁜 선택을 하지 않는다. 희망적이고 밝은 게 영화의 장점 같더라.
어쨌든 모든 선택의 갈림길에 사람이 큰 야망이나 욕망이 생기고, 스스로 안 좋은 기운을 만들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그런 부분에서 좋게 느껴졌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게 나를 해치기도 하고 나중에 돕기도 한다. 사람이 항상 옳은 선택을 할 수 없지만 그런 수많은 감정을 가지고 그래도 계속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 아닌가. 그런 담담한 메시지를 주는 게 좋았다. 최근까지 드라마 <트롤리>를 찍었는데, 거기서 길혜연 선배님이랑 이런 얘기를 자주 했다. “선배님, 현장이 어쩌면 이렇게 좋아요?”. 진짜로 그랬다. 스태프들이랑 매일 감탄하면서 현장에 갔다. <요정>을 작년에 찍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매일 현장에 가서 ‘좋은 걸 만들겠다’는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집중해서 연기를 하는 게 좋더라. ‘왜 이렇게 좋아요?’ 이런 얘기를 <요정>을 하면서도, <트롤리>를 하면서도 수백 번 한 것 같다. 감사하고, 복 받았다 하면서.(웃음) 예전에는 ‘우리 작품 너무 좋지 않아요? 우리 너무 잘하지 않았어요?’ 이런 얘기를 낯부끄럽다고 생각해서 잘 못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정말 내가 하고 있는 작품 하나하나의 순간이 행복하고 즐겁고, 소중하더라. 물론 예전에 찍은 영화들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 거다. 어릴 땐 모르고 그냥 넘어가버린 건데 요즘은 좋은 것을 온전히 잘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 순간이 어떻게 찾아온 건가.
나이가 들면서 발견하게 된 것도 있고. 최근에 독립을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원래도 혼자 있는 걸 좋아했지만, 온전히 혼자 있어 보니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집중력이 더 높아지더라. 단순히 청소를 하고, 영화나 책을 읽는 건데도 몰입을 하게 된다. 사실 좋은 현장을 이제 와서 만난 게 아니라 그동안에는 내가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 같다. 계속 좋은 현장에 있었어도 내 마음이 좋지 않으니까 즐기질 못했던 거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조바심 낸 것도 있을 거고. 촬영 가기 전에 보통 긴장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정말 기대가 된다. ‘아, 오늘은 또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 설레더라. 작년에 연극 공연을 했는데, 대사가 많아서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무대 위에서 다른 배우님들, 관객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공연에서도, 드라마 현장에서도 좋은 것만 보이더라. 요즘은 촬영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서 ‘아, 더 하고 싶다’ 이런다.(웃음) 전에도 분명 좋은 순간들이 많았을 텐데 그걸 잘 즐기지 못한 거는 다 내 마음 문제 같더라. 아, 이렇게 좋은 것을 온전히 즐기고 행복의 순간들을 잘 집어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사진제공_싸이더스 / 영화 <요정> 스틸
그래서인지 <요정>에서는 정말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전혀 꾸미지도 않고 말투도 일상적이다.
그래서 더 재밌었다.(웃음) 나중에 모니터링하는데 ‘내가 이렇게 말했구나.’ 하면서 다시 보게 되더라. 제 작품 중에 <아이>를 가장 많이 봤다. <아이>도 다시 보면 또 울게 된다. 원래 김향기라는 배우를 좋아했는데 같이 작업하면서 ‘덕업일치’를 하게 됐다. 혼자 향기 어릴 때부터의 영상 모아서 보고 그랬었다.(웃음) 향기랑 연기할 때도 그랬고, 이번에 주헌 오빠랑 연기할 때에도 일상적인 톤에서 스스럼없이 편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요정>을 보고 나온 친한 동생들이 “이거 그냥 언닌데?” 하더라.(웃음) 코로나19도 있지만, 갈수록 영화관에 가는 게 어려워진다는 걸 알고 있다. 집에서 너무 쉽게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지 않나. 그래도 영화관만이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요정>도 영화관에서 보고 나왔을 때 그런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영화다. 겨울에 관객들이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봐주셨으면 좋겠다.
글. 김송희
사진제공. 싸이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