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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8 컬쳐

신을 믿지 않는 자의 기도에 대한 응답, <요나단의 목소리>

2022.12.15


“<요나단의 목소리>는 동성애를 부정하는 기독교 속에서 퀴어 정체성을 찾은 소년이 어떻게 신앙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한순간도 늘어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신의 사랑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무책임한 말을 늘어놓지도 않았지만,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가혹한 교리를 버리라는 말 또한 쉽게 하지 않았다.”


ⓒ 이미지제공. 다산북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아기가 세계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아직 두려움을 모르는 시기라면, 청소년기는 이제 내 존재 밖의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하기 때문에 불안을 알게 되는 시기이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가 그런 불분명함으로 인해 조각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많은 이들은 청소년기를 정체성 혼란의 시기라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알 수 없었기에 발견할 수 없었던 자신을 만나는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 <요나단의 목소리>(정해나 지음, 전 3권, 놀)는 이제껏 믿었던 신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소년과 그를 지켜봐주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는 2000년대 후반, 경기도 내의 기독교계 사립 기숙학교에 입학한 조의영은 룸메이트로서 윤선우를 처음 만난다. 의영이 작고 조용해 보이는 모범생 선우의 개별성을 처음 인식한 것은 성가대에서 노래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였다. 변성기를 지난 듯 지나지 않은 듯 청아하게 울리는 목소리, 흔히 천상의 코러스라고 할 만한 목소리였다. 기독교 재단의 학교에 다니지만 신앙이 없는 의영은 목사의 아들인 선우의 성실함에 감탄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우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주말에 집에 돌아가지 않으며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사실도 눈치챈다. 그리고 선우가 사랑했던 친구 다윗, 그의 여자 친구인 주영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독립 연재 플랫폼 딜리헙에 연재되며 화제를 모았던 <요나단의 목소리>는 퀴어 청소년의 이야기를 여러 층위에서 정교하고 세밀하게 다룬다. 선우가 중학생 때까지 믿었던 신과 세계의 존재는 다윗을 만나면서 흔들린다. 노란 머리의 다윗은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선우에게 천 원을 빌려 가면서 선우의 세계에 처음 나타난다. 다윗은 불량한 이미지이기는 해도 선우와 똑같이 목사의 자녀였다. 교회의 의무를 성실히 다하는 선우와 달리, 다윗은 개척 교회 목사인 아버지를 거부한 후에 집에서 쫓겨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혼자 고시원에서 산다. 그가 벌이는 일탈 행동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정도이지만, 교회와 부모가 권하는 선을 넘어서 가본 적이 없는 선우에게는 모든 것이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그런 다윗이 좋다. 다윗과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는 그의 여자 친구인 주영은 다윗이 “광신도”라고 놀릴 정도로 여전히 독실한 신자이지만, 지금의 다윗도 받아들일 만큼 그를 사랑한다.

천국을 믿는 이는 지옥의 존재를 긍정해야만 하고, 지옥을 두려워한다면 천국을 믿게 된다. 선우는 다윗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자기가 이제까지 믿고 의지했던 신의 가혹함을 실감한다. 선우의 고통에는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신앙의 억압, 교리와 보수적 사회가 선고하는 헤테로 정상성의 강요, 대한민국 교육 체계가 만들어낸 이상적 학생상이라는 허상, 그리고 이 모든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우울증 등이 중첩되어 있다. <요나단의 목소리>는 한 소년을 단순히 어떤 이슈의 재현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접근한다. 다시 말하면 정해나 작가는 선우나 다윗, 의영이라는 인물을 특정 집단의 대표성을 가진 인물로만 조형한 것이 아니라, 각각 개별적 특성을 지닌 총체적 인물로 빚어냈다.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 이웃, 혹은 과거에 함께 지낸 친구들만큼이나 생생하며 그 내밀한 감정들은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것처럼 현실감이 있다

인정받거나 인정받지 못하거나, 그 모두가 사랑

ⓒ 이미지제공. 다산북스

첫사랑의 기쁨과 좌절, 신을 잃어버린 고통과 해방을 묘사하는 <요나단의 목소리>는 참으로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이다. 아름다움은 한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 사람들이 경험했을 진실한 감정을 돌이켜볼 때 느낄 수 있는 환희이다. 슬픔은 우리가 놓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소년 소녀들의 삶을 기억할 때 밀려오는 영혼의 흔들림이다. <요나단의 목소리>는 잔잔한 음악처럼 선우와 다윗, 의영의 마음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학창 시절의 소소한 즐거움, 일상적 갈등, 커다란 고통이 스민 이 작품에는 어떤 과장도 없다.

요나단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다윗과의 신실한 우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제목의 의미는 선우가 사랑한 다윗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 요나단은 순전한 마음으로 다윗을 신뢰하고 지지하였으며 사랑했다. 요나단이 산 위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개역개정> 성경 인용, 사무엘하 1장 26절). 이는 다윗에 대한 선우의 사랑을 뜻한다. 다윗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선우는 그를 잃음과 동시에 천국에 대한 회의 속에서 쓰러진다.

하지만 이 만화의 영어 제목 “Calls of Jonathan”까지 포함한다면, 요나단은 선우의 모든 고통을 지켜보고 옆에서 받아들여준 의영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우가 멀리 떠나려 했을 때, 의영은 믿지 않는 자의 신앙을 그러모아 신을 부른다. 선우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그러니 선우가 버리려 했지만 버리지 못한 신의 응답은 의영이라는 존재로 나타났고, 무신론자인 의영의 기도는 다시 돌아온 선우라는 존재로 응답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나단의 목소리>는 동성애를 부정하는 기독교 속에서 퀴어 정체성을 찾은 소년이 어떻게 신앙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한순간도 늘어지지 않는다. 이 작품은 신의 사랑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무책임한 말을 늘어놓지도 않았지만,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가혹한 교리를 버리라는 말 또한 쉽게 하지 않았다. “어렵고 복잡한 선우의 세상에서” 우리는 “절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아야” 한다. 바로 이렇게 할 때만 하느님을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기도가 모두 응답받을 수 있다고 정해나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세상에서 자신의 사랑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구원의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믿거나 믿지 않는 자들 모두 이 작품을 사랑하고 만다. 우리의 종교가 무엇이든, 이 안에서 심히 아름다운 자를 기이할 정도로 사랑했던 마음을 발견할 수 있기에.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글. 박현주
이미지제공.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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