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K님의 보금자리 (1)'에서 이어집니다.
임대주택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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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거리 상담원이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K님을 발견했다. 그 당시 거리 상담원은 K님을 인계하면서 처음에는 자신을 경계했지만 여러 번 말을 걸고 여성 홈리스 전용 시설에 대해 설명하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초기에 K님을 면접한 내용을 담은 기록지에는 언제든 편하게 씻을 수 있는 곳이 생겨 너무 좋다, 요즘 공중화장실 시설이 잘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씻는 게 참 힘들었다, 이렇게 말한 것이 적혀 있다. 발 뻗고 잘 수 있는 곳이라면 불편해도 참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고, 사기 피해를 당하며 사람을 못 믿게 된 데다 노숙을 하며 창피하고 무서워서 사람을 피하다 보니 대인 기피증 같은 게 생긴 모양이라고 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리고 일할 기회가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다, 방 한 칸은 마련하고 싶다는 소망도 적혀 있다.
K님은 세 달간 일시 보호 서비스를 받은 후에 고시원으로 나갔다. 이후 9개월의 고시원 생활을 거쳐 드디어 올여름에 본인만의 보금자리,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K님은 ‘언제든 눈치 안 보고 깨끗하게 씻고 걱정 없이 발 뻗고 잘 수 있는 방 한 칸’을 마련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1년 남짓 쉬지 않고 일했다. 시설의 공공 일자리 중 하나가 무료 급식 지원 활동이었는데, K님은 조리사가 없는 시간에 동료 홈리스 여성들의 식사를 챙기는 일을 했다. 한 달에 80만 원 남짓한 급여를 받아 고시원 생활비를 마련하고 임대주택 보증금을 모았다. 새집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몸만 들어가느냐며, 가구도 사고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도 장만해야 하니 일해야 한다며 더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찾았다. 간혹 《빅이슈》 잡지 포장 시간제 일자리 소식이 들리면 제일 먼저 달려와 참여하고 싶다고 했고, 긴급 비용이 필요한 신규 홈리스 여성에게 차례가 돌아가면 눈에 띄게 섭섭해했다. 하지만 K님과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는 안다. K님이 일, 일, 일 하는 건 꼭 생계유지를 위한 돈 욕심만은 아니라는 걸. K님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 동료 여성 홈리스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살아오는 내내 고단했고 절망도 했지만 K님은 절대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도무지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하고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던 K님에게 큰 선물, 아니 어쩌면 당연한 보상이었다. 길거리를 떠도는 홈리스 여성들에게 공공임대주택은 안정적 삶, 우리 동네 보통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다. 그러므로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은 홈리스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다. 최근에는 그 매입임대주택이 거의 공급되지 않고 있다. 걱정이다.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 보호 시설 ‘디딤센터’ 소장.
글. 김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