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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0

홈리스의 죽음은 곧 복지의 실패 ― 2022 홈리스추모제 (2)

2023.01.07


이 글은 '홈리스의 죽음은 곧 복지의 실패 ― 2022 홈리스추모제 (1)'에서 이어집니다.

애도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를 위하여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고들 하지만, 사회 소수자들은 죽음과 장례, 애도에서조차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추모팀에서 주최한 ‘애도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를 위한 공개 좌담회’에서는 무연고 사망이 빈곤 문제와 더불어 관통하는 쟁점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국내 1인 세대 비율은 2021년 9월을 기준으로 40%를 넘어섰다. 가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를 뜻하는 ‘비친족가구’ 수도 47만여 가구로, 가구원 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소위 말하는 ‘정상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 ‘가족’은 혼인이나 혈연, 입양만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국가가 지정한 이 관계는 죽어서도 이어진다. 죽음 이후의 모든 권리가 혼인 또는 혈연 가족에게 자동으로 위임되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있는 장애인은 어떨까.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뿐 아니라 탈시설 장애인 또한 애도받을 권리를 쉽게 박탈당한다. 가족이 있어도 장례를 치르지 않으려 하고, 시설에서 오래 지내는 동안 가족에게서 잊히기도 한다.

한 사람의 생은 죽음 후 장례라는 의례를 통해 비로소 완결된다. 그렇기에 철저히 상품화된 장례가 요구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무연고로 사망하여 장례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순간, 죽음에도 격차가 생긴다.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의 박진옥 활동가는 “격차 없는 죽음, 모든 사람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공영장례가 사회보장제도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재정적으로 어려워도, 삶의 동반자가 혈연 가족이 아니어도, 혼자여도 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 위에서, 죽음도 비로소 평등해질 수 있다.

삶의 한 조각을 남기며

2022년 12월 22일 동짓날 당일, 홈리스추모문화제가 시작되기 전 두세 시간 동안 마당행사가 열렸다. 그중 하나는 <여성홈리스가 나눈 집 이야기> 전시였다. 여성 홈리스는 남성 홈리스보다 범죄 타깃이 되기 쉽기에 스스로 숨기를 택한다. 그러나 거리에서 볼 수 없다고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성 홈리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논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여성홈리스 구술 생애사’ 팀은 여성 홈리스 당사자의 구술 생애사 기록 작업을 시작했고, 이번 전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본 전시에는 여섯 명의 여성 홈리스들이 자신들이 지나온 공간과 그 안에서의 삶을 각자 방식대로 풀어낸 작품들이 걸렸다. 전시를 살펴보던 중 무지개 사진이 눈에 띄었다. 높은 건물들 위 하늘을 크게 가로지르는 무지개였다. 사진 밑 메모에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서울역 하늘에도 무지개가 뜬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단정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다른 한 편에는 대형 천막 세 개가 설치되어 각각 거리사랑방, 사진관, 법률 상담소로 운영되었다. 거리사랑방은 북적이는 반면, 사진관과 법률 상담소는 상대적으로 고요했다. 사진관 부스에 들어가보니 배경지용 스크린과 카메라,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옆에 즉석 인화 기계가 놓여 있었다. 자리를 지키던 활동가에게 사진을 찍어드리는 의미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어디 가서 사진 찍기 어려우시니까, 찍어놓으면 쓸 데가 있잖아요. 어떤 분은 영정사진으로 쓴다고 하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구직할 때 쓰실 수도 있는 거고, 여러 용도로 쓰실 수 있도록 찍어드리고 있어요.” 세팅이 늦어진 탓에 아직 많이 안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여자 기록 명단을 보니 열 명 안팎의 이름이 보였다. 증명사진도, 무지개 사진도, 배경과 도구는 다르지만 각자의 삶 한 조각이 희망에 덧대어져 찍혔을 게 분명했다

어느 누구의 생명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벼이 여겨지지 않도록

추위와 어둠에 잠식된 저녁 7시, 홈리스추모문화제가 시작되었다. 사회를 맡은 활동가는 이 자리를 “빈곤과 차별과 배제 속에 살다 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런 죽음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서정숙 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의 위령무, 추모 영상,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합창교실의 추모 노래 공연으로 이어진 추모제의 다음 순서는 홈리스 사망자를 향한 추모 발언이었다. 서울역 건너편 동자동 쪽방촌에 살고 있는 김정길 씨가 제일 처음 추모사를 읊었다.

지난해 동자동 쪽방촌에서는 서른두 명이 사망했다. 김정길 씨의 기억에 가장 남는 사람은 제일 좋아했던 동생 고관석 씨였다. 그는 지난해 2월, 생을 마감했다. “평소에 관석이라고 불렀으니 여기서도 그냥 관석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아우입니다. 나이도 어립니다. 관석이는 2자가 가장 많이 들어간 2022년 2월 20일에 세상을 떴습니다. 원래는 눈이 다 보였는데 몸이 안 좋아지면서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또 오른쪽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 많았던 관석인데, 향년 52세로 너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추모 발언을 마무리하며 김정길 씨는 동자동 쪽방촌에서 사망한 서른두 명의 이름을 한 명씩 천천히, 크게 불렀다.

다음으로 거리 홈리스 박천석 씨와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의 추모가 이어졌다. 최봉명 간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숨진 돈의동 쪽방촌 주민 강신환 씨를 기억했다. 그는 2021년 11월 코로나19에 걸려 쪽방에서 쫓겨났지만 격리시설이 없어 확진 후 5일 만에야 시설로 보내졌고, 그로부터 이틀 후 숨을 거뒀다. 같이 아프지 못했음에 죄송하다며 최봉명 간사는 말을 이었다. “기억하겠습니다. 어르신과, 또 거리에서 코로나로 고통받고 죽어간 우리 이웃들의 죽음은 팬데믹 때문이 아니라 당연히 있어야 할 집다운 집이 없어서였다는 걸 기억하겠습니다. 어느 누구의 삶도, 어느 누구의 생명도 결코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벼이 여겨지지 않도록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변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후 노승혁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의 추모 공연, 2022 홈리스 권리선언문 낭독, 서울역 대합실 행진을 끝으로 추모제가 종료되었다. 추위를 뚫고 모인 시민과 활동가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가장 길었던 그 밤을 함께 지났다. 홈리스들의 내팽개쳐진 인권이 되살아나길 바라며, 어느 누구의 생명도 가벼이 여겨지지 않길 바라며.

추모문화제가 열린 2022년 12월 22일, 한쪽에서는 예산안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24일 새벽,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천억 삭감안에서 6천 6백억 원만이 증액된 채로 올해 예산안이 최종 통과되었다. 기어코 밤은 오고야 만다. 지독히 깊고 오랜 이 밤은 올해도 찾아올 것이다. 집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보장되어야 한다. 주거는 존엄과 맞닿아 있다. 존엄한 삶과 존엄한 죽음은 자격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 되어서는 안 됨을 다시 한번 곱씹는다.

여성 홈리스, 젠더 관점이 부재한 제도의 칼날
2021 보건복지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홈리스 수는 14,404명, 그중 3,344명(23.2%)이 여성이다. 3,000명이 넘는 작지 않은 규모이지만 남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그러나 거리와 시설, 쪽방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실태 조사의 배경을 보면 결과의 정확도를 의심하게 된다. ‘여성홈리스 증언대회’에서 홍수경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남성보다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운 거리의 여성들은 찜질방, PC방, 만화방 등 돈을 내고 생활하는 공간에서 주로 머문다.”고 말했다. “소극적인 실태 조사가 여성 홈리스의 존재를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 제도에서도 여성 홈리스의 존재는 지워지고 있다. 2012년 제정된 ‘노숙인복지법’은 여성 홈리스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2019년에 개정되었으나 여성 홈리스를 위해 구체적으로 정책화된 것은 ‘보건위생물품 지원’뿐이다. 시설들 또한 대부분 남성 위주이며, 무료 급식소나 노숙인 지원센터를 찾아가도 여자라는 이유로 욕을 듣거나 아예 이용을 거부당한다.

홈리스 진입 경로와 홈리스로서 겪는 문제 등에서 여성과 남성은 매우 다르다. 여성 홈리스는 아이가 있는 경우도 많다. 질병 문제에서도 차이가 크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남성 홈리스는 15.8%, 여성 홈리스는 42.1%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했다.

여성 홈리스인 사계절(활동명) 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불안정한 곳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던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간질을 앓지만 주로 밤에 발작이 일어나는 탓에 장애인 등록을 위한 증명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혼자 삽니다. 아이들을 멀리 보내야 할 때는 제가 정말 잘못한 것 같아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수급비를 아무리 아껴도 전혀 모을 수 없다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좁더라도 안전하고 편하게 숨 쉬며 잘 수 있는 집, 그런 집이 있다면 우리 애들도 아무리 없이 살아도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젠더 관점이 부재한 제도의 칼날은 여성을 향해 있다. 젠더 특성을 반영한 복지 지원 체계 수립이 시급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홈리스가 겪는 문제를 젠더 관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여성 홈리스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문제 해결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하므로.


글·사진. 원혜윤
사진제공.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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