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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0 에세이

일시정지는 없다

2023.01.16

2023년 1월 3일은 자취를 시작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주변에 첫 독립 소식을 알릴 때마다 ‘집이 멋있을 것 같다’, ‘잘 꾸며놨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내 이미지가 나쁘지 않은 듯해 흐뭇했지만, 동시에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초대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무언가를 꾸미는 데 취미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든 다이어리든 거의 모든 것에 그러하고 사무실과 집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짐 싸서 튀어 나가야 하는데 뭐가 많으면 그럴 수가 없으니까.(대체 무슨 일이 생길 거라 예상하기에…)

그런데도 독립하게 되자마자 샀던 물건은 스크린과 빔프로젝터였다. 도망갈 때 챙기기 거추장스러운 물건 1위가 바로 스크린과 빔프로젝터 아닌가.(출처 미상) 하지만 영화를 즐겨 보는 나로선 한 치의 고민도 없었다. 다음으로는 스피커였다.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음향도 받쳐줘야 하니까. 그런데 이 스피커가 복병이었다. 이왕 사는 거 스테레오로 장만하고 싶고, 그러려면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스피커 자체도 괜찮은 모델이면 좋겠는데, 괜찮은 모델을 찾아보니 가격이 안 괜찮네….

고민만 몇 개월 하다가 나름의 합의점을 찾아 적당한 제품으로 결국 샀다. 산 지 7개월가량 지난 지금, 누군가 작년에 산 것 중 가장 만족스러운 제품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빔프로젝터보다 스피커라고 답할 것이다. 스피커는 적막한 작은 집을 자주 살려냈다. 스크린을 내리고 전원을 연결해 뭘 볼지 몇 십 분 동안 고민하지 않아도, 그저 아이폰으로 노래를 틀고 블루투스 연결만 해도 방의 무드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오랫동안 음악을 사랑해왔지만 내 공간을 채워주는 음악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작년의 나는 자주 춤추고 종종 생각에 빠졌으며 이따금 구원받았다.

2022년은 참 리듬감 넘치는 해였다. 끝과 시작이 동시에 덮쳤고 도전과 포기가 동시에 요구되었다. 와중에 둥둥거리는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일은 여러 모로 위로가 되었다. 올해는 어떤 리듬의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재생 버튼은 눌렸다!


| 사진. 원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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