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선 넘는 여자들, 위르실라 메이에 <라인> (1)'에서 이어집니다.
죽기 살기로 불안과 싸우기

ⓒ <라인> 스틸 컷
이 집안 여자들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됐을까. 그녀들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관계에 관한 불신과 불안이 감지된다. 마르가레트의 울분은 상대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제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을 때 불같이 일어난다. 많은 경우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는 걸 마리옹의 말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엄마가 청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도 그녀의 첫 반응은 엄마를 걱정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난 몰랐는데, 왜 말을 하지 않았어, 왜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했어!”가 아니던가. 자신이 지워지고 부정당했다는 데서 오는 참을 수 없는 울화가 그녀를 압도해버린다. 크리스티나에게도 불안의 기운은 여러 차례 감지된다. 거슬러 올라가면, 원치 않은 임신으로 엄마가 되어야만 했던 순간부터였을까. 마르가레트를 제 인생을 망치러 온 이기적인 딸내미로 생각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불안한 건 마리옹도 마찬가지다. 어떻게든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이 어린 소녀를 경계선까지 긋게 했고, 그럼에도 엄마와 언니 모두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보이지 않는 신을 향해 간절히 기도한다. 불안이 그녀들을 위협하는 동시에 불안이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편을 찾게 만든다. 영화는 이러한 모녀 사이의 상황과 지경을 과민하게 바라보거나 더욱 부추길 생각 없이 거리를 유지하며 지켜볼 뿐이다. 과연 이들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이 어떤 작용을 해줄지,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경계선이 지워지면 또 어떻게 될는지.
접근 금지 명령이 해제되던 날, 한동안 종적을 감췄던 마르가레트가 마침내 등장해 집 안으로 들어선다. 딸이 아직도—어쩌면 계속해서—어색한 크리스티나는 그들 사이의 어색한 공기를 참지 못해 정신없이 말을 늘어놓는다. 오히려 조용하고 차분한 건 마르가레트다. 그녀는 엄마를 향해 시선을 둘 뿐이다. 잠시 그녀들의 시선이 마주쳤을까. 하지만 그 순간을 버티지 못하고 먼저 눈을 돌리는 쪽은 크리스티나다. 모녀의 시선은 다시금 어긋나고,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본다. 과격하고 긴장감 넘치던 모녀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흐르고 휴지의 시간이 찾아온다. 성마른 애착이나 섣부른 화합 없이 불편한 것을 불편한 대로, 같은 공간 안에서 그렇게 선을 지키기로 한다. ‘존경의 전제는 떨어져 있는 시선, 거리의 파토스’라고 어느 철학자는 말하지 않았던가. (한병철, <투명사회>, 문학과지성사, 2014) 푸른 선이 사라지자, 그녀들의 헐벗고 거친 내면의 불안이 잠시 누그러져 있다.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가족을 생각하면 푸른 선이 떠오를 경우가.
[작가 소개] 정지혜
영화평론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쓴 책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영화 ‘해피 아워’ 연출노트와 각본집>(2022, 모쿠슈라)의 한국어판에 평설을 썼다.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공저, 2021), <아가씨 아카입>(공저 및 책임 기획, 2017) 등에 참여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쓸 일이 많지만, 언제든 논–픽션의 세계를 무람없이 오가고 싶다.
글. 정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