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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5 컬쳐

새해는 세 번 온다는 말 (1)

2023.03.17

ⓒ unsplash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국인에게 새해는 세 번’이라고 주장하는 게시물을 봤다. 첫 번째는 양력 1월 1일, 두 번째는 음력 1월 1일, 세 번째는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 2일이라는 내용이었다. 글이 올라온 날은 3월 2일.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으니 진정 새해 다짐을 실행할 때라고 글쓴이는 강조했다.

게시물에 대한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이제부터라도 갱신된 삶을 살겠다고 결의하는 유형이다. “올해도 드디어 왔구나….” “정말 마지막 기회군요. 오늘부터 갓생 살겠습니다.” “(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도 새 학기 새 마음 가보자고~” 등의 댓글이 대표적이다. 둘째는 어떻게든 더 미뤄보려는 유형. “조금만 지나면 2/4분기의 시작인 4월 1일인데, 그때 한 번 더 어떻게 안 될까요?” “죄송한데 하반기 시작인 7월 1일도 있는데요? 그때가 진정한 시작입니다.”와 같은 내용이 이에 속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둘 다 한심하긴 마찬가지인데?’라는 생각을 떠올렸다면, 죄다 남의 얘기처럼 느껴진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인가 보다. 나는 아니라서 글과 댓글에 격하게 공감했다. 심지어 후자에 속해 있었다. 새해 다짐의 반 이상을 지키지 못했기에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고픈 심정이었다. “아직 나의 2023년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미루기’라는 질환

ⓒ unsplash

작년까지는 ‘새해 계획을 못 지켰다’는 죄책감을 별로 못 느꼈다. ‘대단한 계획 안 세우면 못 지킬 일도 없지 않음?’이라고 여기며 애초부터 큰 쇄신을 꾀하지 않았다. 올해는 좀 다르다. 나름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약 6년간 지식·교양 방송에 출연해왔다. 수업을 듣고 질문하는 학생의 역할이었다. 프로그램은 질문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든다는 기획 의도 아래, 매주 각 분야의 전문가가 나와 학생 역할의 패널들 앞에서 강연하는 형식을 취했다. 교실이 질문과 토론이 가능한 곳이라는 지향을 보여주고, 시청자를 대신해 현장에서 질문하여 보는 이의 흥미를 유발하고 이해를 돕고자 패널은 존재했다.

나는 그 일이 퍽 마음에 들었다. 프로그램의 의도와 지향에 공감했고, 동료들도 대체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배우며 돈도 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관심 없던 분야의 강의를 억지로 들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듣기 전에 거부감 들었던 주제도 막상 듣고 나면 흥미로웠고 스스로의 외연이 확장됨을 느꼈다.

고민되는 것은 정체성이었다. 어느덧 방송 일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방송인’이 내 정체성의 근간은 아니라고 여겼다. 우연히 제작진의 눈에 들어 몇몇 프로그램을 함께하더라도 상황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참여했던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반년 이하의 기간을 함께한 것이었다. 6년을 동행하는 일은 특수했다). 스스로가 나이에 맞게 성장하고 있는지도 의심됐다. 계속 학생이라는 정체성에 안주하며 여기 앉아 있어도 되나? 슬슬 ‘배우고 흡수하는 자’에서 ‘가진 것을 나누는 자’로 이행해야 하는 때 아닐까?

ⓒ unsplash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한 ‘내 것’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대학원에 진학해야 할지, 한다면 누구의 연구실에 들어가야 할지. 어쩌면 그냥 방송통신대에서 타 전공 학사를(내 전공은 의외로 경영학이다) 취득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을 전공으로? 나는 교육학, 심리학, 사회학, 언론학, 예술 분야 모두에 흥미를 느끼고 있지 않은가? 고민하다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어쩌면 ‘가성비’ 떨어지는 학위 취득보다 내일배움카드가 지원하는 자격증 취득이 낫지 않을까?

이렇게 고민만 하다 2023년이 왔고, 6년간 함께한 프로그램을 그만두게 됐다. 이것을 쇄신의 기점으로 삼자고 마음먹었다. 삶의 분기점이 될 중요한 결정을 위해, 올 한 해 구체적인 준비를 할 것이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예술계 및 학계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자.

기억력 감퇴가 심각하다는 자각에 의한 결심이기도 하다. 지식·교양 방송 프로그램에 289회 동안 출연하며 남은 지식이 한 줌이다. 그나마도 단편적이고 막연한 정보일 뿐, 남에게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수업을 들으며 새로이 배운 것과 그에 대한 해석을 그때그때 글로 남겼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이제부터라도 꾸준히 써서 남기자고 다짐했다. 보고 생각한 것들이 그저 휘발되지 않기 위해, 원고 의뢰가 있든 없든 소셜 미디어 개인 계정에 올리면 되지 않겠는가? ‘인스타그램 팔로워 만 명’이라는 욕망을 가졌다면, 소셜 미디어를 더 ‘열심히’ 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두 달 넘게 소셜 미디어에 어떤 게시물도 올리지 않았다. 여러 책을 읽고 영화를 봤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상 감상평을 올리자니 (쓰지도 않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 unsplash

작년 말 신생 플랫폼 A의 에디터가 ‘법카’로 밥을 산 일이 있었다. 식사 자리에서 그는 A 플랫폼을 설명했다. 정보의 파편이 아닌, 맥락을 이해하기 쉽고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콘텐츠의 플랫폼을 지향하며, 광고 없이 콘텐츠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참여자들이 자신의 콘텐츠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꾸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도 콘텐츠 창작자로 참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플랫폼 내 콘텐츠의 다양성을 위해서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도움 되는 일일 거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준 밥이 맛있었다.

A 플랫폼에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싶었다. 부담감을 느끼며 이걸 써볼지 저걸 써볼지 구상하다… 구상만 했다. 아무것도 안 썼다. A 플랫폼에 쓸 글도 안 쓰면서 소셜 미디어 활동을 열심히 한다면 얄미운 사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에 서평도 영화평도 안 썼다. ‘개소리 아냐? 혼자 끼적이고 소셜 미디어에는 안 올리면 되잖아?’라는 내면의 소리는 무시했다. 무시하고 싶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점점 웹툰, 소설, 영화, 온라인 커뮤니티에 몰입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리서치하는 것’ ‘예술적 소양을 쌓는 것’이라는 합리화가 그 시간을 지탱했다. 보다 보면 무언가 번뜩 떠오르는 순간도 있었지만, 쓰지 않아 결국 휘발됐다. 그리고 ‘어쩔탱고’ 마감일이 다가왔다. 그래, 이 원고를 쓴 뒤에는 정말 소셜 미디어든 뭐든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이 글의 마감마저 (또) 늦었다. 담당 기자가 다급함이 느껴지는 문자를 보냈다. “저희 내일 인쇄 넘기는 날입니다 ㅜㅜ 원고 주시면 교정교열, 데스킹, 디자인 작업 등 해야 할 과정이 많은데요… 원고 마감 부탁드립니다!”

이게 무슨 민폐인가. 인정하자. 이건 병이다. 그리고 나는 치료가 필요한 환자다.

이 글은 '새해는 세 번 온다는 말 (2)'로 이어집니다.


글. 최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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