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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6 컬쳐

억울하지만 결백하진 않은: <타르>를 보며 현실을 생각하다

2023.04.10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감상을 망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걱정되시는 분은 영화를 먼저 본 후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영화 <타르(TAR)>의 주인공은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다. 이렇게만 말하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같지만, 타르는 가상 인물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이제까지 단 한 명의 여성 지휘자도 배출한 적이 없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타르가 얼마나 훌륭한 음악가인지 보여준다. 약간의 신경질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충분히 허용 가능한 범위 안에 있으며 예술적 성취와 그걸 자신 있게 드러내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특히 초반부 대담 장면은 지독하다시피 길게 담아내 그를 경이로운 인물로 만든다. 타르는 독보적인 예술가이면서 욕망을 불태우는 야심가이고, 레즈비언이며, 냉혹한 교사다.


영화 시작부는 타르 인생의 정점이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타르의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관객은 타르의 입장에서 그의 몰락을 바라보게 된다. 몰락의 시발점이자 결정적 문제는 미투 파문이다. 그리고 수업 중 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발언도 도마에 오른다. 그런 면에서 이 캐릭터 설정은 묘한 구석이다. 그는 여성이고 성소수자다. 일반적으로 미투 가해자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언급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영화 끝까지 그를 바라본다. 만약 주인공이 성공한 중년 이성애자 남성 예술가였다면 관객은 선입견에 따라 영화 초반부에 그에 대한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된 사건이 정말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영화 속에서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젊은 여성 예술가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걸 키워주긴 하지만, 거기서 연애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묘사된다. 육체적 행동이 일어나진 않지만 관객은 충분히 그런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다. 무언가를 강압적으로 할 사람은 아닌 듯 보이지만, 상하관계 속에서 충분히 가스라이팅은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교육 중 학생에게 한 막말도 악마의 편집이 개입되어 있긴 하지만, 그의 수업 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애매하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 끝까지 어떤 진실도 알지 못한 채 타르의 몰락을 지켜본다. 그는 억울하긴 하지만 결백하진 않다. 그게 영화를 다 본 뒤 타르에 대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다.

영화 <타르> 스틸

현실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찾아보면 ‘예술가의 사적인 삶과 예술은 분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그건 그냥 각자의 선택에 맡기면 된다. 무슨 짓을 저질렀든 그의 예술이 좋다면 즐기면 되는 거고, 그 일이 떠올라서 예술도 도저히 즐길 수 없다면 즐기지 않으면 된다. 다만 남이 즐기든 말든 시비 걸 건 없다.

문제는 누군가의 인생이다. 우리는 타르와 비슷한 사례를 인터넷에서 자주 본다. 방송에 출연한 누군가의 과거 행동이나 발언이 소환되어 올라온다. 학폭도 있고, 성범죄도 있고, 성 관련 스캔들, 마약 기타 등등 많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과몰입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정확히는 몰입을 하지 않는다. 그냥 드러난 사건을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일단 욕부터 한다. 하지만 <엑스파일>처럼 진실은 언제나 저 너머에 있다.

우리가 시민으로서 신경 써야 할 건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졌는지, 만약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본의의 의사인지 압력이 작용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처벌이 정당하게 이루어졌다면 그걸로 됐다. 그게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한 규칙이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계속 싫을 수 있다. 그럼 그냥 싫어해라. 이해한다. 우리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그 감정을 타인에게까지 강요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피해자의 감정을 빌려 가해를 저지르지 마라. 그건 본인에게도 피해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확히 해야 한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잘못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하고도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마녀사냥은 이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늘 어렵고 종종 무섭다. 세상에는 정말 칼같이 나뉘는 경우란 없으니까.

영화 <타르> 스틸

  • 추천 콘텐츠

제목: 타르(TAR)

  • 포인트

논란: ★★
현실고증: ★★★
연기: ★★★★★

  • 소개

오후(ohoo)
비정규 작가. 세상 모든 게 궁금하지만 대부분은 방구석에 앉아 콘텐츠를 소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사적인 연애사> <나는 농담으로 과학을 말한다> 등 여섯 권의 책을 썼고 몇몇 잡지에 글을 기고한다.


글.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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