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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6 에세이

69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일

2023.04.14

종종 예전에 아르바이트하던 장소 인근을 지나칠 때면, 그 일이 어떻게 끝났었는지 회상한다. 최저임금을 안 주는 곳부터 근무시간을 어기는 곳도 겪어봤지만, 제일 억울했던 건 어느 스무디 가게였다. 진짜 갑자기 ‘짤렸다’. 개업 3주 만에 인건비가 많이 든다며 “내일모레까지만 나오라”고 했다. 가게에 정을 붙여가는 중이었고 일 잘한다고 칭찬도 많이 받아서 더 슬펐다. 카페 아르바이트 경력이 길어서 시급도 높았다. 그러고 보니 첫 출근 때 이런 말을 들었다. “못하면 시급 다시 깎을 거야.” 그게 복선이었을까.

지난 3월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70대 경비 노동자 박 모 씨가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서 관리소장에 의한 ‘갑질’ 피해를 호소했다. 경비원들은 간접고용과 더불어 3개월씩 ‘쪼개기’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고, 재계약 걱정에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절하지 못한다. 3월 공개된 직장갑질119의 <2023 경비노동자 갑질보고서>에는 경비원, 미화원 등 ‘공동주택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갑질의 교차점’이 기록되어 있다. “자신보다 못하면 내려 보잖아요. 경비원을 그렇게 보는 거예요. 천하게 여기는 거라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안 보고 경비라는 존재만 본다니까. 그렇다고 어디다 하소연도 못 해요. 내 주장을 하면 그냥 잘리는 거거든. 3개월짜리 계약인데, 재계약 안 해주는 거지. 어디 갈 데도 없잖아.”(<주간경향>, 2022년 12월 11일, “여전히 경비원을 아래로 봐요… 불평하면 잘리고”)

정부가 3월 6일 ‘주당 최대 69시간’의 노동을 허용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공개했다. 기세등등했던 첫 방안과 달리 시간대와 조건이 나날이 바뀌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초 발표에서 노동부가 내놓은 자평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게 근로시간에 대한 노사의 ‘시간 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인 진일보”. 사전적 의미로 풀면 ‘가장 주요한 권리’를 노동자에게 돌려주겠다는 뜻이다.

박씨는 앞선 3월 8일 관리소장의 지시로, 경비 반장에서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주당 노동시간이 69시간이었다면, 그래서 주 7일 기준 최대 80.5시간을 일하게 되었다면, 그에게 찾아왔을 몇 번의 복선 앞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최저임금을 맞춰달라고 했다가, 하루 최장 업무 시간을 지켜달라고 했다가, 결국엔 아무 불만 없이 열심히 일하다가 잘려본 나는 그 답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글.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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