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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6

재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2)

2023.04.13

이 글은 '재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1)'에서 이어집니다.

<우사단로10길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무질서와 욕망 그 사이에서
동네가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마을버스, 자가용, 택시, 택배 차량을 피하려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고 싶어서 온 곳인데, 제대로 걸을 수 없으니 파악은커녕 빙빙 돌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애써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걷다 보니 ‘임대’라고 써 붙인 빈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꽤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것인지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곳도, 이제 막 정리한 후 깨끗해진 곳도 있었다. 그냥 ‘비어 있다’고 보기엔 그 수가 많았다. 얼추 세어봐도 다섯 곳은 넘었다. 반면에 운영을 계속하고 있는 가게도 보였다. 이런 애매한 상태에서는 현재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사단로10길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재개발 사업이 진행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길을 걷다 마주한 풍경 속에 무질서와 무관심의 순간들이 포착되었다.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경고문을 무시한 채 곳곳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와 딱히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빈 곳들, 그 앞에 주차된 차들. 가게마다 ‘주차금지’ 스티커가 부착된 것으로 봐서는 무단으로 주차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추정해볼 수 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건물의 신축과 증축이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더 나아가 개·보수를 하지 않은 곳도 많이 보여서 건물의 보존,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늘을 수놓은 전깃줄, 갈라진 길바닥, 정리되지 않은 짐들. 한남3구역의 경우 건물주가 외부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거주하지 않는데, 재개발이 진행되면 철거될 곳이니 동네가 어떻게 변해가든 관심과 애정이 적을 수밖에 없다. 세입자는 언제든지 떠나야 할 처지에 있으니 동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다. 결국, 누군가의 욕망이 투영된 부동산 투자 대상으로서의 재개발 대상지 동네는 무관심으로 방치되며 무질서한 상태로 이어진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 그 자체다.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걷는 내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쓰레기 투기>

아시겠지만, 재개발 구역에는 이해관계가 많잖아요. 주민들 이주 관련해서도 그렇고. 다양한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이야기도 들어보니 보상 문제 때문에 너무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어르신들한테는 시장도 가깝고 추억이 깃든 너무 좋은 동네라 더 머물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러다 어떤 분과 대화를 하는데, 동네에 안녕을 전하는 것도 우리를 위한 일 같다고 하셨어요. 그분은 재개발조합원이셨거든요. 그 말을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누군가는 이걸 기다려왔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좀 마음이 편해졌어요.

재개발 구역을 기록하는 A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그 전까지 이곳을 잘 기억할 수 있어야겠다. 그러려면 공간을 더 많이 사용하고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개발 구역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B

저는 ‘재개발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는 아니거든요. 이 동네만 봐도 개발은 필요해요. 왜냐면 할머니들이 연탄을 나르시거든요. 불편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서 개발은 필요한데,다만 ‘그 결과물이 아파트여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그 이전에 사람들이 재개발이나 아파트에 대해서 생각해볼거리를 조금 만들어보자. 인식에 변화를 주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미 변화하는 곳들은 반대하는 것보다는, 그것도 어찌 보면 누군가의 욕구를 막는 일인 거잖아요. 강한 이미지의 사회운동보다는 문화적인 활동으로 만들어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다니는 거 같아요.
재개발 구역 인근에서 카페 운영 및 문화 기획을 하고 있는 C

<강 너머 풍경>

여름에 처음 갔을 땐 너무 안타까웠어요. 집집마다 나무, 꽃, 풀이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거든요. 아름다웠어요. 한창 자외선이 강할 때라 집들도 반짝반짝 빛났고요. 가을엔 그보단 빛이 바랜 모습이었고, 힘이 빠진 모습이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빠져나간 곳이라는 게 확실히 느껴지더라고요. 눈이 온 날엔 모든 게 하얗게 뭉뚱그려져 잠시나마 평화로워 보였고요. (중략) 사회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었어요. 재개발로 득과 실을 보는 사람이 나뉘고, 당연한 말이지만 득을 볼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 어떻게든 진행되는 거겠죠. 거칠게 말해, 결과적으론 새 아파트를 위한 파괴 같아요.
재개발 현장 기록을 처음 해보는 D

재개발에 대한 의견에는 정답이 없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생각에 맞춰서 행동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다만 재개발을 이유로 공간을 방치하는 건 지양해야 할 것 같다. 사라질 것을 알지만 머무는 동안에는 애정을 가지고 돌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규칙만 잘 지켜도 방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네를 돌보고 살피는 일은 내 삶을 돌보는 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질문하고 마음을 다독이며 태도를 달리한다면 남은 시간 동안 소중한 추억 하나라도 더 만들고 아름다운 헤어짐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 우사단 마을 페이스북(www.facebook.com/wosadan)에서 우사단로10길에서 진행된 행사나 그곳의 다양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 소개

이경민
SNS ‘서울수집’ 계정 운영자 & 도시답사 및 기록가.


글 | 사진.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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