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즈 플래닛> 화면 캡처
2017년 6월 16일은 나에게 있어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직함이 가져다준 사명감 아래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응원한 연습생이 아이돌로 탈바꿈하는 날을 잊을 수 있을 리가. ‘당신의 소년에게 투표하세요!’ 101명의 소년이 노래에 맞춰 춤추며 날 뽑아달라 외쳐대던 풍경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6월 16일, 데뷔가 결정되는 결전의 날 창피함을 무릅쓰고 “잘 지내? 다름이 아니라 오늘 밤 11시에…”로 시작하는 장문의 문자를 주변인들에게 전송하던 내 모습도. 얼핏 보면 평범한 안부 문자 같지만 잘 읽어보면 문자 투표해 달라는 소리다.
다행히 내 ‘픽’(투표한 연습생)은 무사히 데뷔했지만, 프로젝트 그룹이다 보니 그룹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해체의 순간이 찾아왔다. 해체 콘서트의 마지막 무대가 끝나고 한 명씩 차례대로 나와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 뒤, 무대 밑으로 퇴장하는 잔혹한 연출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모든 멤버가 떠나고 마지막에 남은 멤버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클로즈업된 전광판을 보며 다짐했더랬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다시는 보나 봐라!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짐이 무색하게도 나는 또 직함이 가져다주는 사명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번에는 ‘국민 프로듀서’가 아니라 ‘스타 크리에이터’란다. <보이즈 플래닛>의 시그널송 ‘난 빛나’는 분명 처음 들어보는 노래지만 지나치게 귀에 익는다. 우린 빛나, 나, 너라서 빛나, 나야 나, 나야 나….
앞선 성공 사례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연습생의 유형은 정해져 있다. 간단하게 ‘비주얼캐’, ‘실력캐’, ‘성장캐’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는데 그중 내 픽이 되곤 하는 건 보통 ‘성장캐’ 쪽이다. 성장 서사에 약한 DNA라도 있는 건지 유독 실력에 비해 자신감이 없어 보이거나 땅만 보는 연습생에게 눈길이 가곤 한다. 무대나 팀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데뷔권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벅찬 마음이 들 정도다.
약 100명의 연습생에서 시작해 소수의 연습생만이 살아남은 지금 <보이즈 플래닛>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주변인들에겐 이번을 끝으로 서바이벌에서 손 떼겠다 당당히 선언했지만, 또 어떤 연습생의 어떤 서사가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을지는 모를 일이다. ‘국민 프로듀서’, ‘스타 크리에이터’에 이어 내가 얻게 될 직함이 뭔지 궁금해지는 걸 보면 벗어날 마음이 없는지도.
글. 김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