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에 들어 ‘MZ세대’에 대한 여러 논의가 한국의 대중문화에도 많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 묘사가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에 머무른다는 비판도 있다.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거침없이 발언하는 태도나 협조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향 같은 부분을 키워서 그려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 안 듣는 젊은이’에 대해선 어느 시대나 있었던 한탄일 뿐이고, 젊은 세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성세대는 늘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1980년대생인 밀레니얼과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를 가리키는 Z세대를 한데 묶는 구분법에 대한 지적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미국의 Z세대를 다루는 쇼는 많이 있었지만, <섹스 라이브즈 오브 칼리지 걸스>(HBO 맥스 오리지널, 국내에서는 웨이브 제공)는 제목 그대로 대학 신입생 여성 네 명을 다룬다는 특색이 있다. 인생의 격변기인 사춘기, 고등학생의 삶을 묘사한 쇼는 이제껏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대학 생활을 조명한 드라마 중 눈에 띄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인 고등학교 시절에 비하면 대학 생활은 어느 정도 삶의 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대학 신입생이라고 해도 고작 스무 살, 아직 인생에서 수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는 시기이다.
노골적인 제목과 19금인 등급 때문에 편견을 갖기 쉽지만, <섹스 라이브즈 오브 칼리지 걸스>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유쾌하고 솔직하며 동시에 무척이나 영감을 주는 드라마이다. 동부에 있는 유서 깊은 대학 에식스 칼리지에 각각 배경도 성격도 다른 네 명의 여학생이 룸메이트로 배정된다. 애리조나의 작은 마을 길버트 출신의 순진무구한 킴벌리(폴린 샬라메), 뉴저지 출신으로 코미디 작가가 되는 게 꿈이고 인기인이 되고 싶은 벨라(암릿 카우르), 유명 상원의원의 딸이자 학교 축구팀의 스타인 휘트니(알리아 샤넬 스코트), 그리고 전형적인 백인 상류층을 대표하는 듯 보이는 레이턴(르네 라프)이 이들이다. 인종도, 출신도, 계급도 다 다른 이들이지만, 대학 신입생들에게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우정을 쌓아나간다.
제목이나 일어나는 사건의 면면에서 <섹스 라이브즈 오브 칼리지 걸스>는 Z세대를 주인공으로 한 <섹스 앤 더 시티>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실제로 네 명의 여성 주인공들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섹스에 대한 대담한 담론을 펼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의 유사성은 명확하다. 둘 다 제작 방송사가 HBO이기에 시청자들이 한층 더 비슷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온라인 대담에서 크리에이터인 민디 케일링이 밝혔듯이, 이 쇼는 처음부터 친구인 네 사람이 펼치는 이야기였던 <섹스 앤 더 시티>와는 달리, 서로 몰랐던 네 명의 여자가 연대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이 발언은 민디 케일링으로서는 좀 더 조심스러운 태도일 것이다. HBO의 레전드 쇼를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쇼가 가진 개별성을 내세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명확히 그 차이를 안다. 인도계 출신 코미디 작가로서 민디 케일링은 백인 중심의 할리우드에서 고전분투해오며 자기 이름을 알린 창작자이다. <더 민디 프로젝트>에서 직장 여성을, <네버 해브 아이 에버>에서 여성 고등학생의 삶을 그리면서 미국 내 소수 인종의 삶에 대해서 유쾌하고 현실감 있게 묘사했던 케일링은 <섹스 라이브즈 오브 칼리지 걸스>에서도 젊은이들이 느끼는 소수자적 현실을 생활감 있게 다뤘다.
성공한 전문직 백인 여성 넷을 다룬 <섹스 앤 더 시티>와 달리 네 명의 여성 중 킴벌리와 레이턴은 백인이고, 벨라는 인도계, 휘트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킴벌리는 캠퍼스 내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계급 출신이고, 레이턴은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 학교 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금발의 부잣집 소녀이지만 자신의 퀴어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한다. 휘트니도 상원의원 어머니를 둔 유명 인사의 딸이지만 조교가 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학생과 구분하지 못하는 경험 등, 정체성과 관련된 사건을 겪기도 한다. 벨라는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고민하기도 하고, 코미디 클럽 내에서 여성으로 주목받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그 나이였기에 우리는
<섹스 라이브즈 오브 칼리지 걸스>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다양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캠페인처럼 다루지 않았고 서사 내에서 유머 있게 묘사해낸다. 하지만 이 유머에는 쓰디쓴 환멸도 있다. 시즌 1에서 이 소녀들이 사랑, 연애라고 믿었던 많은 관계는 실은 폭력이었고 이를 각성하며 소녀들은 성장한다. 이는 문화가 달라도 우리의 스무 살에도 일어난 일들이었다. 사랑이라는 말로 저질러진 수많은 폭력에 알면서도 눈을 감았고 거기에는 자신 또한 책임져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일부가 되었다고 해서 폭력을 고발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섹스 라이브즈 오브 칼리지 걸스>는 그 용기에 대해서도 말한다.
민디 케일링은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대학에서 직접 섹스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 일종의 대리 소원 충족 같은 작품”이라고 반자조적으로, 하지만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에게 아마 이 작품은 그렇게 다가올 것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나체 파티에 당황할 것이고, 좋아한다고 믿었던 남자와 밤을 보낸 후에 일어나는 비낭만적인 상황에 할 말을 잃을지도 모른다. 섹스는 로맨스 소설에서 그리듯 그렇게 신비롭지도 않고, 그렇게 최악만도 아니다. 그저 소녀에서 여성으로 자라는 이들이 겪는 현실이고 솔직히 맞대면해야 하는 사건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우리가 저질렀던 실수, 저지를 수도 있었지만 빠져나온 실수, 앞으로도 저지를지 모르는 실수를 따뜻하게 그려낸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준다. 코미디가 냉소적이고 현실 비판적일수록, 더욱 위로되는 아이러니가 이 쇼에는 존재한다. OTT 채널에서 마주쳤을 때, 괜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뒷걸음치지 말고 한번 열어보기를. 그렇다면 웃음과 깨달음이 함께하는 30분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Z세대 모습은 과거의 내 모습이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의 모습이다.
- 소개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글. 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