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퀸메이커>
긴박한 정치 드라마에서 남성들이 주로 맡아온, 판을 쥐고 흔드는 역할을 <퀸메이커>에선 여성들이 맡는다. 기업 CEO와 미래전략실장, 유력 시장 후보 등 사회적으로 유리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이들이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그들의 위치에서 자연스럽게 발산되는 권력욕과 강인함은 시청자로 하여금 캐릭터에 푹 빠지게 만든다. 특히 담배와 양주, 소주잔을 쥔 여배우들의 모습이 쏟아져나오는 건 카타르시스마저 준다. 여성들이 각자의 문제로 고민하거나 궁지에 몰릴 때마다 등장하는 소품이라는 점에 주목하면 더욱 그렇다.
대기업 은성그룹에서 재벌 일가의 수족으로 일하던 도희(김희애)는 어떤 사건 이후, 인권변호사 경숙(문소리)을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나선다. 두 사람의 어긋난 가치관이 맞물려 다듬어지는 과정 위에, 주변의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각자의 서사를 펼친다. 갑작스러운 해고로 오랜 시간 복직 투쟁을 하는 여성들, 합성사진으로 음란물 유포의 피해를 입거나,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생생하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건 도희와 경숙, 해고노동자 화수(김선영)가 주고받는 감정들이다. 사건의 키를 쥔 여성들이 각자의 문제를 안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임하는데, 이 대립은 단지 정치적인 입장에 차이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절체절명의 위기를 감당해야 하는, 갈림길에 선 인간의 고뇌이기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단지 여배우들이 정치 드라마 속 기존 남성 캐릭터들의 역할을 한다고 해서 드라마가 재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선 본 적 없는 표정과 들은 적 없는 대사가 여성들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서로에게 인생을 건 여자들이 한편으론 정정당당하게, 한편으론 불량하게 승리를 거머쥐는 모습을 놓칠 수 없다. <퀸메이커> 속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들이 맡아온 역할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창조해낸 결과다.
넷플릭스에서 시청 가능
글. 황소연 | 사진.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