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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8 에세이

여행 경험은 최고의 가치가 아니야 (2)

2023.06.02

이 글은 '여행 경험은 최고의 가치가 아니야 (1)'에서 이어집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 비행기에서 보면 망하는 법칙
그러다 우연히 찾은 것이 바로 양자경 주연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 한국은 개봉 전이었지만, 미국에서는 다음 오스카의 주인공이라며 입소문이 들려오는 작품이었다. 안 그래도 개봉하면 얼른 뛰어가 보고 싶던 차에 미국 항공기에서 만난 기대작이라니! 후후, 유나이티드 항공의 발 빠른 선택 칭찬해!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30분도 채 보지 못했다. 한글 자막 없이 보기에 영화는 난해하고 내 영어 실력은 그사이 더 형편없어져 있었다. 세탁소 주인인 줄 알았던 저 엄마는 왜 갑자기 와호장룡이 되어 싸우는 것이며, 다른 차원의 우주는 왜 넘나드는 것이며, 저 세금 공무원의 정체는 뭐지? 저 중국인 부부는 세탁소에 숨어 있던 슈퍼맨의 후손인가? 아니, 이 정도 듣기평가도 안 되는 실력으로 미국 여행 괜찮은 것인가! 괜한 영화 관람은 미국 땅 밟기도 전에 나를 더 심난하게 만들었다. 슬프게도 어설프게 영상만 보고 ‘난해하고 재미없는 영화’라고 인지되어버린 <에에올>을 한국에 와서 다시 봤을 때, 나는 남들처럼 이 영화를 깊이 사랑할 순 없었다. 아니, 저게 저 내용이었어? 두 번째 관람 땐 한글 자막과 함께 나의 무지를 발견했을 뿐이다.

샌프란시스코 경유 시 미국 입국심사가 시작됐는데, 이 고환율 시기에 미국 여행을 가는 똑똑한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던지라 입국장은 인산인해였다. LA행 비행기를 갈아타기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마음은 다급한데, 입국심사 줄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미국 입국 시에 ‘작은 방’으로 끌려간 적이 없었지만, 친구는 과거 출장으로 미국에 올 때 복불복 심사에 걸려 작은 방에서 반나절 대기를 했었다며 이번에도 격리될까 불안해했다. 사전에 여행 정보를 찾아본 게 없어서 불안조차 없었던 나는 북새통에서 몇몇 젊은 유학생들이 입국심사관과 함께 사무실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서야 덜컥 겁이 났다. 오죽하면 ‘미국 입국심사 무사히 통과하는 법’이 여행 카페에 공지 사항으로 있을 정도라고 했다. 입국심사관마다의 기준에 따라 통과시키지 않고 작은 방으로 데려가 대기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내 바로 앞 순서였던 한 동양인 여성은 동행으로 보이는 유럽 남자와 헤어져 혼자만 입국을 하지 못하고 울면서 사무실로 격리되었다.

다행히 내 경우에는 영어를 너무 못한 데다가 한국에 호의적인 심사원을 만나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입국 심사원 영어로 질문) 지금 한국은 여행하기 어떠니? 거기 코로나19로 봉쇄되지 않았어?” “(나 한영 섞어서 대답) 노노, 코리아 굿굿. 코리아 트래블 프렌들리. 한국 막히지 않았다. 코리아 러브 유, 코리아 웰컴!!!!” 어이없이 웃던 그는 미국에 왜 왔으며, 며칠 있는지, 숙소 이름만 묻고는 나를 미국에 들여보내 주었다. 그렇다. 저렇게까지 영어도 못하는 해맑은 여자가 이 나라에 돈을 벌러 왔을 거라곤 생각지 못하는 것이었다. LA로 가는 비행기를 아슬아슬하게 갈아타고, 그렇게 드디어 미국 땅에 입성할 수 있었다.(* 죄송하지만 아직도 공항 밖으로 못 나갔습니다.)

  • 소개

김송희
작가,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를 썼다. 인스타그램@cheesedals


글 | 사진.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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