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곳에서, 미래의 서울을 상상하다 (1)'에서 이어집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주택밀집지역은 재개발로 사라질 구역(흑석9구역)
그래서 도대체, 흑석동은 어떤 동네일까?
빗물펌프장, 생과 사가 공존하는 동네, 한강뷰의 로망을 가진 동네인 것까지 이해했다. ‘그래서 흑석동은 도대체 어떤 동네일까?’ 되물어보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흑석동만의 이야기가 있을 법도 한데 왜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을까? 지명에서 알 수 있듯 ‘검은 돌’이 나왔던 동네라 이를 반영한 ‘까망돌 도서관’, ‘까망돌 어린이 공원’으로 그 의미가 전해지는 것이 전부다. 6.25 피난민들이 정착한 동네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 시절을 간직한 곳은 재개발로 일부 사라졌고, 곧 사라질 예정이다.
“흑석동을 명품 단지로 만드는 것이 우리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명품 단지가 재산 가치 상승의 차원도 있지만 여기 사시는 분들의 자부심이나 지역의 이미지가 좋아지는 부분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흑석동 내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입을 모아 ‘재개발이 완성되어 새롭고 좋은 아파트가 지어진다면 흑석의 위상도 올라갈 것’이라 말했다.
– ‘그늘 도시, 그들 도시; 흑석동 이야기’, <중앙문화> 83호.
명품 단지를 추구하는 일부 사람들은 아파트가 있어야만 지역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자부심이 생기는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동네 이미지와 자부심은 물리적 공간 같은 외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 내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한 일이다. 동네 발전을 위해서 애정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고, ‘어떤 동네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까지 닿게 된다. 외적인 요소만 언급하는 것은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사람을 판단할 때도 가장 먼저 외모를 보듯, 동네를 판단할 때도 건물 외관을 보고 판단하지 않을까?
흑석빗물펌프장 앞에 부착된 동상이몽의 현수막
오리무중 상태로 재개발이 다시 시작되었다
물음표만 가득한 채, 2023년 들어서 뉴타운 사업의 일부가 진행되고 있다. 총 11개의 재개발 구역으로 2011~18년까지 7년간 총 5개 구역(4, 5, 6, 7, 8구역) 재개발이 완료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흑석 3구역이 입주를 완료했다. 이어서 흑석 9, 11구역이 재개발 예정이며, 현재 이주가 진행되고 있다. 완료되고 진행 준비 중까지 포함하면 이제 남은 곳은 1, 2구역과 재개발구역이 해제된 10구역이 전부다. 여기서 눈여겨볼 곳은 앞서 언급했던 빗물펌프장 부지와 흑석 9구역이다.
동상이몽의 빗물펌프장
흑석 1, 2구역 사이에 위치한 빗물펌프장 부지는 2008년 당시 빗물펌프장 이전 후 문화공원이 조성될 예정이었으나 부지 활용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존치 관리구역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다 2020년에는 청년 임대주택 조성 계획으로 변경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등장했다.
부지 활용에 대한 다른 생각, 즉 ‘동상이몽’이 시작되었다. 다른 가치가 충돌하고 갈등이 발생하는 과정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문제를 어떠한 단계와 절차를 거쳐 어떠한 과정과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지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가끔 동상이몽의 현장을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지켜보는 것도 다양한 이해관계를 체감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흑석빗물펌프장
서원석 교수는 “입주민에게는 그곳에 공원이 유치되는 것이 청년 임대주택보다 좋겠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선 주거 효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며 학생들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임대주택이 들어설 경우 학생이 살 수 있는 집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자연히 학생들의 편의를 고려한 시설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청년 임대 주택을 반대하는 일부 고소득 분위의 의견에 대해서는 “내가 들어갈 수 없다 해서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내가 들어갈 순 없지만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는 접근 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그늘 도시, 그들 도시; 흑석동 이야기’, <중앙문화> 83호.
흑석 9구역에 남은 단서들
흑석 9구역의 경우 시대 변화를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단서들이 꽤 많이 남아 있다. 도시형 한옥, 나무 전봇대, 서울 1기 휘장(1947~1996)이 새겨진 맨홀, 서울 수도 맨홀, 행정구역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주소판 등이 있다. 과연, 구 차원에서는 이 단서가 지역을 해석할 수 있는 자원으로써 활용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까? 아니면 기록이라도 남겨두었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동네 곳곳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이 재개발로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한, 희소성이 있는 것들인데, 자료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몇 천, 몇 백 년 전의 유물도 상황에 따라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다시 땅에 묻히기도 하는데 여기에 있는 것들은 오죽할까. 그저 답답할 뿐이다.
여러모로 다양한 이슈가 존재하고, 미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흑석동의 현재를 쭉 훑어보았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으나 결론이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일단 패스하고, 남은 이들보다 떠난 이들이 더 많은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상상해보련다. 흑석동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 이번 호를 끝으로 ‘서울수집’은 연재 종료됩니다. 이 코너를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소개
이경민
SNS ‘서울수집’ 계정 운영자 & 도시답사 및 기록가.
글 | 사진. 이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