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감독이 홈리스월드컵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다큐멘터리 방송을 통해서였다. 2010년 브라질에서 열린 홈리스월드컵의 한국 팀 경기를 본 그는 스포츠 경기에서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닌, 실패할 줄 알면서도 계속 뛰는 이 사람들을 극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드림>의 시나리오를 쓴 후에도 201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홈리스월드컵에 함께 가 현장 분위기를 직접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병헌 감독은 인터뷰 중간 홈리스 축구 팀을 ‘우리 팀’이라고 언급했다. 대단한 성공을 이룬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실패한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분명 재미와 울림이 있을 거라는 이병헌 감독의 의지가 이 영화의 개봉을 일궈냈는지도 모른다.

영화 <드림> 이병헌 감독
축구를 소재로, 그것도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홈리스월드컵을 다룬 영화를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0년 브라질 홈리스월드컵에 한국 팀이 출전했을 때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TV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런 대회는 물론이고 지하철역을 다니면서 《빅이슈》라는 잡지도 본 적이 없었던 데 스스로 놀랐던 것 같아요. 나도 그렇고 사람들이 왜 이렇게나 모를까. 쉽게 ‘소외된 것’이라고들 하는데, 소외는 의식적으로 눈에 안 보이게 해왔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제가 이런 프로젝트를 전혀 몰랐다는 데에 미안함이 컸고, 지는 게 뻔한 상황에서 계속 해보는 그런 모습들이 저한테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영화 속 경기 내용이 실화랑 똑같거든요. 별 정보 없이 첫 출전을 해보니 ‘홈리스월드컵’이라는 대회 자체가 유럽에서는 꽤 유명한 경기였고, 외국 홈리스 선수들은 젊고 건장해서 우리 팀과는 비교가 안 되는 거죠. 충분히 대중 영화로서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었어요.
박서준 배우에게는 평소 대사보다 1.5배 빠르게, 아이유 배우에게는 2.5배 빠르게 대사를 해달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던데요. 감독님 전작 중에 가장 초반 리듬이 빠른 영화 같아요.
전체적인 리듬을 생각했을 때 초반에 속도감을 줘야겠다 생각했어요. 이 시나리오가 저로선 어려웠던 부분이 실화이고 홈리스가 등장한다는 거였어요. 마냥 웃기게 해선 안 되니까 조심스러웠죠. 그리고 ‘홍대(박서준)가 사고를 치고 원하지 않는 곳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서 성장한다.’라는 줄거리가 전형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전형적인 이야기이지만 재미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할까, 했을 때 떠오른 게 대사나 이야기에 속도를 내는 거였죠. 저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를 주로 쓰니까, 어디에 힘을 주냐면 캐릭터와 대사예요. 시나리오 쓸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평범한 사람이되 캐릭터가 재미있었으면 해요. <드림>은 초반에 휘몰아치게 하고 싶었어요. ‘아, 웃다 보니까 홍대가 운동장에 있고 축구를 하고 있네?’ <드림>의 대략 줄거리를 보면 전형적이라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라도 충분히 감동이 있고 재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초반에는 그 재미를 홍대와 소민(아이유)이 주고받는 대사로 주려고 했고, 정신없이 홀려서 보게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에 리듬을 준다고 할 때, <드림>은 그래서 초반 속도감이 저에게 아주 중요했죠.
소민의 첫 등장 신이 그런 대표적인 장면 같습니다. 홍대가 갑자기 다큐멘터리 피디라며 소민을 소개받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소민이 정신없이 자기소개를 하죠.
그 장면을 촬영하고, 모니터를 보는데 뭔가 제 기준에는 오케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들어서 ‘뭐가 문제일까’ 했는데, 이게 늘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유 배우에게 손이나 움직임을 좀 많이 해달라고 요청했고, 동선도 바꿨어요. 영화를 보면 소민이 등장해서 자기소개를 하다가 홍대 옆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홍대가 다리가 길어서 막히고 마음이 조급해지니 소파를 빙 둘러 가거든요. 이렇게 동선을 바꾸고 아이유 배우가 제스처를 많이 하는 건 현장에서 추가된 디렉션이었어요.
각자의 이유로 홈리스가 된 사람들이 축구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계속 도전한다는 이야기는 자칫 신파가 되기 쉽잖아요. 영화를 보면 감독님도 감정을 절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홈리스월드컵 경기 내용 자체가 감동적이기 때문에, 뒤에는 실화를 최대한 반영할 생각이었어요. 뒤에 이야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신파적인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중 영화로서 저는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신파를 거부하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감정의 과잉을 경계했던 건 맞아요. 신파라고 해도 어떤 감정의 지점까지 달려가는 과정은 최대한 매끄럽게 보여줘야겠다, 이런 생각은 했어요.
축구 선수 출신의 감독 홍대, 다큐멘터리 피디 소민이 전면에 나서는 것 같지만 주된 이야기의 주인공은 홈리스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들입니다. <극한직업>도 멀티 캐스팅이었는데, 이번 영화 역시 출연 배우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야기 배치가 어렵진 않았나요?
캐릭터가 많아지면 감독은 힘들어요.(웃음) 사실 이 영화는 홍대, 소민보다는 홈리스 선수들의 이야기니까, 영화적으로 재미있는 요소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홈리스 선수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지루하고 뻔하다고 여길 수도 있잖아요. 이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만들어줄 캐릭터가 필요했고 그게 홍대와 소민이었어요. ‘조연을 위해 만들어준 주연’인 셈인데, 저에겐 이게 아주 재밌었어요. 소민이는 제 친구들을 보면서 만든 캐릭터예요. 좋아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는데, 보답을 받지 못해 열의가 없어진. 홍대는 경기장 안에 있는 사람이고 홈리스 팀원들은 경기장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인데 어찌 보면 홍대는 그 울타리의 경계에 있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이인자 콤플렉스라는 설정이 생긴 것도 있어요. 사회가 1등이 아닌 2등은 꼴등처럼 기억을 안 해주잖아요. 홍대는 자신이 평가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억울함이 있었고,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공감할 수 있었다고 봐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인자와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넣으면 재밌겠다 하면서 이야기를 키워나갔어요.
이 글은 '<드림> 이병헌 감독 : 평범한 사람들의 재미있는 이야기 (2)'에서 이어집니다.
글. 김송희 | 사진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