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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8 빅이슈

졌지만 이긴 드라마 (2): 조현성 빅이슈코리아 전 판매팀장

2023.05.12

이 글은 '졌지만 이긴 드라마 (1): 조현성 빅이슈코리아 전 판매팀장'에서 이어집니다.

2010년 홈리스월드컵 출전을 위해 훈련 중인 선수단

출전을 목표로 훈련받은 빅판들의 경기력은 많이 향상되었나요?
네, 단기간에 실력이 많이 늘어서 저도 놀랐어요. 감독인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워낙 운동을 안 하고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분들이다 보니 몇 달만 운동해도 눈에 띄게 좋아지시더라고요. 운동을 하며 빅판들이 좀 더 건강해지고 삶의 의욕을 얻길 바랐죠. 성적보다는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일깨우는 데 의미를 두고 함께 훈련했습니다. 홈리스월드컵 자체가 승패를 겨루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매년 50여 개 나라 500여 명의 선수들이 모여 교류하며 삶의 자극을 받고 의미를 깨닫는 데 중점을 둬요. 성적이 우선순위였으면 한 번 참가한 사람은 또 참가할 수 없다는 조항이 없겠지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 기회를 주자는 취지이지,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대회가 아니에요.

참가 선수뿐 아니라 후보 선수까지, 홈리스 상태에 놓인 많은 이들과 빅이슈 판매원이 홈리스월드컵 준비 과정에 함께했었는데요.
그렇죠. 후보까지 총 여덟 명의 선수가 출전하는데 그중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는 네 명이에요. 최대한 전원이 실전에서 뛸 수 있게 해요. 꼭 이기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 빅판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내가 지금 세계 무대에서 뛰고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스포츠가 승패를 아예 신경 안 쓸 순 없으니 그런 점을 조율했죠.

영화 <드림>의 소재가 된 2010년 리우데자네이루 홈리스월드컵의 결과는 11110패예요. 비록 꼴찌 팀이었지만 당시 빅판들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마치 축제처럼 홈리스월드컵을 즐겼던 것으로 압니다.
홈리스월드컵 참가 경험으로 국가대표로 출전한 빅판들께서는 더 큰 용기와 자립 의지, 그리고 희망을 품으셨어요. 모든 경기가 끝나고 마지막 세리머니가 있거든요. 최우수 신인 팀 상을 받으러 나갔을 때 관중의 환호가 어마어마하게 컸어요. 이런 응원과 환호가 빅판들이 잃었던 사회 감각, 삶의 의욕 등을 깨우는 계기가 됐죠. “내가 살면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가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래서 비록 꼴등이지만 괜찮다. 다시 태어난 것 같다.” 하시던 한 빅판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런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두 부류로 나뉘었던 것 같아요. 그런 큰 축제와 자신의 삶 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한 분도 있어요. 환호의 순간을 맛보고 나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삶이 더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감정 때문에 좀 힘들어하신 빅판분도 있었어요.

영화 <드림>에는 브라질 용병 선수 두 명이 등장합니다. 한국 선수들의 부상 때문에 감독은 이 브라질 선수들을 경기에 출전시키죠. 이들이 압도적인 체력과 실력으로 골을 몰아 넣어 한국 팀도 승승장구합니다. 실제 브라질 홈리스월드컵에서도 현지 대기 선수를 기용하셨죠?
외국인 선수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요. 비행기 티켓 값이 부족해서 선수 여덟 명이 다 못 갔었거든요. 그런데 선수 두 명이 경기 중 부상을 당해 깁스를 했고, 또 한 선수는 뛸 수 없을 만큼 아파서 경기에 나설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선수들을 쓴 거예요. 부상자도 많고 팀이 힘든 상황이니까.

2010년 홈리스월드컵에서 박종환 선수가 티셔츠에 다른 나라 선수들의 사인을 받았다. 이 티셔츠를 들고 있는 조현성 전 판매팀장 ©김화경

영화에서 브라질 선수를 용병으로 쓴 한국 팀은 이기는 경기를 펼쳐나가지만, 형편없는 실력이었어도 매 경기 죽을힘을 다하는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던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집니다. 감독인 홍대는 기록을 남길지 기억을 남길지, 이건 선수들이 판단한다.고 말합니다.
한국 팀이 그해 최우수 신인 팀 상을 받았어요. 누가 봐도 홈리스월드컵 취지에 맞는 팀이었거든요. 맨날 지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이 감동을 주었어요. 그런데 용병을 쓰고 이기니까 좋아 보이지 않는 거죠. 더 이상 한국 팀을 응원할 이유가 없었던 거고요. 관중은 경기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려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기는 드라마를 보려던 거였으니 실망스러웠겠죠. 그래서 야유가 나온 거고요. 강자가 승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응원을 한 게 아니니까요.

당시 홈리스월드컵이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군요.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동기나 원동력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였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누군가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 사회가 자신에게 주는 부담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기대감과 책임감 때문에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 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출근해서 일도 하고 결국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게 되니까요. 홈리스월드컵이 그런 걸 부여하는 장이었다고 생각해요. 홈리스는 대부분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인데, 홈리스월드컵은 관심받고 주목받을 기회잖아요. 삶에서 관중도 못 되는 위치에 있던 빅판들이 주인공이 되는 경험이었으니까요.

빅판들과 홈리스월드컵을 함께 준비하고 출전한 경험은 인생에서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저는 빅이슈와 홈리스월드컵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어요. 빅이슈에서 홈리스와 일하며 아주 다양한 경험을 했죠. 일단 홈리스 중에는 ‘나는 인생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마인드를 가진 분들이 있어요.(웃음) 그런 분들과 일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단단해진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요. 감독으로서 단순히 훈련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팀 내 여러 갈등을 봉합하고 갈등을 풀기 위한 대화를 이끌어내는 입장이었으니까요. 또 빅판들을 통해 배운 점도 많습니다.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지만, 살면서 어려운 일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럴 때 인내하고 어떻게 이겨낼지 자신을 돌아보는 법 등을 배운 것 같아요.


. 안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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