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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8 커버스토리

에드워드 호퍼의 세계 : 대도시 이면의 고독과 허무, 그림이 되다

2023.05.13

에드워드 호퍼, 오전 7시, 1948

도시의 지붕들, 오전 7시, 밤의 창문, 여름날… 우리 일상에서 쉽게 포착할 수 있어 평범해 보이는 키워드지만, 이는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의 유명한 작품 타이틀이다. 이 그림들을 완성한 위대한 화가는 에드워드 호퍼.

미국의 국민 화가 에드워드 호퍼(이하 호퍼)의 작품을 국내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전 층에서 오는 4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호퍼의 국내 첫 단독 전시다.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2019년부터 함께 기획한 전시여서 더 의미가 크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은 호퍼 스스로가 가장 아낀 ‘이층에 내리는 햇빛(Second Story Sunlight)’부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선택을 받아 백악관 집무실에 걸렸던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Burly Cobb's House, South Truro)’ 등 160여 점과 관련 아카이브에서 선별한 11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산업화된 대도시의 이면 그려
호퍼는 뉴욕 출신 화가로 당시의 지극히 현실적인 미국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사실주의 화가지만 그의 그림에서 세밀하고 구체적인 표현은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평면적이면서도 비현실적 기조가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호퍼의 그림에서 우리는 급속한 산업화를 겪는 미국의 모습을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호퍼가 활동한 20세기 초·중반은 미국 사회가 현대화되며 수많은 도시가 산업도시로서 변모하던 시기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면서 대량생산의 시대를 맞이하는데 이를 기점으로 미국 경제도 호황기를 맞았다. 그 풍요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고, 어떤 사람들은 노동해야 했으며 인간은 산업화되어가는 새로운 공간 속에서 이전에 없던 변화를 맞게 됐다.

그리고 역동적인 변화의 이면에는 많은 것이 자리 잡았다. 자본에 의해 기계가 움직이듯 사람도 물질에 의해 흘러가면서 그 호화로운 시대에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도 생겨났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심리적 불안이 깊어지고, 물질만능주의는 인간성을 고립시켰다.

호퍼는 자신의 눈에 비친 산업화한 뉴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과잉 공급, 빈부 격차 등으로 인한 미국의 경제 대공황, 두 번의 세계대전.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지만 정작 그 시대의 삶은 허무와 불안의 연속이었다. 호퍼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그림에 담고자 했던 감정도 이와 관계가 있다. 그 때문인지 호퍼의 그림은 대도시의 쓸쓸한 화려함과 함께 인간이 그 안에서 느끼던 무력감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는 역동적인 모습 속에서 피어나는 고독과 무감정을 담담하게 포착해낸 몇 안 되는 현대 화가다.

에드워드 호퍼, 푸른 저녁, 1914

고독과 허무를 다루다
시대가 변화하듯 회화의 양상도 점차 변화했다. 입체주의나 추상주의 화풍을 선보이는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이 등장했지만, 호퍼는 이러한 기조에도 흔들리지 않고 작품의 본질을 유지했다. 시류를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추상주의를 한때 지나가는 유행 정도로 치부하며 자신의 독자적 예술 표현을 이어갔다. 지금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불리지만 그 당시 그의 그림이 큰 인기를 끌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호퍼의 작품은 평면적 묘사와 수평적 구도, 희미한 음영, 빛의 대비 등이 돋보인다. 그림 속 직선적이고 정직한 구도, 희미한 음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모호성을 띠며 평면적으로 존재하는 공백만큼의 허무를 발견하게 하는데, 이 때문에 구태여 고독을 호소하지 않아도 관람자는 화가 눈에 비친 외로움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독자적 화풍이 다소 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호퍼를 고독을 그린 화가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의 그림의 특징적 부분은 빛의 대비와 공간 활용에 있다. 빛이 닿는 곳과 닿지 않는 곳. 한 폭의 그림이 영화의 미장센을 완성하듯, 외로움과 고독을 자연스럽게 이미지화하는 것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그가 소재로 삼은 것이 일차원적으로 고독과 불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호퍼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을 꼽으라면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를 떠올리게 된다. 대도시의 한밤중 불이 환히 켜져 있는 식당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그 안에서는 나란히 앉은 두 남녀, 맞은편에 있는 직원 그리고 동떨어져 혼자 시간을 보내는 한 남자의 모습이 포착된다.

그림 속 그들은 함께 있지만 서로 무관심하다. 대도시의 밤을 표현한 것치고 고요와 적막이 감도는데, 어딘지 모르게 화려한 도시를 겉도는 현대인의 모습을 조명한 듯 느껴진다. 특히 밝은 실내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썰렁한 실외, 여기서 느껴지는 빛의 대조는 화려한 듯하면서도 이질적인 도시의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호퍼를 떠오르게 하는 그림은 또 있다. 산업혁명 때 상품과 원자재를 이동하는 주요한 길이던 철로와 고풍스러운 빅토리아 양식의 주택이 함께 그려져 있는 작품 ‘철로 옆의 집(House by the Railroad)’이다. 언뜻 보아서는 화려한 저택의 모습과 평범한 철로 같지만 명암 대비로 정적인 분위기가 극대화되어 어딘지 모르게 주택은 버려진 집처럼 보인다.

실제로 당시 화려한 빅토리아 양식의 주택이 버려지는 일이 많았다. 영국에서 유행하던 양식이 미국으로 전해지며 큰 인기를 끌었지만, 도시의 산업화와 함께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하게 됐다. 이 때문에 화려한 주택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림에서는 이를 산업화의 상징인 철로와 함께 배치함으로써 버려진 집의 쓸쓸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에드워드 호퍼, 자화상, 1925-30

호퍼의 작품, 현대에도 사랑받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호퍼의 작품 ‘철로 옆의 집’에 등장하는 화려한 빅토리아풍 저택이 가진 상징성은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흔히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대저택의 모습을 표현할 때 그의 작품에 등장한 주택을 모티브로 활용하는데, 실제로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이에 영향을 받아 영화 <사이코>의 한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호퍼의 작품이 현대에 다양한 버전으로 오마주되는 사례는 쉽게 발견된다. 특히 영화 미장센에서 그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삼은 감독이 많은데, 감독 구스타프 도이치는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영화에서 호퍼의 그림 13점을 스크린 화면에 담기도 했다. 또 작품 ‘아침 햇살(Morning Sun)’을 영화 포스터 전면에 내세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 CF나 뮤직비디오에서도 그의 작품을 종종 오마주했다. 신세계 온라인 몰 SSG닷컴의 광고에서는 호퍼의 작품 ‘선로 옆 호텔(Hotel by a Railroad)’의 구도를 활용한 미장센을 선보였으며, 이외의 시리즈에서도 그의 작품을 적절하게 혼합하거나 변형해 현대적인 화면을 완성하기도 했다. 또 가수 헤이즈의 곡 ‘헤픈 우연’의 뮤직비디오에서도 호퍼의 그림을 다수 오마주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호퍼의 작품이 지금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레퍼런스로 활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호퍼는 활동 당시 그리 인기 있는 화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많은 전문가가 이에 대해 호퍼가 그 당시 일상에서 느끼던 감정의 기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바쁜 대도시의 하루가 지금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도시인들은 그때보다 더 많은 정보 속에서 헤매며 불안을 느끼고, 만연하는 물질만능주의에서 허무와 고독을 곱씹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호퍼, 독서하는 조, c. 1935-40

예술, 그리 꿈만 같진 않은 이야기 일상에서 찾은 답
호퍼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아끼는 작품 중 하나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그림에 등장하는 식당에 대해 뉴욕의 그리니치 애비뉴 식당을 모델로 했으며, 밤거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밤거리가 특별히 쓸쓸하다고 보진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대도시의 쓸쓸함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어쩌면 호퍼는 고립감과 고독 자체를 표현하기보다 대도시의 일상을 자신의 눈에 비치는 그대로 그렸을 뿐일지도 모른다. 흔히 예술을 꿈만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정형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호퍼는 그림의 레퍼런스를 일상에서 찾았다.

현대 도시인은 호퍼의 작품에서 자신의 일상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은 그 시대 산업혁명의 현장만큼이나 허무하고 고독할 수도 있다. 그의 그림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모습과 감정을 예술로 승화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허무와 고독에 휩싸여도 도시인은 일상을 살아간다. 현대의 호퍼가 나타난다면 우리의 모습이 그림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에드워드 호퍼, 작은 배들, 오건킷, 1914

  • 소개

윤미지
<핸드메이커> 기자. 손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현장을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글. 윤미지 | 그림제공.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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