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따라 전개되는 깊은 작품의 세계, 20세기 예술가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경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展을 기획한 서울시립미술관 이승아 학예사에게 전시의 키포인트를 물었다.

이젤에 기댄 에드워드 호퍼, 사진_조지 플랫 라인스, 1950
이번 전시는 작품을 파리와 뉴욕, 뉴잉글랜드 등 공간을 중심으로 묶어 소개한다. 기획 의도가 궁금하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는 뉴욕은 물론 파리, 뉴잉글랜드 일대, 케이프 코드 등 작품 속에 작가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소를 따라간다. 도시의 일상에서 자연으로 회귀를 거듭하며 예술적 지평을 넓혀간 호퍼의 65년에 이르는 화업을 작품과 아카이브를 통해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데 중점에 두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2020년대를 사는 관람객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
호퍼의 시선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출발해 그 대상과 공간을 세심히 관찰함으로써 포착한 현실을 호퍼 특유의 빛과 그림자, 대담한 구도, 시공간의 재구성 등을 통해 자기화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그림은 풍경 너머 내면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모습은 우리와 닮았다. 그것이 깊은 밤 공원에 홀로 앉아 있는 어떤 이의 모습뿐 아니라 마천루와 대비되는 낮은 건물의 지붕, 바닷가의 작은 모래언덕일지라도 말이다. 내면은 각자의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과 성향이 얽혀 있어 그것을 표현하고, 누군가와 서로 공감하며 이해한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호퍼는 현대인의 일상과 정서를 누구보다도 훌륭히 그려내어 전달하고 있다. 여러모로 지친 우리가 호퍼의 작품을 대면한다면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놓쳐서는 안 될 섹션 하나를 꼽는다면? 그 이유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이 전시가 호퍼의 예술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는 의미가 있는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뉴잉글랜드 섹션의 생동감 넘치는 푸른 바다와 녹음을 언급하고 싶다. 호퍼는 몬헤건섬(Monhegan Island)에서 작은 패널을 지닌 채 암석 해안을 걸어 다니며 스케치를 하거나 밑그림 없이 즉흥적으로 작업을 했다. 이 시기 작품은 바다와 대지 간 극명한 색조 변화, 반사된 빛과 그림자의 색채 대조,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기법인 임파스토(impasto)를 통해 강조한 암석의 양감, 가파른 해안 절벽과 주변의 부서지는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대담한 구성 등과 같은 역동성과 표현성이 좋다. 얼핏 각각의 작품이 개성 없어 보이지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 어느 하나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인 것을 비범하게 표현하는 호퍼의 화풍이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글.황소연 |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