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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9 컬쳐

돌과 구름의 시간 (2)

2023.05.24

이 글은 '돌과 구름의 시간 (1)'에서 이어집니다.

ⓒ 영화 <구름에 대하여> 스틸

구름에 대하여
구름 보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일단 <구름에 대하여>(2022)라는 제목부터 끌린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 나고 자란 감독 마리아 아파라시오가 5년의 시간을 들여 쓰고 만든 코르도바에 관한, 코르도바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작은 바에서 요리하는 라미노, 구직 중인 에르난, 순환 근무 중인 병원 간호사 노라, 서점 직원 루시아. 코르도바에 사는 네 명의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이들이 관계를 맺는다거나 만나는 일은 없다. 그저 느슨한 형태로 그들 각각과 아주 잠시 만나는 여인—새벽의 거리 청소 노동자였다가 거리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기도 하는 여인이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연결성은 이들이 모두 코르도바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 중 하나라는 걸 상기시키고 힘겹게 돈을 벌고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의 연장이다. 영화에는 주력하는 사건이랄 게 없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또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듯이, 영화는 매일의 일상과 그 반복되는 전형에 주목한다. 일상이 주는 힘이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단조로운 매일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나가는 영화는 그와 동시에 작은 숨구멍을 내보려 한다.

ⓒ 영화 <구름에 대하여> 스틸

메마른 일상의 작은 이벤트랄까. 맨손으로 동전을 숨겼다 다시 보이게 하는 동전 마술을 배워 해보는 라미노, 딸과 함께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눈 보호대를 직접 만드는 에르난, 성인 연극 워크숍에 참여해 무대에 올라보는 노라, 서점의 정기 낭독회 시간을 함께하는 루시아. 그리고 거리의 노래하는 여인들까지. 현실의 한복판이 홀연히 마법의 장소가 되고 무대가 되고 잠시 그들은 그 안에서 일상의 나를 잊는다. 그사이 시간은 흘러 그들은 새해를 맞을 것이다. 특별난 게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흘렀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일어났다. 그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정작 구름의 인서트는 몇 번 나오지 않지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면 구름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물론 같은 구름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고 지금 보고 있는 저 구름도 끝없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까 ‘구름’은 ‘시간’이고 ‘인생’이다. 이것이 감독 마리아 아파라시오가 생각하는 ‘영화’이고 ‘영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영화의 오랜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취하는 새 시대의 감독을 만난 것 같다. 국제경쟁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는 소식도 덧붙인다.

  • 소개

정지혜
영화평론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쓴 책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영화 ‘해피 아워’ 연출노트와 각본집>(2022, 모쿠슈라)의 한국어판에 평설을 썼다.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공저, 2021), <아가씨 아카입>(공저 및 책임 기획, 2017) 등에 참여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쓸 일이 많지만, 언제든 논–픽션의 세계를 무람없이 오가고 싶다.


글.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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