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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9 에세이

개인적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바꾸는 에세이 (1)

2023.05.30

에세이 쓰기 워크숍을 매년 꾸준히 열고 있습니다. 책 읽는 독자들은 점점 줄어든다는데,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체감하기로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첫 수업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에세이를 잘 쓸 수 있을까요?” 보통 이렇게 막연하게 질문을 하는 사람은 초심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영어 실력이 좋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지 않듯이요. 질문이 막연하다는 건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초심자를 만나면 먼저 일기와 에세이부터 구분하라고 당부하곤 합니다.


최선호 일러스트

자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다면 부디 에세이를 쓰세요.
일기를 쓰지 마시고요. 이 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일기는 혼자서 보고 마는 것이지만 에세이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글입니다.
일기에는 오로지 감정의 토로만 있어도 괜찮지만 에세이에는 그 이상의 것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글쓰기 전에 어떤 에피소드를 담을지만 고려하지 말고 그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보세요.”

에세이를 제대로 쓰고 싶다는 말에는 결국 글을 써서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욕망이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언젠가 당신의 글을 책으로 엮어내고 싶다는 출판사 편집자의 연락이 메일함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마음. 저 또한 잘 아는 그 심정 앞에서 “열심히 쓰다 보면 누군가는 당신의 글을 발견할 테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쓰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는 식으로 상투적인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세이를 쓰고 싶단 욕망이 생겼다면 한두 편의 글을 완성해보는 데 그치지 않고 책으로 묶어볼 목표까지 세우는 걸 적극 추천합니다. 그래야 계속해서 글을 쓸 동력을 얻고 이를 통해 새로운 기회도 열리니까요.

그렇다면 어떤 글은 책이 되고, 어떤 글은 책이 되기 어려울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누락하는 사실이자 현실은 책이 판매되는 상품이라는 겁니다. 타인이 돈이나 시간을 써서 볼만한 가치가 있도록 하려는 상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로써 내 마음이 어떠했다.’는 식의 일기만으로는 안 됩니다. 물론 일기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경우도 있죠. 저자의 인지도가 높아 그 이름만으로 흥미를 돋우는 경우나, 특수한 경험이 있어서 당사자의 고백만으로 힘 있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도 아니라면 빼어난 문장력으로 밀고 갈 수도 있겠죠. 최소한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한다면 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중 하나라도 포함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일기로 책이 만들어지긴 어렵다는 겁니다.

20대 중반에 겪은 일입니다. 잡지에 발표했던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면서 저를 만나보고 싶다는 편집자를 소개받은 적 있습니다. 그때 몇몇의 편집자들에게 들은 피드백은 대개 이런 결론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글을 좋아하지만 책을 만든다고 했을 때 세일즈 포인트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능성은 있지만 조금 더 지켜보려 한다.” 당시에는 문장을 더 훈련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그 속뜻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당신은 저자로서 유명세나 개성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만족적인 일기를 쓰고 있다.”

20대 중반까지 썼던 글들을 다시 보면 세상에 대한 분노와 괴로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의아함을 토로하는 문장으로 가득합니다. 그때는 독자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생각하기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어떤 글을 써야겠다는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뭐든 쓰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아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새벽에 이리저리 끼적인 글도 많습니다.

그때를 반성한다거나 후회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펄펄 끓고 있는 글을 새벽에 써야만 했던 시기도 분명 필요했습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내면에 해결되지 않는 응어리를 하나씩 품고 있는 자들이고 그렇기에 한 번쯤은 이런 과정을 겪습니다. 아니, 겪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 거대한 시간을 겪고 난 뒤 그 이야기를 이젠 충분히 했다 싶을 때라야 주위를 돌아보게 될 겁니다.

이 글은 '개인적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바꾸는 에세이 (2)'에서 이어집니다.

  • 소개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더 좋은 곳으로 가자>를 썼습니다. 유튜브 채널 <정문정답>을 진행합니다. [email protected]

최산호
instagram.com/g.aenari


글. 정문정 | 그림. 최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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