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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9 에세이

수목원에서 숲 대신 보아야 할 것 (2): 국립세종수목원의 초여름

2023.05.26

이 글은 '수목원에서 숲 대신 보아야 할 것 (1): 국립세종수목원의 초여름'으로 이어집니다.

ⓒ 국립세종수목원

거대한 붓꽃 다음으로 마주치는 식물
그나마 4월의 화려함을 담당하던 튤립과 수선화까지 지고 나면 도대체 무엇을 보아야 할까? 대부분의 관람객은 사계절전시온실 앞에 서서 축구장 90개를 합친 것과 비슷한 수목원의 규모에 막막함을 느끼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방금 빠져나온 온실이 붓꽃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 우리는 방금 거대한 붓꽃에서 빠져나왔고 때마침 5월이라면 이제 진짜 붓꽃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작은 바람에도 초록 잎을 흔드는 양버들에 인사를 건네며 감각정원을 가로지르면, 수목원을 흐르는 청류지원을 따라 붓꽃전시원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붓꽃들을 만날 수 있다. 붓꽃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지난해엔 하나하나 이름표를 찾아보다가 결국엔 세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붓꽃들만 기억에 담기에도 시간이 부족했기에.

붓꽃이라고 하면 대부분 붓 모양의 꽃봉오리를 가진 보라색 꽃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원종만 해도 300종 가까이 될 만큼 붓꽃은 종류와 서식 환경 또한 다양하다고 한다. 때문에 수목원 내에서도 어떤 붓꽃은 물가 습지, 또 어떤 종은 볕이 잘 드는 자갈정원, 어떤 종은 나무 아래 그늘진 곳 등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는 다양한 곳에서 자라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보았던 보라색의 붓꽃도 만날 수 있지만 자생 붓꽃뿐 아니라 다양한 희귀 붓꽃들까지, 지금부터 초여름까지 무리 지어 피어난다. 설마 이게 다 붓꽃인가 싶을 정도로 색상도 모양도 크기도 다 다르다. 크고 우아한 독일붓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걷다 보면 루이지아나붓꽃의 화려한 색으로 물든 청류지원에서는 왠지 자꾸 지나온 풍경을 뒤돌아보게 된다. 작고 가냘파 보이지만 오밀조밀 인상이 뚜렷하고 강단 있어 보이는 우리 붓꽃은 볼 때마다 마치 보물을 찾아낸 기분이다.

ⓒ 국립세종수목원

갑작스러운 순간들이 지나가다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붓꽃이 있는 반면,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자세히 봐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작은 붓꽃도 있다. 그렇게 붓꽃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하고 걷다 보면 뜻하지 않게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도 있다. 풍경이 아니라 풍경 속에 있는 식물 하나하나가 인사를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저를 눈치채다니 행운이네요.” 붓꽃 무리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 있던 매발톱꽃일 수도 있고 이제 막 꽃망울이 터진 동그란 알리움일 수도 있다. 숲 정원의 야생화가 발목을 붙잡는다면 그 작은 것들을 보느라 쭈그려 앉았다 일어서는 순간 머리가 띵해진다. 잠깐 정신을 차리려 앉은 의자 뒤에선 클레마티스가 갑작스레 인사를 건넬지도 모른다.

물기를 머금은 붓 같은 꽃봉오리의 끝에 이렇게나 다양한 색이 묻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지금 이 장소에서, 이 시간이기에 가능한 풍경. 지금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국립세종수목원의_흔한_풍경.JPG’가 아니라 지금을 놓치면 다시 또 1년을 꼬박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붓꽃이 아니랍니다.

그나저나 올해도 참 예쁘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왜 이렇게 한숨만 나오는지 오늘도 깊게 한숨을 쉬며 터벅터벅 걷는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순간을 함께하는 행운을 누리기를 바라며, 그렇게 또 한순간이 지나간다.

  • 소개

국립세종수목원 처돌이
수목원이 너무 좋은 국립세종수목원 일반 관람객. 꿈은 국립세종수목원 평생회원.


글 | 사진. 국립세종수목원 처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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