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간판이 많다. 형태와 색, 서체가 제각각 다른 간판들이 골목과 건물을 빽빽이 채우고 있다. 혼란스러운 정렬 속 간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얼굴을 기록하는 ‘간판 덕후들’의 작은 전시회.
역설의 마케팅


나를 파는 행위.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다. 자신을 파는 가게 간판에서 해맑게 웃는 표정으로 서 있는 동물들. 웃기면서도 기이한 이 장면. 하지만 자신을 팔아서라도 살아남는 힘. 서울의 자영업자의 거센 그 생존력이 느껴진다.
사이버펑크 맛집 서울

서울에는 오래된 네온 간판이 많다. 진한 원색의 빛은 과하게 빛나고 한구석에 이가 빠진 네온사인은 쓸쓸하다. 화려한 화장으로 얼굴을 덮어보지만 빛바랜 표정은 감출 수 없다. 전성기에 그 간판은 얼마나 빛났을까? 얼마나 도도했을까?
결국에는 순정으로

가장 심플하게 간다. 어떤 형용사나 꾸밈말 없이 단순하게 표현한다. 자신감이 넘치고 거침없다. 어쩌면 그 단어의 대표성을 가지려는 대단한 포부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언어유희


웃기에는 자존심이 상하는 농담. 꾹 참다 결국에는 피식 웃게 된다. 밋밋하지만 착해 보이는 인상이다. 이미 마음에 각인된 간판의 이름은 외우지 않아도 기억에 남아 있다.
풍경이 된 간판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간판은 이제 그가 있던 자리에서 하나의 풍경이 된다. 색과 질감이 그대로 스며들어 자연스럽다.
요즘 간판

요즘 간판들은 미니멀하다. 건물과 주변 풍광에 거스르는 일 없이 매끄럽다. 한없이 덜어내다 보니 어느 가게는 간판조차 없다. 가게를 혼동해 엉뚱한 곳의 문을 열기도 한다. 약간은 덜 친절한 그 모습이 세련되고 탁월해 보인다. 아, 이게 요즘 간판이구나!
세월의 표정

먼저 태어난 간판들을 보자. 그것들은 종종 흉물이라고 손가락질받는다. 레트로 무드가 유행하며 언급되기도 한다. 이런 말들 이전에 간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각자의 좀 더 깊은 이야기가 있다. 간판들은 앞으로 어떤 시간을 보낼까, 시간이 쌓이면 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소개
서울도감
서울의 간판, 건물, 글자, 이상한 것 등등등을 모으는 사람. 인스타그램 @kanpannn
이 글은 '서울의 간판들, 각자의 얼굴들 (2)'에서 이어집니다.
글 | 사진. 서울도감·양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