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정이서, 김혜나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온 정인(정이서)은 비슷한 시기에 도시에서 이사 온 혜정(김혜나)이 궁금하다. 폐쇄적인 시골에서 섬처럼 고립된 정인과 달리 마을 사람들의 간섭과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혜정은 언제나 당당하고 우아하다. 하명미 감독의 첫 장편영화 <그녀의 취미생활>은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에 초청되어 2관왕을 차지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비밀스러운 두 여자의 이야기가 얽히며 복수극과 스릴러의 요소까지 갖춘 이 영화에서 김혜나, 정이서 배우는 비밀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속 혜정은 도시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자신에 대해 드러내지 않지만, 기꺼이 복수의 여정에 함께하며 정인의 숨은 조력자가 되어준다. 두 여자가 서로 공감하고 연대하며 함께 나아가는 이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영화관 개봉을 앞둔 소회가 궁금합니다.
이서 뭐랄까. 모든 게 굉장히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신기해요. 지난해 여름에 촬영을 시작해 여름이 끝나기 전에 마치고, 편집 기간을 거쳐 얼마 전에 부천영화제를 다녀왔거든요. 근데 이후 약 한 달 만에 개봉을 앞두고 있으려니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 같달까요. 그래서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설레지만 긴장도 되고요.
혜나 여기에 조금 덧붙이자면, 저한테 유독 빠르게 느껴진 것이 저는 촬영 보름 전에 감독님을 처음 뵀어요. 대본을 그때 봤거든요. 그러고 촬영 일주일 전에 리딩하고 바로 촬영에 들어가고… 정신을 차리니 촬영이 끝나 있더라고요. 그러다 엄청 추운 어느 날 완성되지 않은 편집본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제에 가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실 저는 개봉을 10월 말쯤으로 생각했거든요. 8월 말이라는 소식에 처음에는 ‘너무 빠른 거 아니야?’ 했는데, 지금은 우리 영화는 8월 말에 관객을 만나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바쁘고 숨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느낀 작품의 첫인상이 궁금합니다. 각각 혜정과 정인을 연기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있나요?
혜나 제가 지금까지 기질이 센 역할이나 정인이 같은 캐릭터는 많이 연기해봤지만, 혜정이 같은 역할은 한 번도 해본 적 없거든요. 감독님이 이전에 제가 연극하는 걸 보고 저랑 꼭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시나리오를 제게 주셨대요. 읽어보니 왜 저에게 주셨는지는 알겠지만, 너무 어려운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떡하지, 거절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잤어요. 그러고 자다가 어느 순간 눈을 딱 떴는데, 시나리오 속 그 여자의 기분이 살짝 남아 있는 거예요. ‘다시 읽어봐야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시 읽었는데,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한 3일째 되는 날 감독님께 전화를 했어요.(웃음)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이서 전부터 이런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화려한 영화나 드라마도 좋지만, 어떤 한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작품을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녀의 취미생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야기가 정인이의 감정선을 따라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좀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정인 캐릭터가 대사가 그다지 많지 않거든요. 말 대신 표정이나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고요. 근데 그와 동시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님이랑 미팅할 때 제가 어필을 많이 했죠.
ⓒ 배우 김혜나
방금 언급하셨듯이 참고 사는 게 일상이 되어 늘 어딘가 억눌려 있는 정인은 초반부에 대사가 거의 없어요. 미묘한 표정 변화나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서 공부를 많이 했죠. 혼자 집에서 카메라를 켜놓고 촬영도 해보고요. 왜 누구나 살면서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할 말은 많지만 참는다.’ 이때 드러나는 미묘한 표정 변화도 있을 거고요. 사실 정인이는 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한 인물이거든요. 초반에는 이런 점이 드러나지 않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터져 나오는데, 그걸 표현하는 게 어려웠어요. 감독님도 초반에는 정인이의 표정이 잘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디렉팅을 주셨는데, 표정이 읽히지 않으면서 안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표현해내야 하니까요. 제가 아무리 속으로 막 부글부글 끓는다 생각하면서 표정을 지어도 관객이 봤을 때는 ‘저게 뭐지?’ 싶을 수도 있는 거니까, 카메라로 제 모습을 촬영해 모니터링하면서 스스로 연구를 많이 했어요.
도시에서 온 미스터리한 여자 혜정은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정인에게 다가가지만, 끝내 정인의 마음을 여는 인물이에요. 배우 김혜나에서 혜정이 되어간 과정이 궁금합니다.
혜나 촬영할 때도 보셨겠지만, 제가 평소에 엄청 까불고 밝은 성격이거든요.(웃음) 근데 혜정이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동요가 거의 드러나지 않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내면의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을까. 저는 좀, 막 다 표현하고 드러내고 이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매일 명상을 했어요. 평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차에서 내려 촬영 현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 상태를 쭉 가지고 가려고 했죠. 까불지 말자, 장난치지 말자. 머릿속으로 계속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글은 '영화 <그녀의 취미생활> 배우 김혜나, 정이서 (2)'에서 이어집니다.
글. 김윤지 | 사진. 김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