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터 최산호
제일기획 부사장 출신으로, 지금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최인아 대표가 최근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해냄출판사)를 내면서 채널예스와 인터뷰한 글을 읽었습니다. 그는 요즘의 출판 트렌드와 맞지 않게 위로의 뉘앙스가 없고 도전적으로 느껴지는 제목을 쓴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 좀 잘해보자.”라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아 아쉬웠다고요. 그는 꼰대처럼 들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나라에서 지금 부는 바람은 ‘안 해도 괜찮아.’다. 그런데 이 시간을 다 통과해온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안 해도 괜찮지 않다.’는 말이다.”
다들 우르르 몰려가 하는 말이지만 다른 입장이 있다고 반박하고 싶어지는, 그게 현실이거나 시대정신이라고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그러나 참지 못하고 그 말을 해버렸다가는 이상한 취급을 받을 것 같아 그저 삼켜버리고 마는 말이 제게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 복이 최고다.’ ‘여자는 예쁜 게 최고’ 같은 말이 그러했고 조금 더 커서는 ‘열심히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그놈이 그놈이다.’ 같은 말이 참 듣기 싫었습니다. ‘일단 낳기만 하면 알아서 큰다.’ 같은 말도, ‘조물주 위에 건물주’ 같은 말도, 코로나19가 한참이던 시기에 부자 되기 열풍이 불면서 ‘경제적 자유’ 운운하며 근로소득을 무시하는 말도 매번 처음 듣는 듯 불쾌했죠.
이 정도로 듣기가 괴로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최인아 대표가 ‘안 해도 괜찮아.’라는 최근의 말들을 들으며 갸우뚱했다고 하는 것처럼 저 또한 딱 그 정도의 의아함이 드는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무해하다’라는 말입니다.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무해하게 말하고 쓰고 싶어요.” 글쓰기 워크숍을 시작할 때면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게 되는데요. 그때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특히 ‘자기표현의 기술을 키우는 글쓰기’류의 수업을 열 때 한 번은 등장하는 발언이에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싶고 이를 무해한 방식으로 말하고 싶다는 건데, ‘무해하다’라는 표현이 완전히 대중적이지는 않다 보니 그런 언어를 쓰는 이들의 경향성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주로 20대 여성인데 환경과 페미니즘과 채식에 관심에 많은, 지적으로 고양된 실천가 타입이지요.
‘무해’라는 표현에 힘을 준 단단한 입술을 보고 있으면, 비건을 지향하고 여성학에 심취했던 대학 때의 한 시절을 그들에게 겹쳐보게 됩니다. 세상을 보는 기준이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던 시절에는 도대체 왜 이따위인가 이해할 수 없고 분노할 일이 많았어요. 이처럼 정의감이 있고 감성적으로 예민한 정서를 갖고 있는 이들은 지적 능력과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러니까 눈앞 문제에만 갇혀 있기도 바쁜 시기에 미래 세대와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겠지요. 또한 자신이 상처받았던 기억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타적인 사람이기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라는 것이겠지요.
무해하기는 불가능해서
여기서 무해한 말하기란 어떤 뜻일까요? 그 말의 의미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청할 때 학생들은 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제 이야기를 하되,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거죠.” “약자를 고려하는 말하기를 하고 싶어요.” “편견 있는 말, 폭력적인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한 번 더 물어보곤 합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그걸 지향하는 건 반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당연하고 옳은 이야기지만, 우리가 무해한 사람이 되는 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정확하게 자기표현을 하고 싶지만 그 목표로서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눈동자 앞에서 저는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자유형도 하지 못하는 초보가 강습 첫날부터 오리발을 끼고 싶다는 말로 들리거든요. 글을 완성하지도 않았는데 퇴고부터 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자기표현 자체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말을 하겠다.’는 목표를 잡으면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말하기 자체가 위축될 수 있습니다.
무해한 말하기를 하고 싶다는 목표는 어느 정도 연륜과 경험이 쌓인 상태로 자기표현에 능숙해졌을 때 지향해야 하는 거라 봅니다. 무해한 사람이 되겠다거나, 무해한 말을 하겠다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면 당장 저부터도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간 얼마나 편협하게 말해왔는지를 확인하게 되거든요.
한 달 이상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을 할 때 저는 받아둔 자기소개서를 강의 중반부를 지나 읽어봅니다. 수업 전에는 읽어봐도 머리에 남지 않고 흘러가 버리는데 어느 정도 이름과 얼굴이 매치가 될 때쯤 보면 학생들의 관심사와 특징이 잘 각인되거든요. 이때 파일을 클릭하던 손으로 헉 소리를 내며 얼굴을 감싸 쥐게 될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채 보육시설에서 자랐고, 지금은 경기도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친구의 지원서를 읽자 글쓰기 워크숍 시간에 예를 들다가 “우리의 부모님들은 ~말씀 많이 하시잖아요.” “우리 10대일 때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이런 기억이 하나쯤 있잖아요.” 같은 말을 여러 번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제 상상력과 공감 능력은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 정도까지 미칠 뿐이지, 그 이상 도달하지 못하는 겁니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 퇴사 후 한 달째 집 밖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고 하는 지원서를 읽었을 때도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에 비유하곤 한다.”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게 그 친구에게 너무 가볍게 들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속으로 기분 나빠하지 않았을까 하며 그 친구의 눈치를 본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제 입을 때리고 싶을 때가 몇 번이고 생깁니다. 제가 유독 경솔한 사람이어서 그럴까요?(그게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이 글은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 전에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더 좋은 곳으로 가자>를 썼습니다. 유튜브 채널 <정문정답>을 진행합니다. anne.jeong@daum.net
최산호
instagram.com/g.aenari
글. 정문정 | 그림. 최산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