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장송의 프리렌〉 (1) :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만난 우리는'에서 이어집니다.

ⓒ <장송의 프리렌> PV 캡쳐 (출처: TOHO animation チャンネル 유튜브)
그들은 함께해서 즐거웠고, 서로를 일으켰다
RPG 판타지와 애도의 정조라는 묘한 조합 속에서 <장송의 프리렌>은 고요하고 잔잔하게 진행된다. 프리렌이 하이터의 제자 페른과 아이젠의 제자 슈타르크를 일행으로 맞아들이면서 이 애도의 의미는 점점 강해진다. 일행이 마족이나 용과 배틀을 벌이기도 하고, 마법사 시험에 참가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모험은 요란하지 않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출판 만화에서 약점으로 지적받은 경직된 액션을 보완해 역동적인 신을 만들어냈지만, 음악이나 작화도 풍경화처럼 흘러간다. 그렇다고 마냥 정적인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지점이다. 상실의 슬픔이 정체(停滯)를 의미하지 않고 전진을 의미한다는 것, <장송의 프리렌>이 가진 힘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애도를 완성한다.
무엇보다도 <장송의 프리렌>은 시간을 사색하는 작품이라는 면에서 그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스토리상 수십 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점프해 사라지는 것 같더니, 다시 인간과 함께하면서 느릿하게 걸어가기도 한다. 시간이란 매번 정확하게 똑딱똑딱 계산해서 떠나는 것 같아도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는 멈추기도 하고, 그리움이 밀려올 땐 뒤로 돌아가기도 한다. 애니메이션 2화에서 프리렌은 힘멜의 동상 주변을 꾸며줄 꽃을 심으려 한다. 오래전 힘멜이 자신의 고향에서 핀 창월초 이야기를 한 것을 기억해낸 프리렌, 하지만 본 적이 없기에 마법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이제 창월초는 대륙에서 멸종하고 없다. 페른은 다른 꽃을 심자고 하지만, 프리렌은 포기하지 않는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기억은 남았다. 우리의 시간은 모두 다르지만, 어느 시점에는 함께 있었고, 그 존재가 이미 이 세상에 없어도 시간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프리렌이 시시한 마법을 수집하는 이유도 그걸 칭찬해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프리렌이 힘멜과 함께했던 꽃밭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창월초를 찾는 장면은 가슴 벅찬 음악 속에서 더없이 아름답다. 힘멜의 동상 주위에 피어난 꽃들은 프리렌의 얼굴을 스친 미소처럼 은은하게 흔들린다.
나는 <장송의 프리렌>을 여러 이종의 존재와 함께 보낸 우리의 삶에 대한 은유로 읽는다. 이 글 초반에 푸바오나 반려동물 이야기를 한 까닭도 그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에 마음을 쏟았던 이들은 시간의 갭을 절감한다. 개나 고양이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러간다. <장송의 프리렌>에서는 인간이 먼저 죽고 엘프가 남아 인간을 추억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가 엘프처럼 개나 고양이보다 오래 산다. 즉 인간인 우리가 프리렌인 셈이다. 그리고 소중한 존재를 잃은 슬픔 속에서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고, 미래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살뜰한 마음이 있다. 프리렌과 힘멜이 나눈 공감이 무엇이었는지, 인간의 언어로 쉽게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들은 함께해서 즐거웠고, 서로 일으켜주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개나 고양이든, 판다든, 혹은 그밖에 어떤 존재든 서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만나 마음이 따뜻했다면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장송의 프리렌>은 이렇게 애틋하게 떠나보낸 이를 소환하는 마법 같은 작품이다. 이 만화를,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면, 그건 우리와 엇갈린 시간 속에서 함께 즐거웠다가 이제는 떠나간 사랑스러운 이들이 기억났기 때문일 것이다. 각기 다른 속도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만났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개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글. 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