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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0 커버스토리

<독친> 장서희 (2)

2023.11.15

이 글은 '<독친> 장서희 (1)'에서 이어집니다.

ⓒ 배우 장서희

<독친>에서는 극성 엄마, 지난 4월 종영한 드라마 <마녀의 게임>에서는 딸을 무척 사랑하는 엄마를 연기했어요. 장서희 배우의 실제 모녀 관계는 어떤가요?
제가 세 자매 중 막내딸이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아역 배우 때도 어머니가 뒷바라지를 많이 해주셨고요. 그래서 혜영이라는 캐릭터를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죠. 혜영은 어릴 때부터 사랑을 못 받았고 사랑을 못 받아봤으니까 사랑을 어떻게 주는 줄도 모르는 인물이잖아요. 자식은 나처럼 살지 말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남편을 만나길 바라죠. 그러기 위해선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자식을 끊임없이 세뇌시키고요. 제가 살아온 삶하고는 결이 많이 달랐죠. 저희 어머니는 공부하라는 소리 안 하셨거든요.(웃음)

<인어아가씨>, <아내의 유혹>의 히트 행진으로 배우 장서희 하면 일일극, 복수극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방영한 지 각각 20, 15년이 넘었는데도 중국에서 리메이크를 하고, TV나 유튜브를 통해 계속 화제가 되고 있어 지금 10, 20대도 아는 드라마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남는다는 것이 배우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정말 감사하죠. 배우로서 사람들한테 딱 각인되는 작품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아내의 유혹>을 못 본 세대도 그 작품을 알고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서 보며 웃기도 하잖아요. <인어아가씨>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아내의 유혹>이란 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또 그 작품이 다른 작품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독친>도 그런 작품이 될 수 있는 거고요. 지난 모든 작품이 감사해요.

ⓒ 배우 장서희

특히 <인어아가씨>에서 은아리영이 소주병을 깨면서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장면은 유튜브 조회 수가 엄청납니다. 은아리영이라는 이름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고요. 이 캐릭터의 이름을 들으면 지금은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제가 처음 주연을 맡고, 처음으로 빛을 본 작품이라 솔직히 늘 기억나는 작품이에요. 은아리영이라는 배역을 맡은 건 제게 너무 큰 행운이었죠. 그게 벌써 20여 년 전인데, 아직도 드라마의 장면들이 계속 회자되잖아요. 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지금은 여자들의 입김도 세고 남자들한테 쉽게 지지 않잖아요. 근데 당시 드라마에선 여자들은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하고 남편이 바람피워도 용서해야 했어요. 요새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은아리영은 그런 시대에 살아가는 모든 여자들에게 대리 만족하게 해준 캐릭터이지 않나 싶어요. 이건 들은 얘긴데, 제가 한혜숙 선생님 뺨을 때렸을 때 찜질방에서 TV를 보시던 아주머니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대신 복수해준다고.

영화 <2라도 괜찮아>에서는 태권도 선수 출신 엄마를 연기하기도 했죠. 돌려차기 같은 액션 연기도 직접 선보여 특히 기억에 남는데, 그간 해본 적 없거나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나요?
액션 연기를 또 해보고 싶어요. 특히 영화 <에이리언 2>에서 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엘렌 리플리 같은 역할이요. 행성에서 마지막으로 혼자 살아남은 아이를 에이리언 틈에서 시고니 위버가 구출할 때 팔이 우두둑하고 부러지는데도 아이를 안 놓고 결국 구해내거든요. 그때 그 캐릭터를 보면서 ‘저게 진짜 엄마지.’, ‘왜 엄마의 액션을 다룬 영화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음, 한마디로 <테이큰>의 여자 버전이랄까요?

ⓒ 배우 장서희

워커홀릭이라고 할 만큼 연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오래 활동하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연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기보다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라는 게 결국 사람이 사람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배우들이 사람의 심리에 대해 많이 공부하는 게 그 때문이에요. 사람이 다양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에 충분히 공감해야 연기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이해나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연기 외에 장서희를 가장 떨리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행 가기 전에 짐 싸는 걸 아주 좋아해요.(웃음) 역마살이 있나 봐요. 집에 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짐을 여행 당일에 싸는 일은 절대 없고, 여행을 떠날 계획을 잡으면 그때부터 트렁크 펼쳐놓고 필요한 걸 하나씩 하나씩 담아요. 준비하는 과정이 되게 재밌어요. 짐 싸는 내내 설레고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10, 20, 30대의 장서희는 어떤 배우였나요?
아역 생활을 하던 10대 때는 엄마 손을 붙들고 촬영장에 갔던 기억이 있어요. 연기하는 게 마냥 재미있던 때였죠. 20대 때는 고민이 참 많았어요. 20대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할 시기잖아요. 주변 배우 친구들은 하나둘 주연을 맡기 시작하는데, 나 혼자 뒤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게 방황의 시기를 겪다가 30대가 됐고 배우로서 전성기를 맞게 해준 <인어아가씨>라는 드라마를 만났죠.

ⓒ 배우 장서희

그 시기의 어린 서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20대의 저를 만나면 그냥 다독여주고 싶어요. 음, 30대 때는 너무 좋은 작품을 만났고 배우로서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저 그때 진짜 열심히 했어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몸소 느낀 사람이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싶어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열심히 하기 힘들 것 같다 싶을 정도로요.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오랜 조연 생활 끝에 연기력으로 주목받으며 엄청난 시청률의 주인공이 되고 연기대상까지 수상했어요. 후배들이 존경할 만한 선배 배우로 장서희를 소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려는 후배가 있다면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저도 서른 살 때까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입구에 딱 들어선 느낌이었어요. 이 터널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거고, 그때는 솔직히 아무리 옆에서 조언해줘도 들리지 않아요. 결국 모든 건 본인 마음에 달린 거니까, 그냥 본인이 생각했을 때 이 길이다 싶고 끝까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면 밀어붙여서 끝을 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언젠가는 빛을 봐요. 중간에 할까 말까 갈등이 생기고, 자기 스스로에게 의심이 든다면 그 길이 내 길이 아닌 거죠.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해요. 각각 상황이 다르니 제가 단호하게 ‘자신을 믿으세요’ 말하긴 어렵지만,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을 믿으라고 하고 싶네요.


글. 김윤지 | 사진. 김슬기 | 헤어. 예진 | 메이크업. 지수 | 스타일리스트. 이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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