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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0 인터뷰

김현 시인과 듀엣 낭독회 (2)

2023.11.08

이 글은 '김현 시인과 듀엣 낭독회 (2)'에서 이어집니다.

ⓒ 카페 밑줄 외관

낭독회를 운영할 때 지키는 원칙 같은 것도 있나요?
참여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낭독회에 자기 목소리를 남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꼭 모든 참여자들에게 말을 걸어요. 혹자들은 그래서 저를 문단의 이금희, 라고 해요. 진행 방식이 <아침마당> 스타일이라면서(웃음). 그렇게 낭독회를 진행하려 애쓰다 보니 대화가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요. 작가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공간에서 글을 매개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신나서 어떨 때는 낭독보다 수다를 더 오래할 때도 있고요.

낭독회 중에 가장 설렘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낭독할 때 한순간, 공간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이 있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는 나누던 공간이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변화하는 거죠. 무언가가 찾아왔다, 라고 일컫는 순간인데, 모두가 숨죽인 채 오로지 한 사람의 목소리에 몰입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설렘과 희열이 동시에 일죠. 아마도 그 뜨거운 고요함 때문에 계속 낭독회를 하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시인으로 데뷔해서 첫 소설집을 내신 소감이 어떠세요?
다시 신인으로 돌아간 것 같고 좋네요.(웃음) 시로 데뷔했지만, 다양한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시도, 소설도, 에세이도 쓰고, 요즘엔 희곡을 쓰고 싶어서 열심히 희곡을 읽고 있어요. 장르를 자연스레 넘나들면서 그때마다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려고 애쓰고 싶어요. 이번 소설집도 그러한 의지의 산물이고요. 2017년부터 최근까지 쓴 작품들을 모았는데, 모아놓고 보니 퀴어 연애담이기도 하고, 참사 후일담이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사람들, 모두가 잊으라고 할 때 잊지 않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죠. 첫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일곱 번째 시집 <장송행진곡>도 함께 작업하고 출간했는데, 시집과 소설집 모두 그러한 자장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면 그즈음 기억과 망각,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세월호 304 낭독회등 필요한 곳에 목소리를 내는 건 어떤 마음인지도 궁금한데요.
음, 뭔가 대단한 마음은 아니고요. 사회적 참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을 그저 제가 잘할 수 있는 방식, 애정을 쏟아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보니 그게 글이 되고, 낭독이 되고 하는 거 같아요. 저 혼자 뭔가를 다하려는 큰 덩어리의 마음이라기보단 여러 마음에 보탠다, 한 부분을 채운다는 조각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 조각이 모여 이루는 큰마음을 생각하면 어딘가에 마음을 쓰는 일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집니다.

듀엣 낭독회를 하면서 고스트가 있다고 느꼈던 순간도 있나요?
폴란드에서는 낭독회를 할 때 꼭 한 자리를 비워둔다고 해요. 영혼의 자리인 거죠. 간혹 부득이한 사정으로 낭독회에 참여하지 못한 이 덕분에 자리가 비워져 있을 때가 있어요. 그때 저 자리는 영혼을 위한 자리, 유령을 위한 자리라고 말하곤 하죠. 산 자들로 꽉 찬 낭독회도 멋있지만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낭독회는 더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듀엣 낭독회에 참여하는 ‘단골 고스트’들도 있을 거라 믿어요.

ⓒ 카페 밑줄

고스트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흔히 유령이라고 하면 혼자 외롭게 날아다니는 이미지를 많이 상상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유령들이 듀엣으로 있으면, 또 여럿이 모여 있으면 외롭고 쓸쓸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낭독회에 있는 유령도 외로운 유령이 아니라 슬픔의 유령이 아니라 다정한 기쁨의 유령이겠죠. 불행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이름의 유령!

작가로서 창작부터 낭독회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는 원동력도 궁금하거든요.
힘의 원천이 여럿 있겠으나 최근엔 제가 쓴 것들, 쓰면서 살아온 삶이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소설집과 시집을 묶으면서 작가도 독자들한테 기댈 수 있음을 알았다고 했는데요, 제 글을 애정을 갖고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제가 그 사람들에게 기댈 수 있다는 확인된 사실이 또한 한동안 글을 쓰고 사는 데에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책을 읽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무엇보다 계속 읽어주세요, 라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고요. 아울러, 소설과 에세이 외에 시나 희곡, 평론 등 쉬이 손이 가지 않는 문학 작품들에도 관심을 갖고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가와 책과 독자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연결되어 있다라고 하는 감각에서 오는 분명한 다정함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끝으로, 이 계절에 어울리는 책을 《빅이슈》 독자들에게 추천해주세요.
<다시 살아주세요>(신미나 지음, 마음산책 펴냄)는 신미나 시인이 쓴 첫 산문집인데요.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계절과 마음에 돋보기를 대듯이 이 계절, 내 마음의 행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게끔 하는 책이라 추천하고요. 또 한 권은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 펴냄)라는 책입니다. 10.29 참사 작가기록단이 기록한 인터뷰집인데요. 이태원 참사 1주기이기도 했고, 슬픔을 정확하게 앎으로써 애도하고 연대하고 진실 규명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책 중에서 한 권을 골라드린다면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김현 지음, 봄날의책)을 골라드리리고 싶네요. 가을은 산문의 계절, 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거든요.

카페 밑줄 @meet_jool
서울시 성북구 삼선교로23가길 25
‘듀엣 낭독회’는 최산호 일러스트레이터가 운영하는 카페 겸 작업실인 ‘카페 밑줄’에서 열립니다. 한 달에 한 장, 1년 동안 시, 소설, 산문을 읽고 낭독회 포스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림이 한 장 한 장 포개질 때마다 함께한 사람들의 시간과 마음도 포개져 있습니다.

소개

규환
에디터, 작가. 2023년엔 무슨 일을 할까, 누구에게 기쁨을 줄까 고민하고 있다. @kh.inspiration

이규연
바쁜 일상 속 반짝이는 찰나를 담는 사진작가. 편안하고 차분한 사진을 좋아하고,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글. 정규환 |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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