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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컬쳐

드라마 <연인>

2023.12.02

ⓒ 드라마 <연인> 스틸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퓨전 사극이 한창 붐을 이루면서 한 작가의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많은 창작자가 이 말에 공감을 했었다. 기존의 정통 사극으로 분류되던 드라마들은 잘 알려진 인물의 생애와 그 시대 상황을 재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는데, 이병훈 감독이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를 선보이면서부터 점점 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 되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창작자가 사극을 그릴 때 실록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보다는 현대 사람들이 스토리와 인물에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하여 현대의 이야기를 과거에 끼워 맞추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퓨전 사극의 형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흥미롭게도, <연인>은 이런 최근의 흐름에 반기를 드는 이야기로 보인다. 현대적 인물과 대사를 등장시켜 극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으나, 드라마는 오롯이 병자호란이라는 시대 상황에 집중한다. 다시 어떤 시대에 쓰는지보다 어떤 시대를 쓸지에 더 집중하는 드라마가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이전 황진영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작법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대부분이 특정 인물의 영웅적인 행위로 문제를 역동적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이나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서 빚어지는 인물들의 갈등과 파국에 집중한다면, 황진영 작가는 항상 그 인물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시대적 배경에 집중한다. 데뷔작인 드라마 <절정>(2011)에서 주인공 이육사(김동완)와 주변 인물들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배경과 따로 떼어놓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이후 선보인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2017)에서도 마찬가지로 연산군(김지석)의 개인사에 집중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작가는 연산군이 바꾸고 싶어 했던, 결과적으로 그를 폭군에 이르게 한 사회구조를 먼저 이야기한다.

그 세계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가깝다. 주인공이 제아무리 의지로 뭔가를 이루려고 해도 시대는 개인의 의지를 눌러버린다. <제왕의 딸, 수백향>(2013)의 세계는 형제가 서로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배신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고, 무령대왕(이재룡)은 시대적 요구에 희생을 강요당해 자신의 아들과 죽은 선대왕의 아들을 바꿔치기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드라마 <연인>에서도 가끔 위기 시에 주인공이 비범함을 발휘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지키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들의 특출함은 영웅적인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특별한 영웅이 아니기 때문에 운이 없으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핍박받고 고통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황진영 작가가 이야기하는 영웅이 다른 작품의 영웅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낄 줄 아는 것이다. <절정>에서 이육사는 이야기한다. “난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슬퍼도 안 슬픈 척, 그렇게 살 수 없소. 난 시인이요.”

보편적 마음으로 연결된 과거와 현재
병자호란은 비극의 역사다. 조선의 권력자들은 전쟁을 막지도 못하고 책임을 회피했으며 사회는 포로로 끌려간 여성들을 외면하고 전란의 기억을 망각한다. 붙잡힌 포로들은 청나라에서 수난을 겪거나 조선으로 돌아와도 다시 쫓겨난다. 특히 ‘환향녀’로 불리던 조선 여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아름답기는커녕 불쾌감만 일으키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지만 끝끝내 보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완전히 동떨어진 인물처럼 보이는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불러낸 작가는 단지 시대적 비극에 희생당하는 여성이 아니라 그럼에도 내일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는 주체적 인물인 길채(안은진)라는 캐릭터로 이를 변주해내는 데 성공한다. 오랑캐에 의해 위험에 빠진 마을을 구해내고 친구들을 지켰으며 전란 이후에 망한 집안을 사업 수완을 발휘해 다시 일으켜 세운다. 포로로 끌려가도 끝내 생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시대가 환향녀라며 손가락질을 해도 당당히 맞선다. 길채는 단지 극에 등장하는 하나의 인물이 아니다. 은애(이다인)나 종종이(박정연), 강빈(전혜원)과 이랑(남기애) 그리고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 투쟁을 해온 그 시대의 여성들을 대변한다.

특히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연인 파트2>에서는 조선 사회의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사람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량음(김윤우)이나 자신의 위치에 불안감을 느끼는 각화(이청아), 조선의 생존을 위해 굴욕을 참아내야 하는 소현세자(김무준) 그리고 포로로 끌려간 조선의 백성들이 연결된다. 장현(남궁민)이 우연히 이 모두를 보듬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며 그가 그들에게서 길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장현은 길채의 역할을 함부로 침해하거나 이상화하지 않으며 있는 모습 그대로 품는다.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길채에게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라고 말하는 장현의 대사는 마치 작가가 장현을 통해 그 시절의 원혼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지 몇몇 사건에 살을 붙여가며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병자호란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지 5년간 많은 고민 끝에 나름대로 결론을 냈기에 <연인>에서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예를 들면, 파트2를 통해 파트1의 이야기를 보충하며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던 장면의 이면을 드러내는 구도를 짜는 것이다. 파트1에서는 바다에 뛰어드는 여인들의 모습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정도로 비추며 전쟁의 비극을 묘사했다면, 파트2에서는 길채가 도망치는 포로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재현하며 이를 통해 여성들이 뛰어내릴 수밖에 없던 억압된 사회구조를 이야기한다.

특정 시대를 재현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지금의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쌓기 힘들지 않을까? 연인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건 바로 역사의 보편성이다. 지금의 현대사회 또한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공동체는 붕괴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사회질서 또한 흔들리면서 유지된다. 그리고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들은 차별받고 노약자나 취약 계층은 외면당하고 있다. 그 반면에 조선이라고, 전근대사회라고 해서 휴머니즘이 없었던 것도 아니며 의미가 다를 수도 있지만, <연인>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극이 펼쳐지는 능군리라는 공간에 대해 보여주는 “예는 정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는 구절은 최명길(김태훈)이 속환된 부녀자들의 이혼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나온 말이다. 연인은 어느 시절에나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마음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지고지순한 의리이며 정(情)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울림을 전한다.

소개

jake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적는 사람입니다.


글. jake | 이미지. 드라마 <연인>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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