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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서로를 지켜내려는 믿음과 싸움들 속으로 (2)

2023.12.04

이 글은 '서로를 지켜내려는 믿음과 싸움들 속으로 (1)'에서 이어집니다.

ⓒ 해수 유통이 된다면 언제든 원형으로 돌아갈 수 있는 수라 갯벌

지켜내려 한 건 생태이자, 거기에 연결된 나
영화 <수라>를 본 이후, 나는 영화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구성된 ‘100개의 극장’ 추진단 활동을 했고, 이후 전북녹색연합이라는 단체에서 반상근 활동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를 쓰는 나에게 단체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으로 옮겨가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신기하다. 내가 몰랐던 일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던 한편, 마땅히 지켜야 할 일에 내가 멀찍이서 구경하기보다는 참여하고 싶었다. 일상을 포기해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두렵고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일들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활동가들이 지금까지 지켜내려 한 건 생태이기도 하며, 거기에 연결된 나이기도 하다.

때때로 나는 내가 구조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의 무게감이 커서 쉽게 쓰기 어렵게 느껴진다. 또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살아가면서 많은 폭력을 누군가에게 가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탐욕적인 이윤을 추구하고 성장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관계들을 많이 놓아버렸다. 인위적인 쾌적함과 편리함을 내려놓기 힘들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으로 나의 성장을 도모했다. 시인으로서의 내가 시를 쓴다는 것 역시도 다시 돌아봐야 할 문제로 느껴졌다. 시라는 게 대체 무엇이지?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게 다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많은 고민이 든다. 폐허를 기록하는 투시적인 시선도 중요하고, 일상 속 시적인 순간에 머무르는 일도 너무나 소중하다. 모두 생태에 친화적인 일들일 것이다. 시를 쓰는 자리란 폭력에 반하는 비폭력의 방식들로 이해되는 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긴급하게 우리의 삶 체제 전반을 전환해야만 대규모 생태 학살도, 재난도, 전쟁도 막아내거나 대응해낼 수 있을 텐데, 이 속도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할까? 어쩌면 시가 일상에서 살아 숨 쉬도록 내가 시 대신 싸워주고, 시가 누워 쉴 수 있는 안전한 땅을 만들어주는 게 시인으로서의 내가 도모할 일인 걸까? 이때의 시는 내게 있어 지키고 싶은 이들이며, 생태계라 할 수 있다. 그 모든 지킴의 흔적들을 함께 나누는 삶을 살게 되면 좋겠다. 오늘은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당신에게 보여준다. 나만이 힘을 내는 건 아니겠지. 누군가 동시에 나를 지켜주고 있겠지. 당신으로부터 받은 믿음에 근거해 그런 다정한 믿음도 가져보면서.

소개

윤은성
거리와 동료, 시(詩), 그리고 수라 갯벌의 친구. 시집 <주소를 쥐고>를 펴냈으며, 기후활동과 문학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글 | 사진. 윤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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