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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2 에세이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2023.12.07

“허구의 역사극인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대체역사적 낙천주의가 있는 만큼, 우리에게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라고 격려해준다. 현실에선 아무리 어렵더라도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은 ‘수업’이 되었으리라.”


드라마 <레슨 인 케미스트리> 스틸 ©애플TV

10여 년 전쯤 요리를 배우러 열심히 다녔다. 이탈리아 요리, 베이킹, 한식 일품요리. 그때 깨달았다. 요리 클래스는 재미있지만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공들여 배운 만큼 한 몫의 사람으로서 필요하면 뭐든 하긴 하겠지만, 요리를 잘할 재능은 없다. 처음에는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불편했다. 어떤 주의를 표방하든 집밥의 미덕이라는 가치는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사회가 바뀌어도 여성성과 가정 요리의 연결은 쉽게 떨칠 수가 없다. 요리에는 생활의 가치가 깃들지만 나는 요리를 통해서 은연중에 이상적 여성을 구현하는 방식에는 거부감도 느꼈다.

2023년 가을에 애플 TV+에서 공개된 <레슨 인 케미스트리>에도 이런 딜레마는 내재한다. 보니 가머스의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여성주의와 요리, 과학 연구와 가족주의를 결합한 작품이다. 1회가 시작하면 50년대 미국의 방송국 스튜디오가 보인다. <스텝포드 와이프> 속 여자들처럼 의상을 차려입은 주부들이 촬영장 안으로 들어와 방청석에 자리 잡는다.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실험실 가운과 비슷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다. 깔끔하게 올린 머리에 노란 연필을 꽂은 이 여성은 <6시 저녁>이라는 요리 쇼의 진행자이다. 하지만 그는 감정을 배제한 언어로 요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다른 진행자와는 다르다. 그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조트(브리 라슨), 원래 직업은 화학자이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딸 매드(앨리스 할시)와 개 6시 30분(Six–thirty)과 함께 산다.

요리는 화학작용이고, 그러니 화학을 이해하면 요리도 잘해낼 수 있다는 것이 <레슨 인 케미스트리>의 기본 전제이다. 불과 물, 다양한 물질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인 요리, 이를 통해서 여성들은 화학적 원리를 배우고 새로운 세계에 들어간다. 이 드라마는 요리를 소재로 하는 동시에 1950년대 여성 과학자들의 투쟁을 그렸다. 1회에서 엘리자베스가 근무하는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는 여성 직원들을 대상으로 미인 대회를 연다. 엘리자베스는 과학자이지만 실험실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참가해야 한다. 엘리자베스가 박사 과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연구소에서 하급 연구원으로 일하는 이유도 남성의 폭력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과학자로서 엘리자베스를 인정하는 사람은 천재 과학자로 꼽히는 캘빈 에번스(루이스 풀먼)뿐이다. 그리고 그는 사적으로도 엘리자베스의 동반자가 된다. 그리고 그와 연구를 잃은 후, 독립 과학자로 활동하는 엘리자베스는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화학 지식을 사용한 요리 쇼에 출연한다.

이 글은 '<레슨 인 케미스트리>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


글.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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