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유영 <합창 14>, 70.0×90.0cm, Acrylic, Sand, Formboard on Panel, 2023
전시 기획과 미술 평론을 하며 가끔 작품을 사기도 하고, 서문 비용을 작품으로 대신 받을 때도 있다(물론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고, 누가 먼저 제안하든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서로 타이밍과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잘 아는 사이일 때 가능하다). 많진 않지만, 그리고 그 일부는 다시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하지만, 소위 ‘배민영 컬렉션’을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다양함 속에서도 어떤 공통성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해줄 수 있는 하나의 캐치프레이즈 같은 게 있다. “비움 속에 채움이 있거나, 채움 속에 비움이 있는 작업.”이 나의 나름 철저한 준거다. 물론 어떤 작업이든 이 말에 끼워 맞출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령 ‘자연으로부터’, ‘조화’ 같이 지극히 호환적이어서 관대할 정도로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문구나 단어를 아무리 적용해보려 해도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이 오지 않으면 평론에 쓸 수 없듯이, 어떤 작품을 꼭 갖고 싶다고 느낄 때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기준은 결국 비움과 채움의 오묘한 조합이었음을 고백한다.
공교롭게도 임수빈과 서유영 두 사람의 2인전이 2021년 8월, 그리고 올해 1월 9일부터 20일까지 두 번에 걸쳐 열린 장소가 모두 비움갤러리다. 갤러리는 기본적으로 채움도 중요하기 때문에 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는 김상균 대표가 선택한 갤러리 이름 자체가 흥미롭기도 한데, 역시 ‘비움 속 채움’을 늘 잘 해내야만 하는 아이러니와 스트레스를 미루어 짐작해보며 늘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이 칼럼의 제목을 홍보 목적에도 맞추는 한편 이 기회에 나의 컬렉션 준거를 밝혀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 지난달에 비움갤러리가 새로운 주소(서울시 중구 퇴계로32길 34 1층)로 둥지를 옮겼다. 다행히 기존 위치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혹시 모르고 갔더라도 완전히 헛걸음하고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이 글을 보는 사람이라면 갤러리가 위 주소로 이전했음을 꼭 기억해두길 바란다. 전시는 매일 정오부터 저녁 7시까지 볼 수 있고 일요일과 월요일은 예약제로 관람 가능하다고 한다. 쉽지 않은 운영 방침인데, 역시 비움 속 채움이 확실한 갤러리다.
그럼 두 작가의 세계로 더 들어가보자. 먼저 서유영의 이번 신작인 ‘합창’ 연작은 10×10cm의 작은 패널 위에 집을 하나씩 그리고 여러 개의 조각을 모은 작품으로, 아파트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똑같이 생긴 집이 여러 층 모여 하나의 건물을 이룬 아파트,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이들이 모여 아파트 규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켜가면서 공동생활을 잘 유지하는 모습을 ‘나뉘어 있지만 잘 섞이고 어우러져 하모니’를 만드는 것에 비유하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채 위주 작은 집들의 율동감 있는 배치를 자기만의 색감과 마티에르로 표현해내며 큰 사랑을 받아온 작가는 “내 고향은 아파트”라고 할 정도로 아파트가 많은 동년배 1980년대생 이후 세대의 정서를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파트가 흔히 이야기하는 대로 주민들끼리 서로 소식을 잘 모르고 각박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커뮤니티와 이웃의 정, 그만의 규범에 대한 느슨함과 엄격함의 고민이 있을 것임을 생각해왔을 터. 재밌는 점은 아파트 그 자체에 대한 사실적 표현(특히 사라져가는 풍경의 기록 위주)은 이미 회화, 사진, 출판, 설치 등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져왔지만, 모듈 구조 안에 각자의 독채를 둔 작업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서유영 특유의 직관적인 그림의 맛이 있으면서도 메시지가 있는 이번 시리즈 역시 성공적일 것이라고 본다.
이 글은 '서유영·임수빈의 두 번째 2인전 <미시와 거시>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배민영
아트 저널리스트이자 누벨바그 아트에이전시 대표. 기획과 평론을 한다.
글 | 사진제공. 배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