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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8 에세이

2030의 오늘은 - 인간관계의 시소를 타다

2024.05.08

글. 최예솔

학창 시절 친구들의 생일을 챙기는 것을 좋아했다. 생일 한 달 전부터 어떤 선물을 줄지 고민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꾹꾹 담아 편지를 썼다. 친구가 좋아하면 행복을 느꼈지만 막상 내 생일에는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지나치는 친구들이 있어 섭섭할 때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호구’라고 불리는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반 친구들은 내가 열심히 한 숙제나 필기를 당연한듯이 빌려 갔고, 난 타인이 부탁을 해올 때 잘 거절하지 못했다. 호구라고 불리는 삶을 살수록 타인이 만만하게 본다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채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인간관계라는 시소를 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놀이터 기구 중 특히 시소를 좋아했다. 시소를 타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데 그걸 막기 위해 뒤로 몸을 젖혀 발버둥을 치며 아등바등 노력했다. 중립을 지키려는 시소처럼 상대방이 주는 만큼만 애정을 주고, 만만하게 본다고 느끼면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험난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 뒤 먼저 애정을 주는 일은 없었다. 이후 대외활동이나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저 일로서만 사람들을 대하려 했다.
대학교 입학 후 어느덧 취업 준비 시기가 왔고,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렸건만 계속된 실패와 불합격이라는 꼬리표는 나를 더 힘겹게 만들었다. 계속된 탈락의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했다. 꿋꿋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려고 했지만 주변의 정보 및 면접을 준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껴 지인들에게 먼저 부탁을 하게 되었다. 각자 취업에 힘을 써야 하는 시기였고, 지인들에게 큰 도움을 준 적이 없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인들은 쓰고 있는 자기소개서를 보여주기도 하고, 피드백을 주며 진심으로 조언해주었다. 시간을 내어 같이 면접 준비를 도와주기도 했다. 먼저 애정을 주지 않았음에도 진심이 담긴 응원과 위로를 해주는 사람들의 모습이 놀라웠다.

자기의 한쪽을 내어주는 사람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과 응원에 힘을 얻어 사회복지기관과 중독 관련 기관에 입사할 수 있었다. 사회복지기관에서 근무했을 때는 노인복지를 담당했고, 그중 도시락 배달을 했다. 도시락 배달을 위해 문을 두드리면 심하게 화를 내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대부분 그 어르신과 대화하는 것조차 꺼려 했다. 그러나 나는 어르신께 더 씩씩하게 웃으며 인사를 드리고, 자주 전화를 드렸다. 처음에 화를 내던 어르신이 어느 순간 대문 앞에서 기다리시기도 하고, 후에는 화낸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셨다. 알고 봤더니 어르신은 걷기가 불편한데 집 안에 계단이 많아 현관까지 나가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배달원들은 못 들은 줄 알고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이미 현관으로 나가고 있던 중이어서 화를 냈던 것이다.
현재는 중독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일을 그저 일로만 접하지 않고,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줬던 사람들처럼 타인을 대가 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절대 중독으로부터 멀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중독으로부터 멀어지고,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때때로 애정과 따뜻함의 힘을 느끼곤 한다. 또한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에 내가 더 힘을 얻기도 한다.
과거에는 나를 함부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지키기 위해 인간관계 시소의 중립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이후 한쪽을 내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타인에게 애정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타인이 그만큼의 애정을 주지 않아도 좋다. 나에게 한쪽을 내어주는 사람들처럼 나 또한 한쪽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한쪽으로 쏠리는 시소처럼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을 배워나가고 있다.


‘사단법인 오늘은’의 아트퍼스트 에세이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챙김을 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매주 글을 쓰고 나누며 얻은 정서적 위로를, 자기 이야기로 꾹꾹 눌러 담은 이 글을 통해 또 다른 대중과 나누고자 합니다.


최예솔
스물일곱 살, 중독 관련 기관에서 상담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스물 중반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최근에는 나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yesol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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