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319 빅이슈

홈리스 여성 이야기 - 그녀에게 서비스 연계하기

2024.05.09

엊그제 한 주민센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월세를 내지 못해 다음날 퇴거하게 생긴 여성이 있는데 여성일시보호시설에 가면 얼마나 지낼 수 있느냐는 문의였다. 그 정도로 곤궁하면 긴급복지지원제도에 따라 긴급주거비를 지원할 수는 없느냐 물었다. 긴급주거비를 지원하더라도 5일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데 당사자는 당장 퇴거하면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긴급주거비는 그야말로 선지원 후조사 원칙을 적용해 위기가 확인되면 신속히 지원하고 이후에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는지 자산을 조사하는 식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긴급 대응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집을 나와 노숙을 할 상황에서 지원에 5일이나 걸린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잠잘 곳이 없는 상황이라면 일시보호시설에 오실 수 있다고 전하고, 하지만 지역사회 주민이었던 분인데 공적복지서비스를 제공해 지역사회에서의 주거를 유지하도록 돕는 게 좋을 것 같다, 긴급주거비 지원을 검토해주셔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제안했다. 그리고 본인더러 시설에 전화해 구체적인 것을 문의하도록 전하십사 하고 통화는 종료했다.
곧바로 나의 동료가 그 당사자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집에서 왜 나오게 되었냐며 상황을 묻는 것 같더니 조금 있다 잘 안 들린다고 하더니, 또 도와드리려고 묻는 것이니 울지 말고 차분히 말씀해 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그 당사자가 뭐라 뭐라고 소리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급기야 나의 동료는 옆에 계신 공무원을 바꿔 달라고 하더니 “시설은 여러 명이 한 방을 사용하는 곳인데 그분이 공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고, 조금 있다가 정신건강 전문 요원이 있는 홈리스 시설에서 상담을 받는 게 좋겠다고 하고 전화번호를 알려주더니 전화를 끊었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당사자 여성이 자신은 삼성 회장의 부인이라고 소리치며 우는데 다음 얘기는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더라 한다. 공무원은 그분이 공동생활이 가능하겠냐는 물음에 “글쎄요”라고 답했다 한다. 그래서 임시주거 지원이나 정신건강팀 지원이 가능한 기관을 소개했다는 거였다.
퇴거 위기의 그 홈리스 여성이 다음 기관에서 어떤 서비스를 받았는지 확인은 하지 못했다. 한 가지 걱정이 되기는 했다. 바로 얼마 전 어떤 여성을 그 기관 서비스에 연계해보고자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일시보호시설 이용 기간은 끝났는데 어디 연계할 서비스를 찾기 힘든 여성이었다. 정신 질환이 있어서 종일 혼잣말을 하다가 간혹 주변이 혼비백산할 정도로 비명을 지르곤 하는 분이었다. 당연히 치료를 받자고 설득했으나 동의하지 않았다. 다른 이용인들이 하도 힘들다며 해결해 달라 아우성이어서 다른 기관의 임시주거지원 상담을 받도록 했는데 월세는 지원할 테니 고시원을 알아보고 오라는 얘기를 듣고 왔다. 시설에서 지내기 힘든 똑같은 이유로 집합 거처인 고시원에서도 지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았고, 실제 시설 인근에서 그녀가 지낼 만한 고시원을 찾기 힘들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 이번에는 아무래도 고시원은 어려울 듯하니 쪽방 지역에 빈방이 있는지 알아봐 들어가도록 지원하면 어떻겠느냐 연락했었다. 답변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신 질환이 있는데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서비스를 하기 힘들다는 거였다.

그녀들을 선뜻 받아줄 곳은 어디에
나도 현장에서 일을 하니 각 기관들이 서비스 제공에 소극적이라고만 하면 섭섭한 판단이라는 걸 안다. 여성 홈리스를 위한 서비스가 없지 않으나 다양한 처지의 여성들을 기존의 서비스 틀에 담기 힘들 때가 많다는 걸 안다. 그러나 어쨌든 서비스와 상황의 불일치라는 간극에 선 홈리스 여성들은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거절당하기 십상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족하기 힘들며, 그런 경험들로 잔뜩 긴장하거나 예민해져서 날을 세우곤 한다. 올 초에는 성폭력을 당해 긴급 피난처에 며칠 있었다는 여성이 전화 상담을 하다가 찾아와 집기를 부수며 항의한 일도 있었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긴급피난처에 있었다면 왜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에 연계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길거리에서 사정 얘기를 하라는 거냐며 소리치고 욕을 하다가 전화를 끊고 찾아왔었다. 돌이켜보면 그녀는 아마 나의 질문을 거절의 징조라고 판단했었던 것 같다.
요사이에는 희숙(가명) 님이 갈 곳을 찾는 일도 나와 동료들의 고민거리이다. 그녀 역시 이용 기간이 끝났으나 여전히 시설에 있다.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의논해보자고 하면 자기가 알아서 나가겠다며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 한다. 도통 씻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를 않아서 같은 방을 이용하는 분들의 고통이 크다. 남루한 행색으로 남의 집 앞에서 혼잣말을 하며 서 있다가 지역 주민의 민원이 발생한 일도 있다. 함께 지내는 분들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위생 관리를 해달라 호소해도, 희숙 님은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라는 설득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이제는 이야기를 하자고만 해도 “무슨 얘기요?” 하며 사나운 표정으로 여긴 내 집이니 방에서 나가라고 소리친다. 여성일시보호시설에서 반복되는 이런 상황을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제공되던 서비스를 철회하려 한다고 느끼며 잔뜩 성이 나 있는 희숙 님의 마음을 열고자 온갖 사회복지 실천 기술을 동원하고, 인내와 기다림의 힘에도 기대보지만, 그마저도 막바지가 올 것이니 걱정이다. 그때쯤이면 또다시 다른 기관의 협력을, 보다 전문적인 서비스를 요청할 텐데, 답을 찾기 힘든 사례를 선뜻 안아줄 곳이 있을까 걱정이다.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1 2 3 4 5 

다른 매거진

No.321

2024.05.02 발매


쿵야 레스토랑즈

No.320

2024.04.15 발매


데이브레이크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