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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7 인터뷰

INTERVIEW - 강인함은 담장을 넘었다 〈조선인 여공의 노래〉 배우 강하나

2024.09.05

일제강점기, 소녀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본 오사카의 공장으로 향했다. 늘 잠이 부족한 탓에 졸다가 기계에 손이 다칠까 노심초사하고, 배가 고파 주먹밥을 몰래 바구니에 숨겼다. 버려진 소와 돼지의 내장, ‘호루몬’을 구워 먹었다. 고된 나날이었지만, 여공들은 조국을 잃은 설움에만 빠져 있지 않았다. 야학을 열어 국어 공부를 하고, 가족에게 편지로 소식을 전하려 애썼다. 부당한 처사에도 굴하지 않았다. 존엄을 지키려 노력하며 방적 공장에서 일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인 여공의 노래〉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일제강점기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전한다. 역사와 오늘을 잇는 프리젠터 역할과 당시 여공의 역할을 연기한 강하나 배우에게 〈조선인 여공의 노래〉와 함께한 소감을 물었다.


글. 황소연 | 스틸제공. 시네마달

〈조선인 여공의 노래〉의 주연 배우 강하나

어떻게 〈조선인 여공의 노래〉에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나요?

감독님께서 제 어머니를 통해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 처음으로 감독님을 만나 뵙고 캐스팅 제의를 받았습니다. 조선인 여공들의 삶에 대해서 몰랐던 이야기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통해서 더 알고 싶기도 했고, 그들 삶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작품에 함께하게 되었어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연기와 프리젠팅을 병행하는 작업을 소화했는데요. 특히 기억에 남은 순간이 궁금합니다.

프리젠터가 공장을 걸어가며 여공과 마주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당시 실제 방적 공장으로 가동하던 곳에서 촬영한 것이어서 그런지 여공들 삶의 이야기가 공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여공을 마주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제가 진짜로 그 순간 여공을 만난 것 같은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그 여공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당시의 여공들과 잠시 소통한 기분이 들어 신기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에선 오사카라는 장소성이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그런 점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제가 태어나 약 20년을 살았던 동네인데도, 거기에 깃든 역사와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곳들이 많았습니다. 키시와다 방적 공장, 묘지, 상애회 사무실 옛터 등을 찾아가 촬영하는 과정에서 각각 그 장소에 담긴 이야기들을 새로 알게 되었어요. 전부 제가 몰랐던 장소들이었기 때문에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오사카에 이런 장소들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제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제가 자랐던 동네의 역사와 에피소드들이라 저에게 더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강일출 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귀향〉에 출연하셨어요.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연극 〈바람의 소리〉를 비롯, 한국의 역사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시간이 흐른 일제강점기를 주제로 영화에 다시 참여하셨는데, 과거의 연기 경험과 비슷한 , 다른 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작품을 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당시 많은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 힘들게 사셨던 분들과 그로 인해 희생되신 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증언집을 읽어가며 많이 분노하고 슬퍼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슬프기만 하지는 않아 즐거웠던 순간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촬영을 하면서 힘들고 가슴 아픈 순간들도 많았지만 조선인 여공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많은 용기와 힘을 얻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묵묵하고 꾸준하게, 일정한 감정선으로 증언을 읽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증언을 때마다 옷차림 등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모습도 그렇고요. 당대의 기록을 관객에게 전하기 위해 낭송에서 신경 점은 뭘까요?

관객분들이 저의 낭독을 듣고 그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읽는 게 좋을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여공의 옷차림으로 증언을 읽어나가지만, 증언을 읽을 때는 여공과 배우 강하나의 중간쯤에 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증언이 듣는 사람들한테 최대한 잘 전달되게끔, 담담하게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재일코리안 4세로서 알고 있었던 역사와 영화를 준비하고 연기하면서 새롭게 알게 역사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과정에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촬영하는 과정에서 새로 알게 된 것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거의 모든 증언들이 저한테는 새롭고 충격적이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조선인 여공이 함께 일을 하던 일본인 아줌마를 위해 투쟁에 나섰다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그 당시에는 일본인과 조선인은 무조건 대립 관계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일본인에게 많은 차별과 멸시를 받아왔던 조선인 여공들이 일본인을 위해 투쟁에 나섰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어느 시대에서도 국적을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우정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부르는 여공들의 노래는 새롭게 멜로디가 붙은 곡인데요. 노래할 머릿속으로 상상한 모습이 있는지, 듣는 이들이 어떤 마음이었으면 했는지 궁금합니다.

여공들의 일상을 노래한 가사지만, 노래를 부를 때에는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힘들고 바쁜 나날들을 보내며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을 여공들이 이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마음이 편안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극 중에서 저는 옆에 있던 여공 친구와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요, 당시 여공들에게도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들은 아주 든든한 존재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고되고 힘든 상황에서도 이 노래를 함께 부를 때에는 외롭지 않았을 것이고 그 순간만큼은 편안함이 그들에게 찾아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관객분들도 이 노래를 들으며 잠시 여공들을 생각하고, 편안함과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여공이었던 분들을 만나 인터뷰한 작업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당시 여공이셨던 할머니를 방문하기 전에는 제가 좀 긴장을 했었는데요, 저희를 정말 반갑게 맞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했고 아주 밝고 유쾌하신 모습에 제가 오히려 힘을 얻었습니다. 재일코리안 1세분의 얘기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시는데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셔서 놀라기도 했고 모든 이야기들이 저에는 새로워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정말 재밌게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할머님을 만나 뵙고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싶어요.

여공들이 지냈던 숙소 곳곳을 방문하는 역시 특별한 경험이었을 같아요.

집에서 사진을 보거나 증언집을 읽기만 하면 절대 못 느꼈을 것 같은 감정들을 거기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여공들이 지낸 곳들을 직접 가보니까 더욱 그 이야기들이 가깝게 다가왔고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안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들에서는 그 당시 여공들의 영혼과 만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공장의 담벼락은 실제로 봤을 때 제 상상 이상으로 높아, 거기에 갇혀 살았던 여공들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욕심나는 장르나 시도해보고 싶은 역할이 궁금합니다.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하기에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욕심을 얘기하자면, 지금까지 보여드린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관객분들과 다시 만나 뵙고 싶어요. 밝고 코믹한 역할에서 어둡고 진중한 역할까지 소화할 수 있는 많은 얼굴을 가진 배우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귀향〉을 화가 나면 실컷 울어달라 관객분들께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조선인 여공의 노래〉를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 당시 어린 나이에 타지로 건너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고 강하게 살아갔던 여공들의 모습을 통해서 관객분들이 용기를 얻고 위로를 얻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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