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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7 에세이

아직은 다정함을 말할 때 - 흐르고 움직이기│플로모션을 시작하며

2024.10.10

글. 정지혜

8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플로모션(flowmotion)’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영화에 관한 강연, 비평 워크숍, 집담회, 상영회를 아우르는 프로젝트다. 그간 프리랜서 원고 노동자로, 영화평론가로 활동해오면서 풀리지 않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영화제 때 관객과의 대화의 자리는 영화제 특성상 시간도 짧고 상영작을 소개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 영화에 관해 좀 더 구체적인 비평을 하기에는 제약이 있다. 영화에 관해 쓸 수 있는 지면도 한정적이다. 청탁도 정기적이지 않을뿐더러 내가 쓰고 싶은 영화를 매번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프리랜서는 내가 자유로운 게 아니라 나를 쓰는 사람이 나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뜻이라는 말을 프리랜서들은 우스갯소리로 하기도 한다. 선택을 받는 입장에서 늘 아쉽고, 허기지고, 목마르다.

그래서 직접 자리를 만든 것이다. ‘플로모션.’ 비평가로서의 나의 영화적 관심사, 주제를 다양한 형식과 형태로 풀어내보고 싶다. 이름부터 ‘플로모션’이다. 흐름을 뜻하는 ‘flow’와 움직임의 ‘motion’을 결합한 조어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의미를 담은 단어다. 흐름 혹은 리듬, 음률이 느껴지는 영화, 그런 상태의 영화와 만나면 기쁘다. 그 흐름과 리듬 안에서 나의 감정도 일렁이고 출렁이는 것만 같다. cine, kino, film, movie처럼 motion 역시 영화를 지칭하는 단어다. 동시에 활동, 움직임의 뜻도 있다. 이때의 모션은 영화 그 자체이자 영화 속 움직임의 주체, 대상, 상태까지 아우르는 말이다. 특히 배우나 무용수, 안무가, 퍼포머의 몸, 그들 신체 움직임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모션이라는 말의 가능성을 더 넓게 가져가고 싶다. 여기에는 나의 몸과 신체 움직임의 경험까지도 물론 포함된다. 플로와 모션, 이 두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와 지향을 ‘플로모션’ 프로젝트에서 구체화해나가고 싶다.

‘플로모션’의 형식 역시 ‘플로모션’이라는 이름처럼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정되고 고정된 포맷을 고수할 게 아니라 그때그때 주제에 따라 유연하게, 다른 형식을 시도하는 것이다. 영화 강연이나 비평 워크숍을 열 수도 있고, 영화계의 현안이나 이슈를 두고 집담회를 마련할 수도 있으며, 주제 하나를 두고 상영회를 마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영화평론가이자 글을 쓰는 작가로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 그 지점만큼은 타협 없이 반영하고 싶다. 통상 상영 후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의 자리는 ‘플로모션’이 아니더라도 많은 곳에서 잘 진행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그것대로의 의미와 역할이 있고 나 역시 그런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일 역시 즐겁다. 다만, ‘플로모션’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뭔가를 한다고 했을 땐 다른 곳에서 이미 잘하는 일을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주 구체적인 주제도 좋다. 영화 전체가 아니라 영화 내 한 장면만 두고도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말할 수 있다. 계속 변모하는 상태, 형식으로 ‘플로모션’ 프로젝트가 진행되길 지향한다.

나는 세상 밖으로 떨어질 없다

지난 8월 17일, ‘플로모션’의 첫 모임을 가졌다. 첫 번째 자리인 만큼 더 집중적으로 최근 몇 년간 내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영화적 주제를 다뤘다. ‘흐르다: 영화-몸-물의 그물망’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나는 몸, 특히 뭔가를 쓰고 창작하는 몸의 상태, 몸짓의 현상학에 관심이 많다. 영화 비평이란 결국 영화라는 비언어적 예술을 통해 내가 감각한 것을 말과 글의 형태로 옮기고 풀어내는 작업이 아닌가. 그 첫 단계에 쓰는 몸이 있다. 쓰기라는 활동, 그 활동이 일어나는 몸의 상태에 관해 생각해보는 건 필수적이다. 또 하나, 물이다. 실제로 몇 년 전 나는 몸의 통증에 따른 수술을 하면서 수영을 시작했고 그러면서 물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물의 표면과의 접촉과 감촉, 부력과 중력, 물의 부피감과 공간감, 물의 저항력, 유속과 파장, 고요의 상태와 리드미컬한 역동, 평정과 운동, 흐름과 고임, 파고와 소용돌이치는 충동과 같은 물의 물성, 속성 자체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면서 물의 속성과 성질이 영화가 오랫동안 감각하고 싶고, 영화가 구현하고 이르고자 하는 상태와 닮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몸, 물을 이해하며 내가 좀 더 보고 싶고 감각하고 싶은 영화, 매체, 미디엄, 예술로 한 걸음 다가간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바다에 관해 연구해온 영화학자 에리카 발솜의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현실문화연구, 2024)를 읽으며 큰 힘을 얻었다. “영화사 전반에 걸쳐, 특정한 모티프 한 가지를 추적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특이하고 시네필적인 작업이다… 바다가 스크린 위에 나타난 무수한 방법에 대한 폭넓은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하지만 〈대양의 느낌: 영화와 바다〉는 포괄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다… 특히 매우 방대한 주제를 다루는 탓에 나는 늘 이 책이 너무 짧고 압축되어 있다고 느낀다. 결정적인 진술보다는 편파적이고 도발적인 샘플링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어갈 수 있는 겸손한 출발로 접근해 주기를 바란다.” 어쩌면 영화와 몸, 물 사이의 흐름에 관한 나의 이 관심과 ‘플로모션’ 첫 모임이 에리카 발솜에 이은 또 하나의 샘플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플로모션을 통해 나는 비평의 역할과 자리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영화 비평은 늘 영화 이후에 오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가. 비평의 대상인 영화가 먼저 있고, 그 영화를 평가하는 작업으로서의 비평이기에 비평은 영화 이후에 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영화와 비평이 동시에 진행될 방법은 없을까.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아니 그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준비 단계에서부터 비평, 비평가가 개입하고 가담할 방도가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질문을 실험해보고 싶다. 물론 이것은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비평의 역할을 이해하고 기꺼이 영화 제작과 비평의 공생을 고민할 열린 마음의 영화 동료들과 함께해야만 가능하다. 그것을 ‘플로모션’에서, 또 다른 형태로 모색하려 한다.

‘플로모션’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는 동료들의 힘이 있었다. 영화 일을 하며 만난 친구들, 영화 일을 하기 이전부터 만난 친구들. 우정과 사랑의 존재들.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플로모션’을 시작한다고 말할 때, 그때의 주도와 주체라는 말이 가능했던 건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헤쳐 나가야 하지만, 혼자서는 헤쳐 나갈 수 없다. 에리카 발솜이 ‘대양의 느낌’이라고 말할 때 그것의 본령이 바로 이것이라 생각한다. 앞선 책의 한 구절을 가져와보자. “프로이트에게 대양의 느낌은 그가 크리스티안 그라베의 1835년 희곡 〈한니발〉의 한 구절에서 발견한 앎과 유사한 것이었다. ‘나는 이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Out of this world, I cannot fall).’”

그렇다. ‘플로모션’은 흐르고 움직이며 가보려 한다. 동시에, 나의 이 흐름과 움직임은 이 세상, 즉 당신이라는 세상과 떨어져서는 불가능하다. 그것을 상기하는 일로 9월의 두 번째 ‘플로모션’ 자리를 준비하고 그곳에서 또 다른 영화 친구들과 만나길 바란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영화 강연, 비평 워크숍 등을 기획, 진행하는 ‘플로모션(flowmotion)’ 운영. @hwasile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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