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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8A 컬쳐

MOVIE - 나와 닮은 당신의 뒷모습을 <장손>

2024.10.16

영화 〈장손〉 스틸 (©인디스토리)

글. 박수용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경북의 김씨 대가족. 한여름의 제사를 위해 삼대가 대구 본가에 집결한다. 여자들은 30도가 넘는 더위에 에어컨도 켜지 못한 채 전을 부치고, 남자들은 안방에서 부채질하며 시간을 죽인다. 이윽고 숙취에 시달리며 느지막이 등장하는 장손 성진(강승호). 어서 에어컨을 켜라는 할머니 말녀(손숙)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영화 〈장손〉의 전반부는 명절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전통적인 대가족의 활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낡은 가부장제의 억압이 뚜렷하지만 그럼에도 부산한 생활감이 묻어나는 한옥의 풍경이 블랙 코미디와도 같은 복잡한 감정을 선사한다.

이 활력은 하루를 채 버티지 못한다. 막내 고모 옥자(정재은) 내외는 밤이 깊기 전 떠나고, 다음 날 새벽 성진도 걸음을 바삐 옮긴다. 취한 남자들의 목청과 여자들의 섧은 재잘거림이 사라진 공간은 무섭도록 조용하다. 그날 밤, 술주정을 부리는 아버지 태근(오만석)에게 이불을 뒤집어씌우는 성진과 어머니 수희(안민영)의 모습은 방 건너편 멀찍이 놓인 시선에서 그려진다. 대가족의 소란에 비하면 실패한 가장의 잔열이 식어가는 과정은 우습고 서글프다.

명절과 경조사마다 반복되는 짧은 재회와 긴 단절은 일가친척을 일시적으로 교류하는 사회적 동료와도 같은 존재로 만들기 쉽다. 이 때문인지 귀성과 귀경을 왕복하는 주인공 성진은 가족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깊게 관계 맺기보다는 대부분 관찰하고 반응하는 입장이다. 사건이 벌어지는 방문 뒤에서 자주 서성거리는 성진의 위치와 문틀 너머 먼발치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롱 숏으로 그리기 좋아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무척 닮았다.

하지만 전통의 수호자인 할아버지 승필(우상전)과의 관계는 조금 다르다. 성진은 말녀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허약해진 승필을 보필하게 된다. 승필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는 성진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지만, 나란히 걷거나 등을 바라보는 구도는 얼굴을 마주 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관계와 관찰을 요한다. 이는 성진이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대상인 태근과 큰고모 혜숙(차미숙)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가르침을 승필에게서 전수받는 계기가 된다.

신성한 두부를 꼬집는 손짓

영화의 시작, 뽀얀 수증기가 걷힌 두부 공장에서 온갖 기계와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네모반듯하게 응고되고 잘려 포장되며 일부는 제사상에 올라갈 새하얀 두부에서는 어떤 신성함마저 감돈다. 그런데 이후 공장에 불쑥 찾아온 승필은 두부의 한 귀퉁이를 맨손으로 덥석 뜯어먹는다. 한편 성진에게 삼대를 이어온 가업이란 “그깟 두부”에 불과하다. 두부에, 또 가족에게 제왕적 권력을 거침없이 행사하는 승필과 두부처럼 응고된 가족의 의미 자체를 거부하는 모난 콩인 성진은 정반대의 위치에서 닮아 있는 존재다. 여기서 대가족이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을 떠올려보자. 모두가 전통적인 균형에 맞추어 나란히 자리 잡은 대형 앞으로 성진만이 대충 쪼그려 앉아 있다. 이 위에 성진은 병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고모부의 모습을 합성하고, 다시 사진 속 말녀의 모습을 따로 오려 영정을 만들게 된다. 네모난 가족사진과 네모난 두부판. 가족의 개념과 존재, 위계와 배치를 조작할 권한이 주어진 장손 성진이 가족사진을 다루는 방식은 두부판 위 승필의 손길과 똑 닮았다.

두 사람의 동행은 추운 계절로 접어들며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말녀의 입관식, 모든 가족이 울며 방으로 달려드는 사이 유리창 너머에는 성진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가족이 떠난 자리 뒤에는 승필이, 어쩌면 유리창에 반사된 성진의 상(像)처럼 남아 있다. 성진이 승필을 부축하는 관계로 발전한 뒤에도 홀연히 가족묘로의 길을 안내하는 인물은 승필이다. 깊은 밤, 비어 있는 무덤과 자신의 과거에 대해 설명하는 승필의 토로는 성진에게 직접 닿지 못한 채 자리에 없는 태근을 경유한다. 무엇보다 이때 승필은 내내 성진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다. 영화의 끝에 도달해 승필은 아마도 혜숙의 돈이었을 거금이 담긴 통장을 성진에게 건넨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승계 의식처럼 다가온다. 오른팔이 되어 길을 익히는 섬김의 과정이 있고, 후대가 직접 체험하지 못하는 선대의 전설이 있으며, 부도덕한 경로로 비밀스레 전해지는 유산이 있다. 승필이 양위하려는 것은 두부 공장이 아니다. 시대의 장남들에게 대물림되는 것은 가족들을 향한 감정의 채무에 무감각해질 수 있는 가부장의 도덕적 특권이다. 성진은 아버지의 소주잔에 담긴 애수를 맛보며 멋쩍어하고, 고모의 꽃 알러지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어색해하고, 가족을 의심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이처럼 눈을 맞추고 나누는 대화는 성진에게 필연적으로 성찰과 자기반성을 촉발한다. 하지만 승필은 깊은 진심을 무의식적으로 고백할 때마저 등을 돌린 채 간접적인 화법을 구사하게 된다. 승필이 성진에게 전수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결국 이해와 교감을 거부하는 이 자세 자체다.

고전적 체계의 수혜자로서 지금껏 성진이 보여온 무책임함은 그 누구와도 깊게 관계 맺을 수 없는 오늘날의 단절된 사회를, 동시에 집안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고전적 남성상을 떠올리게 한다. 딸을 배신하며 모은 부정한 돈을 건넴으로써 승필은 성진에게 이 특권을 누리는 일에 익숙해지라 말한다. 가부장의 뒤틀린 미덕은 그렇게 개인주의라는 현대적인 삶의 형태 속에 유전된다.

영화 〈장손〉 스틸 (©인디스토리)

봄을 기다리는 그 불온한 마음

영화의 마지막 장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한 시골길을 올라가는 승필의 모습을 카메라는 천천히 패닝하며 쫓는다. 이윽고 승필이 방향을 틀어 가족묘 방향으로 난 고갯길을 오른다. 카메라는 방향을 바꾸어 승필을 쫓지도, 본래 속도로 계속 나아가지도 않는다. 이내 서서히 멈추더니 엔딩 크레디트를 기다린다. 전통을 끝까지 변호하지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멈춰 선 오늘날의 초상이 그곳에 남겨진다. 성진이 돈을 어떻게 처리하든 간에 승필의 존재 자체가 그에게 커다란 마음의 짐으로 남을 것만은 분명하다. 어쩌면 성진도 또 다른 마침표를 기다리는 걸까. 한 세대가 완전히 저물어야만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

말녀의 49재쯤 태어난 성진의 조카를 떠올린다. 영화의 시작 이전과 종료 이후의 계절을 하나로 잇는, ‘늘봄’이라는 이름의 아기. 김씨 집안은 4대에 걸친 대가족이 된다. 그 시작과 끝에 가장 위태로운 개체가 하나씩 배치된 구조는 불안정하다. 내게는 이것이 승필의 퇴장을 촉구하는 무언의 압박으로 읽힌다. 성진은 유리창 안으로 내리쬐는 햇빛을 손으로 가려본다. 머지않아 눈이 녹고 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자연은 비정한 조건을 강요한다. 가족사진을 새로 찍어야 할 때다.

오정민 감독은 따뜻하고 유쾌한 가족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비틀어 가족이라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냉철한 의문을 던진다. 사라져가는 것을 거친 향수로 포장하기보다는 그것이 여전히 다른 형태로 건재함을 말하고, 태동하는 것의 자유를 기뻐하기보다는 그것이 여전히 어떤 희생과 무관심을 전제하고 있는지 들춰낸다. 무엇보다 〈장손〉의 가장 깊은 성찰은 자신의 거울상인 윗세대의 퇴장을 예비하는 아랫세대의 불온한 기다림의 과정을 꾸밈없이 마주하는 데에서 온다. 우리는 여기서 지독한 공범 의식을 느끼면서도 별수 없다는 듯 다음 시대를 재촉한다.

하지만 그 걸음이 가족 간의 정과 사랑을 온전히 무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조금은 밝은 표정으로 말하고 싶다. 우리는 두 세대의 대립항 사이에서 결코 소거되지 않을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본 적 있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섭섭한 아들 태근에게 선풍기 고개를 돌려주는 승필의 서투른 몸짓을. 멀리서 봐도 가까이 봐도 비극뿐인 대가족의 폭염 속에서 가족애라는 미풍은 처마 밑으로 길게 드리운 끈을 흔든다. 그 미지근한 사랑에 반해 우리는 매년 지난한 귀성길의 진자 운동을 기꺼이 치러온 것이 아닐까. 물론 점차 규모가 작아지는 이 민족 대이동이, 과거를 향한 의심 섞인 진동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미 가족보다 개인 단위의 관객이 더 많던 추석 당일의 영화관에서, 역시 1인분의 티켓을 쥔 채 무심히 생각했다.


박수용

〈씨네21〉 객원기자. 제주 출신의 외동아들. 본가에서 제사는 안 지낸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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