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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7

쪽방에 삽니다 - 쪽방의 공기

2024.10.10

동자동 계단과 쪽방촌 건물 ©필요한책

〈서울의 심연〉이라는 책이 편집부로 날아왔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서울의 도시 빈민, 쪽방촌, 빈곤 밀집 지역을 연구한 탁장한 연구자의 책이었다. 서울의 빈곤 밀집 지역을 연구하던 저자는 서울의 동자동 쪽방촌에서 집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그가 연구자로서 조사해온 내용과 실제 현장에서 살며 체험한 내용은 상당 부분 겹치기도, 또는 다르기도 했다. 가난을 연구자가 체험한 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쪽방촌의 삶과 빈곤을 전부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의 거대한 빈곤 밀집 지역은 어느 개개인의 탓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빈곤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인 의료, 노동, 생활 전반에 이르는 일들도 사회 모두가 고민해야 할 딜레마다. 이미 한 권의 저작물로 나와 있는 저서의 쪽방촌 부분을 《빅이슈》의 연재물로 수록하기로 한 이유도, 좀 더 이 현실을 많은 독자들이 이해하고 알았으면 해서다. 마지막 수록 글은 쪽방촌의 ‘냄새, 벌레, 소음, 무더위’와 ‘화장실, 누수, 환기’에 관한 글이다.


글. 탁장한

냄새, 벌레, 소음, 무더위

쪽방에서의 삶은 수많은 불완전한 선택의 연속이다. 거주자들이 생존하기 위해 각종 불편을 체화하는 상황은 매년 달라지지 않고 반복된다.

쪽방 건물은 들어가는 순간부터 찌든 냄새가 강하다. 낙후된 건물에 퍼진 짙은 곰팡이 냄새, 적층된 먼지 및 담배 냄새와 관리되지 못한 공용 화장실 냄새가 섞여서 풍기는 특유의 악취다. 환기되지 못하는 쪽방의 공기는 바깥보다 나쁘다. 거주자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혐오할 이 냄새에 적응할 뿐이지 결코 강하지 않다. 세입자들은 냄새를 제거하려고 복도에 물을 뿌려 씻겨 내려가도록 하는 방법으로 조치하나, 물이 금방 마르지 않아 곰팡이가 번식하기 더 좋은 환경이 된다.

복도를 거쳐 들어가는 쪽방은 외견상 도배가 되어 있어 정돈된 상태지만 내부에는 수십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가 있다. 습도가 높은 여름철이든 빨래를 걸어 둔 겨울철이든 습기가 차면 도배된 쪽방 벽지를 뚫고 검푸른 곰팡이들이 잔뜩 드러난다. 거주자들은 빨래를 좁은 쪽방에 걸어 곰팡이를 번식시키거나, 복도에 걸어 찌든 냄새가 옷에 배는 상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찬물로 여러 번 샤워해도 체감상 찜질방과 같은 여름철에 거주자들은 전반적으로 문을 열어 둔 채 생활한다. 문을 열어 두면 모기와 바퀴벌레, 건물 복도의 역한 냄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습도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장마철에는 벽지에 곰팡이가 퍼지는 문제를 막기 어렵다. 일부 거주자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빨래를 너는 방식으로 후각적 적응을, 민소매 런닝만 입거나 모두 벗는 방식으로 촉각적 적응을 시도한다.

“이거 보소. 하도 긁어서 빨개진 거. 너무너무 따갑고 아파 미치겠다 아니요.”

거주자 허충관은 지난 여름에 쪽방 문을 열어 둔 결과, 빈대, 벼룩, 진드기 때문에 두드러기가 났고 온몸을 긁어 새빨개진 피부를 연고로 견뎠다. 빈대와 벼룩은 공간 전체를 완전히 소독하거나 불로 지지지 않으면 약으로도, 이불과 옷가지의 세탁으로도 박멸할 수 없다. 또한 문을 개방하면 밤마다 고성방가가 들리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젊고 건장할 경우 누구도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 난청인 거주자들도 많아 텔레비전 소리도 크게 울리는데, 기침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공간이므로 밤마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건물의 출입구 자체도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좀도둑이 들어 물건이 사라지는 일도 빈번하다. 주로 복도에 건 세탁물, 방 안의 메이커 점퍼, 양말, 속옷, 신발, 바지, 냉장고 음식, 문고리에 걸린 도시락이나 선물, 심지어 지갑, 현금, 체크카드, 식권, 텔레비전 등도 거주자가 진통제나 수면제를 먹고 잠든 밤 사이에 자주 없어지곤 한다. 서로 말은 하지 않으나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는 같은 건물의 이웃들에게 향하며, 외부의 누군가가 구체적 용의자로 지목되면 그는 흔히 전에 살던 친구 집에 놀러 왔다는 식으로 무마하나 자주 큰 다툼이 벌어진다. 안전 사각지대인 쪽방촌에서는 물건을 잃어버린 거주자들이 오히려 CCTV, 즉 감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곳을 내 집으로 여기지 않는 세입자 대다수는 누가 나서지 않는 이상 건물 내에서도 의견을 수렴하기 힘들고 돈도 없으며, 건물주는 감시에 돈을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거주자들은 웬만하면 이웃은 밖에서 만나며 절친이 아닌 이상 본인의 방이 몇 호인지 알려 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좀도둑 경험자들은 대비를 위해 별도의 안전고리를 달아 안에서는 문을 개방할 수 있되 밖에서는 열지 못하도록 조치하기도 한다.

문을 닫으면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한두 대로는 제어할 수 없는 무더위에 갇힌다. 열기가 창문 없는 비좁은 공간에 농축되기 때문이다. 이는 경험상 고온다습한 사우나로 비유될 수 있다. 거주자 소민수는 그래서 보일러를 틀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덥더라도 보일러는 틀어 둬야 해요. 안 그러면 꿉꿉함이 올라오고 습해서 곰팡이도 슬거든요. 뭐 여름이면 쪽방은 사막이나 다름이 없죠.”

방문에 설치하는 방충망으로 모기는 일부 차단할 수 있지만, 옆방 및 건물 전체에 자리 잡은 바퀴벌레를 막기란 문을 닫는 행위로도 역부족이다. 따라서 거주자 다수는 문을 열어 더위를 식히려는 경향성을 보인다. 한편 그들에게는 문을 개방함으로써 방을 조금이라도 더 넓히고 싶어 하는 감각도 있는데, 이는 사생활 보호와 상충하는 지점이다. 거주자 차윤미는 여름철에 문을 열면 맨몸의 남성 거주자들을 봐야 하는 상황을

20년간 겪었음에도 여전히 힘들어 한다. 그녀는 문을 열어 두기를 두렵게 여긴다. 남녀 공간 분리가 되지 않는 공용 화장실에서 샤워할 때 남성들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 왔던 수많은 경험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염을 참을 자신은 없어서 문을 닫아 둘 수도 없다.

집이 집으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거주자들은 바깥으로 나와 종일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어서야 쪽방으로 들어가곤 한다. 반면 거동이 불편한 거주자들은 문을 여닫아서 불편에 적응한다. 문을 개방한 거주자들은 대체로 축 처진 상태로 누워 있다. 여름철 가장 더운 시간대에는 외출을 자제하라고 권고되지만, 쪽방촌에서는 그와 반대로 행동해야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좁디좁은 쪽방에 있으면 혼이 나갈 것처럼 답답하고 참을 수 없이 속이 꽉 막히는 느낌은 내가 만난 거주자들의 공통된 증언이자 나의 실제 경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주자 유인수는 바깥바람을 쐬러 쪽방 밖으로 나선 사람들도 더위는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안보다 밖이 그나마 나을 수 있죠. 그치만 나와 있어도 더운 건 마찬가지잖아요. 가만히 있다 보면 시간은 어찌나 안 가는지 몰라. 맨날 그냥 축 처진 상태로 있다가 방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나마 겨울철에는 0도만 되어도 밖으로 잘 나오지 않게 되어 거주자들은 쪽방에서 문을 닫고 추위를 버틴다. 그런데다 이 쪽방촌은 경사가 높기 때문에 염화칼슘을 뿌려도 눈이 오면 매우 미끄럽다. 그래서 11월 말부터 오후 시간 공원은 자주 비어 있다.

후암재래시장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필요한책

화장실, 누수, 환기

재래식 변소는 화장실 이용도 선택이 필요한 영역임을 보여 준다. 공용 화장실은 세입자들이 청소해도 대부분 깨끗이 관리되지 않고 자주 막히며 건물 구조에 따라 환기도 잘 되지 않아 냄새가 쌓여, 거주자들에게 불쾌하더라도 참고 사용하거나 외부 빌딩 화장실 이용을 종용하게 만든다. 실제로 쪽방 화장실 이용을 원치 않는 일부 거주자들은 공원 화장실뿐만 아니라 접근성 측면에서 별도의 제재를 하지 않는 근처 KDB생명타워, 대우빌딩, 시티타워, 서울스퀘어의 지하층 화장실을 눈치껏 사용한다. 그 화장실들은 넓고 쾌적하고 깨끗하나 가깝지 않다. 그리고 쪽방상담소 화장실은 변소 개수가 적고 이용할 때마다 이름을 적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처럼 거주자들은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선 급하더라도 집 밖으로 나와 한참을 걷는 수고를 하든지, 열악한 쪽방 화장실을 오랜 기다림 후에 이용하든지의 선택을 한다. 무릎이 불편해 재래식 변소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멀리 이동하고, 거동 자체가 불편한 사람들은 쪽방 화장실에서 해결하거나 방 안에서 기저귀와 요강, 페트병 등에 의존한다. 특히 후자는 필시 주기적으로 기저귀를 사다 주거나 변을 처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근처에 두어야 한다. 재래식 변소의 비위생성 때문에 건물 내 하수구에서 소변을 해결하는 거주자들도 있다.

여름철에 장염에 걸렸던 거주자 허선행에게, 최대한 견디다가 119를 부르기 전까지 쪽방에서, 그리고 쪽방 화장실에서 이웃들의 눈치를 보며 변을 찔끔찔끔 해결해야 했던 상황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지난 번 장염에 걸렸을 때 눈치가 얼마나 보였는지 몰라요. 화장실 들락날락하면 얼마나 다들 쳐다보고 변기 감시하고 더러운지 확인하고. 다 같이 쓰니까 누가 쓰고 있으면 이를 우째요.”

쪽방의 환기와 물이 새는 상황은 한 끗 차이다. 환기되지 않는 건물을 환기시키고자 개방하기 위해 쪽방의 허술한 지붕을 옮겨 두는 작업을 하면 빈틈이 생기는데, 그곳으로 햇빛뿐만 아니라 비와 눈도 새기 때문에 건물에 수시로 물이 차는 일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아래층이거나 지하일수록 방까지 물이 찰 수밖에 없는 구조다. 비와 눈이 새는 복도와 좁고 가파른 계단은 특히 주취자 또는 고령자의 이동 시 넘어지기 쉬워서 명백한 위험 요소다. 실제로 미끄러운 건물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삐끗해 낙상으로 고꾸라져 부상을 입는 사례가 여러 번 관찰되었다. 이러한 사고는 보일러 동파가 빈번한 겨울철에 더욱 빈번하고 심각하다. 겨울철 누수로 물을 아래로 쓸어 내리는 거주자와 계단이 얼면 책임지겠냐는 거주자의 싸움은 허술한 지붕과 막히는 하수도를 조치하지 않는 건물주에 의해 자주 발생하는 일이다. 또한 건물의 개방은 쥐나 비둘기가 거주자들과 공생할 수 있는 서식 환경을 만든다. 반면 창문이 없는 방에서는 때때로 환기를 위해 겨울철에도 선풍기를 틀어 두어야 한다.

물이 새지 않고 환기가 되는 것 모두 일상에서 경험되어야 할 안전임에도, 둘 모두를 요구하는 것은 불만이 있으면 나가라는 건물주와 관리인의 위협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불가능하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쪽방은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의 또 다른 고통을 묵인하도록 만든다.

“세입자들한테 이래라저래라 참견 안 하는 쪽방이 최고의 쪽방이에요. 우리 건물만 한 곳이 없다니까요. 다른 데들은 집주인이 간섭하고 이거 못하게 하고 저거 못하게 하고, 에효.”

거주자 설진석의 말이다. 건물을 방치하고 세입자들이 알아서 살게 놔두면 그 쪽방은 괜찮은 곳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든 쪽방 건물은 예외 없는 누수로 철근 콘크리트가 부풀어 시멘트를 뚫고 나오는 상태로, 지진이 나면 곧 무너질 것이고 화재 시에는 삽시간에 불이 확산될 취약한 구조다. 그래서 거주자들에게서 확인한 공통된 정서는 결코 여기가 좋아서 사는 게 아니며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이다.

거동이 불가능한 거주자 연규성은 쪽방에서 밖으로 나가는 자신을 눈을 감고 매일같이 상상하며 기분을 고양시킨다. 여기서 밖은 쪽방촌의 경계를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거주자 전인석은 본인처럼 ‘쪽방에 단련된 사람들’도 수시로 문제가 발생하는 이곳을 참기 힘들다고 표현한다.

“우리같이 쪽방에 단련된 사람들도 쪽방에서의 생활을 쉽다고 말하지는 못해요. 눈과 귀를 닫고 사니까, 기쁘다고 끊임없이 세뇌하며 사니까 어떻게든 살아 내는 거죠.”

위의 글은 〈서울의 심연〉(탁장한 지음, 필요한책 펴냄, 2024)의 일부를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구해 수록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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