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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9 커버스토리

COVER STORY - 가수 홍이삭 (1) 시간을 달려 다다른 나

2024.05.09

무명 가수전을 내세운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3>. 77명의 무명 가수 가운데 ‘58호 가수’라는 이름표를 달고 무대에 오른 이는 무명 가수라기엔 어딘가 애매했다. 손에는 기타를 들고, 덥수룩한 머리에 수수한 셔츠 차림. <슈퍼밴드>에서 팀 모네로 최종 4위라는 높은 순위를 차지했던 홍이삭은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미 팬들은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많은 도전일 수도 있었다. 그는 왜 또 한 번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을 두드렸을까. 홍이삭이 아닌 58호 가수로 첫 무대에 오른 홍이삭은 과연 자신이 언제까지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을지 가수로서 자신의 유통기한을 알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라운드마다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노래하며 음률 위에 자신을 펼쳐 보인 그는 <싱어게인3>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자신이 유통기한 없는 가수임을 스스로 증명해낸 홍이삭. <싱어게인3>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홍이삭이 생각하는 진짜 ‘나다운’ 음악이란 무엇일까.


글. 김윤지 | 사진. 백상현 | 헤어. 박하(PRANCE) | 메이크업. 한슬이(PRANCE) | 스타일링. 박태일

생활 패턴 외에도 <싱어게인3> 이후 이삭 씨를 둘러싼 것에 변화가 있을 같은데, 전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바뀐 점이 있다면 뭐예요?
좀 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환경을 경험할 기회가 생긴 것. 제 마음이나 사는 집, 작업실, 내가 하는 음악 이런 것은 여전히 똑같거든요. 그런데 만나는 사람의 폭이 좀 넓어졌달까요. 아무래도 <싱어게인3> 출연자들과 더 자주 보게 되고, <싱어게인3> 전국 투어를 통해 새로운 연주자들과 합을 맞춰보게 되고.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해나가는 중입니다.

얼마 전 부모님이 계신 우간다에도 다녀왔죠? 그곳에서는 어떤 시간을 보냈어요?
부모님이 우간다에 가신 지 벌써 6년째인데 한 번도 못 갔었어요. 코로나19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싱어게인3>가 끝나고 나니까 이때 아니면 절대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저는 그런 인생의 태도 같은 걸 부모님을 보며 많이 배우거든요. 부모님이 그곳에 머무르면서 어떤 걸 보고 느끼시는지를 제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가서 한 열흘 있었는데 이동 시간이 2박 3일 정도라 정작 그곳에 머무른 건 일주일 정도였지만, 참 좋았어요. 부모님이 6년 동안 그곳에 머무르면서 차곡차곡 쌓아두신 좋은 추억을 압축해 짧은 시간 안에 모두 경험하고 온 느낌이 들어요.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파푸아뉴기니로 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잖아요. 홍이삭 하면 ‘자연주의 보컬’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데, 대자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지금 홍이삭의 음악 세계에 영향을 많이 끼쳤어요?
엄청 많이요. 파푸아뉴기니는 제 머릿속 한구석에 하나의 이상향 같은 모습으로 늘 자리 잡고 있어요. 물론 그땐 워낙 어렸으니까 지금 가면 또 다를 수 있겠죠. 하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저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끼쳤거든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곳의 문화나 환경 같은 것이 어떤 걸로도 대체되지 못할 존재로 제 안에 남아 있어 그런지 그때 경험하고 느낀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재현하고 싶은 욕망이 좀 있나 봐요. 사실 생각해보면 얼마 안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3년 정도 있었으니까. (한창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을 시기잖아요.) 맞아요. 사춘기라서 더 그랬나.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를 외국에서 보내서 그런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다시 적응하는 게 좀 힘들었죠.

사춘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10대의 홍이삭은 어떤 아이였어요? 한국 음악은 안 듣고 빌보드 차트에 든 곡만 듣는 사춘기를 겪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10대의 이삭이는 엄청 비판적이었습니다.(웃음) 파푸아뉴기니에서 제가 다닌 학교 학생의 80~90퍼센트가 미국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서양 문화에 노출이 많이 되어 있었죠. 그러다 한국에 오니까 저도 모르게 자꾸 비교하게 되는 거예요. 왜 교복을 입고 규정에 맞춰 머리를 잘라야 하는 걸까. 거기선 안 그랬는데. 이런 식으로요. 숲으로 둘러싸인 파푸아뉴기니의 자연에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도시 생활에 적응하려니 그 부분도 힘들었죠. 친구들이랑 놀려면 무조건 PC방을 가야 했는데 전 담배 냄새가 싫었거든요. 물론 곧 적응했지만 막 한국에 돌아와서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웃음)

처음 음악을 접한 곳이 유초등부 성가대라고요. 그럼 처음 음악에 재미를 느낀 건 언제예요?
그것도 파푸아뉴기니에 있을 때였는데, 학교에 브라스밴드가 있었어요. 형, 누나들이랑 밴드로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제가 5학년 때는 베이스 클라리넷, 6학년 때는 색소폰을 연주했는데, 각 악기의 소리가 아우러져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싱어게인3> 이전에 출연한 <슈퍼밴드>도 밴드로 팀을 이뤄 경쟁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잖아요.
<슈퍼밴드>는 한계를 깨고 싶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그때의 저는 절박했거든요. 이 프로그램이 끝난 뒤 페스티벌 무대에 한 번이라도 더 설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어요. <슈퍼밴드>가 좀 특별했던 건 팀으로 함께하다 보니까 내가 잘하는 게 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걸 내려놓아야 팀이 시너지를 내고 조금이라도 완벽한 그림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팀으로서 합을 맞춰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지만, 나라는 존재,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죠.

두 번째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3>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어떻게 달랐어요?
<슈퍼밴드>가 끝나고 나니까 한계를 깨기 위해 정작 근본적인 내 음악은 놓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5년이든 10년이든 내가 음악을 계속하려면 나라는 사람의 취향과 색깔을 좀 더 확실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해가던 차에 회사에서 <싱어게인3>를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처음엔 좀 망설였어요.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다는 계획도 나름대로 있었고, 당시의 저는 심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래도 한 번쯤은 더 도전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슈퍼밴드>와 달리 오롯이 나 혼자 하는 싸움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크긴 했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임하니 마음은 편하더라고요. <싱어게인3>에 출연할 때는 선곡이나 어떤 결정을 할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시선보다는 나라는 사람의 색깔과 취향을 담아낼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했어요. 내가 잘하는 ‘내 음악’을 하자는 다짐으로 매 라운드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가진 걸 다 쏟아부었죠.


순위 욕심은 없었어요?
아마 3라운드와 4라운드 사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쯤 온라인 사전 투표 결과가 처음 발표됐거든요. 거기서 제가 1등을 한 거예요. 솔직히 순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해도 온라인 투표 결과를 보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제가 한 번도 1등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어서요.(웃음) 사실 1라운드 투표 결과는 기존 팬들의 노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분은 좋았지만 ‘그래, 오늘만 즐기자. 내일부터는 다시 원점이니까.’ 하고 스스로 세뇌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제가 <싱어게인3>에 도전하면서 제일 노력한 부분이 붕 뜨지 않도록 억누르는 일이었거든요. 갑작스레 많은 관심을 받으면 자기도 모르게 콧대가 높아질 수 있잖아요. 내가 잘하는 것이 뭔지는 나도 아니까 그보다는 못한 부분에 좀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죠. ‘내가 이번엔 이걸 잘했고 이걸 진짜 못했네. 다음 무대에선 어떻게 하면 이 빈틈을 채울 수 있을까?’ 하고 수없이 고민했어요. 또 최대한 주변 환경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시야를 좁히는 연습도 했고요. 당장 앞에 있는 것만 잘하자 하는 마음으로 다음 라운드의 음악을 편곡하고 부르는 데 영향을 줄 만한 요소를 차단하려고 했어요.

<싱어게인3>는 커버곡 위주의 경연이다 보니 본인 노래가 아닌 커버곡으로 홍이삭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요. 본인의 곡 중 가장 ‘나다운’ 곡을 꼽는다면요?
최근 발매한 곡 중에 ‘사랑은 하니까’라는 곡이 있어요. 제가 1라운드에서 불렀던 ‘숲’의 원곡자 최유리 님이 써주신 곡인데, 제가 쓴 곡도 아닌데 가사의 정서 같은 부분이 제 맘에 깊이 와닿더라고요. 특히 후렴구의 “있잖아 난 사실 또 놓인 나의 길을 더 사랑해보려고 했잖아” 같은 가사요. 사실 저는 되게 냉소적인 사람이거든요. 비관적인 면도 좀 있고요. 무대에 서서 많은 사람에게 저를 보여주는 직업을 가졌지만, 속으로는 계속 저를 깎아내리고 수시로 제 단점을 들여다보면서 그걸 어떻게 극복할지를 생각해요. 나보다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열등감도 느끼고요. ‘사랑은 하니까’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제 못난 마음과 고민을 예쁜 가사로 포장한 노래예요. 그래서 지금 제게는 그 노래가 가장 나답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삭 씨가 직접 쓴 ‘사랑은 하니까’ 곡 소개에서도 드러나듯 이 노래는 내가 걸어온 길, 나의 선택, 나아가 결국은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얘기하는 노래잖아요. 특히 곡 소개 중에서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 내 삶이 비참하다 느껴지기까지 하는 감정”에 대해 말한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 그런 감정을 느끼던 때가 있었어요?
사실 지금도 그런 감정을 느껴요. 그러니까 사람마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모습이 있잖아요. 난 이런 사람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까 자신이 미워지기도 하고. 저는 과거에 제가 한 선택에 대해서도 후회를 많이 했는데, 돌이켜보면 선택의 기준이 내가 아닌 남일 때 후회가 남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싱어게인3>가 저한텐 하나의 시험대였던 것 같은 게, 매번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잖아요. 선곡만 해도 그렇거든요. 지난 경험을 돌아봤을 때 비록 나의 선곡이 다른 사람들한테 가닿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후회가 남지 않더라고요.
<싱어게인3>에서는 선곡에서든 편곡에서든 내가 나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나다운 선택을 하려고 했어요.

이 글은 "COVER STORY - 가수 홍이삭 (2) 시간을 달려 다다른 나"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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