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의 오늘
-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저자 김진주
“제 책 진짜 재밌어요!” 앞으로 나아감을 필연으로 여기고, 범죄 피해자와의 연대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의 저자 김진주(필명) 씨는 지난 2022년 5월 22일 새벽, 가해자로부터 심한 폭행 피해를 입었다. 가해자는 성폭력처벌법상 강도 등 살인 혐의로 기소돼 징역 20년 형을 받았지만, 1심에서 대법원 판결에 이르기까지 김 씨가 지나온 길은 자신의 기억에 대한 혼란과 사법 체계에 대한 실망으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진주 씨는 언제나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낼 것처럼 당당하고 꼿꼿하다. 커피를 마시고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오늘과 내일을 아낄 줄 아는 그는 자신이 쓴 책이 왜, 어떻게 재미있는지 이야기 하기를 꺼려 하지 않았다. 그의 바람은 단 하나, 다른 사람은 자신과 같은 피해를 겪지 않는 것이다.
글. 황소연 | 사진. 김화경
최근 일상에서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뭔가요?
범죄 피해자 교육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서 ‘예비 창업 패키지’ 사업에 지원했는데, 어제 서류 합격을 했어요.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여기에 집중했고요. 초반에는 범죄 피해자를 돕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어요. 이번에 두 번째로 도전하면서, 어떤 방식이 피해자에게 가장 도움이 될까를 다시 생각해보니 교육밖에 답이 없더라고요. 사적으로는, 제 사건이 보도된 지 2년이 넘었는데요. 항상 몸을 사리면서 살거든요. 부산에서 타지로 이동할 때 비행기를 안 탔어요. 이슈를 끌어야 하는 기간엔 살아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좀 있어서요. 사고가 일어날 것 같은 곳은 꺼려지고, 밤에도 집 밖으로 잘 안 나가게 돼요. 그 외엔 사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누군가는 제가 범죄 피해를 겪은 것에 대해 불쌍해할 수 있지만 저는 하루하루가 행복하거든요. (커피 잔을 가리키며) 커피를 마시는 이런 작은 일도 너무 감사하게 느껴져요.
범죄 피해자 교육 플랫폼은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게 될까요?
피해자를 위한 제도나 지원금이 있긴 있어요. 다만 규모가 작아요. 이런 제도가 없는 지역도 있고, 전담 경찰관도 경찰서에 한 명 있을까 말까고요. 피해자들을 만나서 얘기해보면 ‘이런 일을 당할지 몰랐다.’는 얘기를 하시는데, 사건 조사 과정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지 모르시더라고요. 헌법이 개정된 이후로도 피해자 인권은 크게 보장 및 확대가 안 됐다고 생각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리고 스토킹이나 이상동기 범죄는 예측이 안 되잖아요. 믿었던 사람한테 피해를 입으면 충격이 엄청난데, 그걸 방지하려면 연애관·가치관 교육밖에 답이 없어요. 결국 넓게 봤을 때는 사회 교육 플랫폼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책 쓰신 전과 후, 변화가 있다면 뭘까요?
전에는 저를 보는 시선이 동정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데, 책이 나온 후엔 사법 체계의 미비함에 대해 말하는 한 사람으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저랑 친한 지인들은 오히려 이 책을 보면서 울더라고요. 친구들 앞에서 그동안 괜찮은 척을 했다 보니, 제가 그간 어떤 감정이었는지 몰랐어서 그런가 봐요. 제가 밝은 사람인 줄 알았다는 분들도 있고요.
감정의 역동이 다 드러나서일까요?
사실 제 책 너무 재밌는데,(웃음) 안 좋은 얘기 같겠지만, 저는 성격 자체가 유쾌하다 보니 삶의 유효기간이 있다고 느껴지면 나쁜 생각을 빨리 전환하게 되더라고요. 재치 있게 넘기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저는 완성된 책을 읽으면서 되게 재밌었어요.
책이 어떻게 읽히면 좋겠다고 생각했나요?
어떻게 보면 저도 되게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직장 다니고, 사람 만나고, 월세 내고…. 사건 이후로는 사명감을 가지게 됐죠. 이 책은 한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죽음을 대하는 자세와 함께 ‘나도 이렇게 살아야겠다.’ 혹은 ‘하루를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 이런 이야기이기도 한데 너무 피해자의 이야기로 읽히면 어떡하나 고민하기도 했어요.
원래 장기 목표를 생각하는 편이셨나요?
커다란 목표는 없었던 것 같아요. 직업이 그냥 생계 수단이었는데, 사건이 있고 나서는 범죄 피해자들을 위해 ‘무조건 해낼 거다’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거죠.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어느 누가 20년 뒤에 죽을 거라는 생각으로 살겠어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는 몸이 많이 아플 때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전 ‘이거 축복 아닌가.’ 싶기도 했죠. 이전엔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어요. 보복 범죄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 더불어서 사건 파일을 보면서 ‘이 사람은 계속 범죄 행태가 발전하네. 이제 살인밖에 남지 않았겠다.’ 생각한 순간부터, 그럼 가해자가 갇혀 있는 20년 동안 나는 뭘 해야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책에는 피해자로서 불합리한 사법 체계를 겪은 경험담이 사실적으로 등장합니다.
회복적 사법, 범죄 피해자에 대한 권리를 잘 보장해줘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실제로 느껴보니까 아무것도 없고, 피해자가 뭘 얘기하면 담당자들은 되게 거추장스럽게 반응하거든요.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지원금 등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얘기해서 받아야 하는 거면 안 받겠다.’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누구를 위한 법인가 싶어요.
작가로서 글을 쓰는 행위가 진주 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요.
초반에는 감정 없이 썼거든요. 기쁨, 슬픔, 분노까지도,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근데 그것도 범죄 피해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증상이래요. 울고 분노하면 회복의 실마리가 보이는데 무감정하면 회복이 느리대요. 근데 저는 울거나 화내면 아무도 저를 이성적으로 봐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어요. 검사도 법리대로 싸우는 거고 판사도 내 편이 아니고, 완벽하게 내 편은 나밖에 없는데 나조차도 이성을 잃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탄원서도 원칙에 맞게 논리적으로만 썼어요. 제가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1장이거든요. 피해 당시 감정을 기억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책을 쓰면서 편집자님과 이야기를 나눠가며 글을 수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많이 외로웠고 불안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 일이 있었기에 지금 범죄 피해자들을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회고하면서 확신을 가지신 것 같아요.
책에도 거의 마지막 2~3장쯤에 보면 해결책에 대해서 얘기하잖아요. 저는 항상 전문가나 관계 부처 담당자들을 만나면 해결 방안을 들고 갔어요. 나중에 한 5~10년 정도 지났을 때 현실이 얼마나 바뀌었을지 궁금하기도 해요. 느낌표가 아니라 여전히 물음표인 책이라 어떻게 발자취를 남길지 궁금해져요.
책을 굉장히 빨리 쓰셨다고요.
책을 내보신 분들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쓰셨어요?”라고 물으시는데 저는 다른 범죄 피해자들이 제 경험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피해를 겪지 않은 분들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만 보고 빨리 작업했던 것 같아요.
사건 이후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슈가 있다면요?
일상생활이 어려운 범죄 피해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특히 정신적인 피해가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 것 같아요. 피해의 경중을 따지기보다는 법 제도의 어느 부분이 개선되어야 하는지, 피해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고요. 저 같은 사람이 한두 명만 더 있어도 현실이 바뀔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사실 그 생각 자체도 너무 고통스러운 거죠. 그럼 그 사람도 그 피해를 겪어야 하잖아요. 그럴 바엔 나 혼자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낙담하게 되는 측면이 있죠.
범죄 피해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걸 어려워하잖아요. 진주 님께서 얘기를 할 수 있었던 동력은 뭘까요?
1심을 경험하면서 피해자는 사법 체계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아니고 엑스트라임을 깨달았어요. 법정에서 방청석에 앉아서 가해자와 대면하게 되고, 그래서 피해자가 재판장에 안 오는구나를 깨달았고요. 범죄 피해자를 위한 지원금 신청도 몇 달 밀리더라고요. 그러다 제 사건이 공론화되고 갑자기 “내일 방문하세요”라는 답을 들었고요. 사건이 가시화되고 주목을 받아 동력을 얻었지만, 언론이 보도하자 갑자기 바뀌는 태도와 상황에 화가 났던 것 같아요.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피해자만을 위한 사람. 범죄 예방 교육 플랫폼으로 돈도 명예도, 아무것도 안 바라거든요.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피해자만 생각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특히 범죄 피해자들이 회복할 수 있는 여러 시스템을 고안하고 싶어요. 뜨개질 클래스나 유기동물 보호소 봉사활동처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일들이 연결되면 피해자의 정신적 회복뿐 아니라 인식 개선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범죄 피해자들이 숨어 살지 않게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범죄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시스템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일원화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