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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1 인터뷰

INTERVIEW - 〈즐거운 남의 집〉 저자 이윤석, 김정민

2024.05.22

‘내가 사는 이 집이 잠깐 빌린 남의 집일지라도, 사실은 내 집임을 어떻게든 소리치고자 했다. 내 집을 무조건 소유하고 싶지는 않다. 소유하지 않아도 '내 집'은 만들 수 있다.’ 1인 가구가 집에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은 종종 사치스럽고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된다. 몰개성의 위협 속에서, ‘월세 아니면 전세’(이윤석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서울은 이상한 도시>의 콘텐츠 시리즈)로 사는 시한부 거주자이더라도 집을 즐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90년대생, 전월세 거주자, 건축가, 퀴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윤석, 김정민 씨는 그 힌트를 ‘남의 집’에서 찾는다. 도시의 수많은 집 중 한 공간, 그 안에 배어든 남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서울 남영동에 위치한 공유 작업실에서 두 저자와 도시에서의 일상, 공간을 애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스스로에게 바치는 집에 대한 찬가. 흐릿하고 애매함을 숨기지 않고 공개해버리는 용기, 그 지난한 과정에서 느낀 슬픔, 끝내 집을 사랑해버리고 마는 과감함까지 책의 연장선으로 만날 수 있었다. 모호한 도시에서 보기 드문 통쾌함이다.


글. 황소연 | 사진. 김주희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김정민 거의 거실에 종일 있어요. 누군가는 집에 방이 여러 개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냥 넓은 하나의 공간에 있는 게 좋더라고요. 잠들 때 빼고는 의자만 옮겨 다니면서 거실에서 생활해요. 책 읽기도, 업무도요.
이윤석 요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하러 가면, 학교에 종일 있거든요. 나머지 일하는 3일은 계속 돌아다녀요. 학교와 집, 사무실이라는 공간을요. 운전하느라 차에서도 시간을 보내고요. 요즘 집중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좋은 기회에 이 공간을 찾게 됐는데,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할 때 이곳에 와요. 아이디어가 세팅되면 더 성능 좋은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거나 모델링을 하고요. 요즘은 계속 돌아다니면서, 어느 공간에서 내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를 찾고 있어요.

<즐거운 남의 집>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결국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며 느낀 감정, 소회가 궁금해요.
김정민 ‘이상하게 사는 사람들 진짜 많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 집에 들어갈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집이 있고, 그냥 잘 꾸며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얘기하다 보면 또 이상한 사람이 있고요. ‘이 사람, 유튜브 나오려고 지어내는 건가?’(웃음) 싶었고요. 독특하다고 생각했죠. 살다 보면 비슷한 결의 사람들만 만나게 되잖아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평소에 만날 수 없던 이들을 만나는 게 재밌었어요.
이윤석 우리가 부동산을 통해 집을 보러 갈 때, 끔찍이 잘못된 짓을 저지르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잠깐 들르는 것이어도요. 집에 사는 이들의 일상이라는 게 있고 그분들이 보여주기 싫은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누군가의 집을 보러 간다는 부분에서 <즐거운 남의 집> 작업도 비슷하죠. 그 집에 초대되어 들어갈 때도 ‘이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열어줬을까.’ 생각했어요. 그들이 집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기 때문에 현재 처한 상황 등에 개의치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던 것 같아요.
김정민 맞아요. 자기 집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거라고 상상을 못 했어요.

김정민

‘남의 집’은 도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곳들이지요. 최근에 서울 안에서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공간이 있나요?
김정민 스무 살 때부터 계속 강북, 마포 쪽에만 살았거든요. 전반적으로 낮은 건물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는데 최근에 제가 대학원을 가게 되면서 강남 쪽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어요. 선릉역 쪽에 ‘두꺼비빌딩’이라는 건물이 있어요. 빌딩 입구에 진짜 엄청 큰 떡두꺼비 동상이 있거든요.(웃음) 그 조형물을 버스를 탄 채 발견해서 신기했어요. 비정형적인 조형물 가운데에서 눈에 띄었어요. 너무 편견을 가지고 테헤란로를 바라봤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윤석 사무실 주변으로 산책을 하는데, 숙대입구역 주변을 돌아다니면 흥미로운 곳들이 있더라고요. 특히 ‘남영 아케이드’라는 곳이 떠오르는데요. 사실 많이 노후해서 정말 위험해 보이는데 계속 가보게 돼요. 또 이수역 바로 앞에 구산타워라는 큰 빌딩이 있어요.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의지인지는 모르겠는데 관리가 정말 꼼꼼하게 이뤄져요. 사실 저는 거리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없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우리의 모든 책임 같은 것들 없이, 내가 사는 공간 혹은 내가 일하는 곳만 깨끗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건축물들이 지어지는 것 같아서요. 그 건물을 보면, 건물이 둘러싼 환경과 그 바깥이 주고받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책에서 호텔에 방문하는 경험, 그때 느끼는 익명성에 대해 언급합니다. 고향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는 20~30대들은 그 익명성에 대한 열망이 있잖아요.
이윤석 대학원 시절을 뉴욕에서 보냈는데요. 어느 날 제가 어떤 이유로 원래 활동하는 곳이 아닌 맨해튼의 아래쪽, 공원 같은 데 좀 앉아 있었어요. 왜, 해가 넘어가고 밤이 완전히 깜깜해지기 전 하늘이 군청색일 때 있잖아요. 가로등은 켜지지 않았고 하늘은 되게 어두워진 상태요. 도로와 지하철이 인파로 북적이는데, 난 혼자 벤치에 앉아 있고, 사람들은 정말 많고 혼자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 해방감을 느꼈어요. 도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문제로 바쁘게 살아가는데, 나는 정말 작구나 싶었죠. 내가 큰 무언갈 이룰 수 없어도 아주 작은 나만의 인생을 일구면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느꼈던 해방감과 굉장히 다르게 서울에선 내가 나를 계속 증명하지 않으면 익명성 안에 가려서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김정민 상경을 하니, 그전에 있었던 삶을 끊을 수가 있더라고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거죠. 혼자 살 때의 단점을 감안하고도 성인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집이 숙소나 자취방 등 임시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청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요?
김정민 책에도 윤석 씨가 썼지만 ‘잠깐’ 자취를 하고 있다고 여겨지죠. 1인 가정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불완전하고, 나중에 어차피 2인이 될 가정으로만 여기고요
이윤석 국가에서 제안하는 여러 형태의 주거 공간에, 수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1인 가구는 임시적 형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공간을 꾸미고 분양하는데, 그 태도에서 오는 결과물이 나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유형이 잘못됐다기보다 그 태도가 가져오는 부실한 결과물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1인 가구는 결혼이라는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임시적 상태라는 인식은 퀴어로서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이윤석 저는 애인과 2017년부터 사귀고 있는데 긴 시간 동거를 했어요. 결국 동거를 하고 싶어서 한 거라기보다는 결혼을 못 해서 동거를 하고 있는 상태인 거죠.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존재하는 건데 한국에선 동성결혼을 할 수 없는 상태고요.
김정민 정책들이 1인 가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만들죠. 여러 가지 삶에 대한 상상력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이윤석 부모님께선 제가 결혼하면 5천만 원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지금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웃음)

이윤석

유튜브 등 미디어를 보면 멋있고 근사한 1인 가구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을까요?
이윤석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에서 오는 격차가 커서 오히려 우릴 괴롭힌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코 표준이 아닌데 올 화이트로 꾸며진 공간, 디자이너 가구들 이런 것들이 우리가 가져야만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요. 나의 공간이 구시대적으로 여겨지죠. ‘체리 몰딩’은 잘못된 몰딩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요.

자주 머무는 공간에서, 책에서 언급하신 ‘발명’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내 집에서 이런 감각은 잊히지 않고 유지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요?
이윤석 나의 경로 안에 의도치 않은 걸리적거림이 조금 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여기를 가려면 걸어서 15분이 걸리는데, 그 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서 무언가를 한다든지 하는, 나만의 생태계를 꾸리고 싶어요.
김정민 제가 집이 되게 산만한데, 그 산만함이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규칙까지는 아니어도 ‘여기에 내가 저번에 책을 엎어놨지.’라는 기억이 있는 거예요. 2년 내에 이사를 갈 것 같거든요. 재개발이 거의 완료돼서 쫓겨나야 되는 입장인데, 다음 집에서도, 누군가는 정신없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긍정하면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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