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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2 인터뷰

이, 미지의 세계 - 장우철 작가

2024.07.09

인간이 태어나 처음 빛을 볼 때, 자기만의 우주는 한 장의 이미지가 됩니다. 수억 광년 떨어진 별빛은 살아 있는 동안 닿을 수 없지만, 그 빛을 은유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우리는 별자리라고 부릅니다. 그 미지의 세계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계절이나 꽃의 피고 짐처럼 종종 막막하거나 덧없어 보이기도 하죠.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의 본질은 사진가가 셔터를 누른 그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고, 사진가의 일은 자기가 꿈꾸는 세계를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정확하게 사진기로 포착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찍는다는 행위는 대상의 어떤 면을 보고 싶다고 상상하고, 그것을 온전히 맞닥뜨리는 일이기도 하죠. 시리도록 선명하거나 때로는 물감이 번지듯 모호한 사진들을 선보이면서 ‘사람들이 알아봐줘서 기쁜 일은 없고, 그때그때 웃기는 했겠다.’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장우철 작가의 아틀리에 ‘미러드’를 방문해 이미지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물었습니다.


글. 정규환 | 사진. 이규연

어느덧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생일이 있던 4월부터, 6월까지 happy birthday to me라는 제목으로 손님들을 초대하게 이유가 궁금해요.

지난 연말에 꾸역꾸역 아팠어요. 이런 몸으로 새해라니, 곤란하군 싶어서 저 혼자 새해를 하루씩 미뤘습니다. 그러다 4월까지 밀린 셈이에요. 파도처럼 밀린 건가 웃어지길래, 시작하는 기분을 벗 삼아 초대장 먼저 썼네요. 잎보다 꽃이 먼저인 애들 있잖아요. 저도 그쪽이라서요.

이맘때 피는 중에 가장 좋아하는 꽃은 무엇인가요?

요새는 꽃들이 하도 한꺼번에 피니까, 철 따라 꽃 찾는 일이 좀 무색하죠. 그래도 모내기 앞뒤로 찔레와 아까시와 밤꽃의 릴레이는 기억하고 싶네요. 물가의 붓꽃한테도 가고 싶고요.

미러드의 외부 화단에도 장미가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반면에 내부엔 푸른 빛을 띠거나, 투명하고 빛나는 물건들에 눈에 갑니다. 아마 여행하면서, 또는 작업하면서 수집하신 것들일 텐데, 이곳에 놓여 있는 물건들의 사연을 소개해주실 있나요?

글쎄요, 추억이나 사연이 있겠지요. 있을 텐데, 그걸 추억이나 사연으로 말하지 않기로 한달까요. 지녔던 접시에 가격 태그를 붙여 내놓으면서도 저는 최소한의 불가결한 무엇만 남기고 싶습니다. 어떤 이미지나 이야기가 덧입혀지길 원치 않아요. 하물며 작품이라면 언어적 맥락을 삭제하는 것이야말로 작업하는 태도의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종로구 이화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고즈넉하기도, 어딘가 예스러운 느낌도 나고요. 20 이상 살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이곳과는 어떤 점이 맞으시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작가님께 서울은 어떤 곳인가요?

제가 이화동한테 물어보고 싶네요. 몇 차례 이사를 생각할 때마다, ‘굳이 가야 해?’ 그랬어요. 여기 미러드도 집에서 3분, 가까워서 구했고요. 아무튼 다음 계약 땐 연장 없이 이사를 가기로 공연히 친구와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럼 어디로 갈까, 갑자기 진주나 산청쯤, 충주나 서귀포쯤… 그런 생각도 합니다. 제게 서울은 어떤 곳인지, 일하며 사랑하며 여러 번 묻거나 답할 기회가 있던 질문인데요. 2024년 5월 버전으로, 서울은 아직 떠나지 못한 고향 같습니다.

15년간 매거진 피처 에디터로서 일하셨는데, 개인적으로 매거진 에디터는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글과 사진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종의 특권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시 마감 노동은 맞으셨나요?

저 역시 어떤 선망으로부터 일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기록하고 싶다’보다는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고요. 특권이라 여길 만한 것들도 있었겠지요. 이 질문이 제 반성이나 변명을 토로하라는 것은 아닐 테니 그저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만 말하렵니다.

잡지 에디터로 일했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제게 한동안 있었던 일 같습니다. 그때의 생각이나 감각을 많이 잊어버렸어요. ‘버틸 만했고 즐길 만했으니 15년이나 했겠지.’ 짐작하는 정도입니다. 작가로 살면서 아무래도 그때보다는 좀 느슨해 보일 텐데, 글쎄요. 에디터(회사원) 시절의 시공간이 각인되었다고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삭제되거나 지워진 것 같습니다. 다행으로 여기고 있어요.

오늘날의 매체가 지면보다 디지털, 텍스트보다 영상의 영향력이 중요해졌지만, 글과 사진을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데서 오는 힘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잡지에서 글과 사진은 어떤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글과 사진의 균형감이라면 잡지마다 다르고, 기획마다 다를 테니 어떤 유연한 관점을 갖는 것이야말로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집중하되 함몰되지 않을 것, 주장하되 어느새 물러나 있을 것, 쭉 뻗는 일직선을 그리고 싶더라도 그것이 결국 원이 되는 구조를 고려할 것, 이런 감각과 생각을 저는 유연함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다.’는 가사처럼 과연 유연한 것만이 글과 사진 사이에 숨을 터주고 길을 내준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사진이라는 매체는 순간적으로 감정이나 사고를 증폭시키는 힘이 있지만, 동시에 작가님의 사진은 미니멀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사진가는 컷에 완결성을 추구하는 같으면서도, 그것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계절이나 감정, 우연 같은 요소라는 생각도 드는데, 프레임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인가요?

예술 장르로서 사진은 ‘덜 떨어져’ 보이죠. 그깟 셔터 누구는 못 누르나, 작업의 전부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결정적 순간’ 같은 말은 콧속의 코털처럼 영원히 사진과 함께일 테니, 총 들고 나선 사냥꾼과 카메라를 든 작가가 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사냥꾼을 자처하는 작가도 있겠고요. 게다가 시각적 이미지는 이미 포화상태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작업한다는 것,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작가의 꿈과 실천, 그것을 점진적으로 쌓아나가는 창조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프레임을 완성시키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작품마다 혹은 시리즈마다 다른데요. 그 이유는 각기 다른 꿈과 실천으로부터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잔물결 아래 인물이 인상적인 얼핏 바다에서 수영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수영장에서 잠영하는 여자의 모습이라는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보통 예술이 그러하지만, 사진은 특히 오해받는 경우가 많은 같아요.

제 사진 앞에서 “그림 같아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해요. 작업실 앞을 오가는 분들이 대뜸 “그림 그리시죠?”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요. 웃어 넘기기도 하지만, 이왕지사 ‘그림’이라면 그 ‘회화성’이라는 것을 사진의 형식으로 탐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다음 전시는 그 과정과 결과로 추려질 것 같아요. 오해나 착각에 맞서기로, 저 역시 오해하고 착각하기를 하나의 태도로 삼을 수 있겠구나. 저는 색약이니까 시각적 오해를 타고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케이 그럼 써먹자, 반도체 칩처럼 작업에 삽입해보는 거죠.

근간 도서 소년전홍>(픽션들 펴냄, 2022) 읽었습니다. 조선의 풍속화가 신윤복의 동명 그림 제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소년이 있는 같아요. 소년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세상 모든 첫 경험으로부터 풍선처럼 부풀기, 기둥처럼 세워지기, 왕자처럼 멍청하기, 발가락처럼 어눌하기. 그 귀여움, 뻗댐, 어쩔 수 없음.

작가님의 글엔 운율이 있고 때론 시로 읽히기도 합니다. 언젠가 스스로 운문형 인간이라 표현한 것을 보았는데 인상적이었어요. 새삼 수동태인 미러드라는 이름의 뜻도, 책의 제목인 <여기와 거기>(난다 펴냄, 2012)까지 문학적 감각이 투영되는 같아요. 언어적인 표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저는 줄거리를 잘 못 따라가는 쪽입니다. 기승전결 서사의 불가결한 아름다움이 있을 텐데, 저는 지루하다고 얼른 말해버리는 형편이라 소설도 장편은 잘 엄두를 못 냅니다. 변명 삼아 만들어낸 말이 ‘운문형 인간’인데 뭔가 주장하려는 건 아니고 우스갯소리입니다. ‘미러드’나 ‘여기와 거기’나 그걸 제목이라 한다면, 제목을 정하는 일이야말로 제가 새롭고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시를 생각하는 것, 시를 감각하는 것, 시를 쓰는 것으로부터 한 번의 인생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태어난다는데, 저는 오래 살고 싶지 않아서 짧게 읽고 짧게 쓰고 싶은가 봐요.

개인적으로 잡지를 읽을 예나 지금이나,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던 별자리 운세읽는 좋아합니다. 별자리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이유가 궁금해요.

차라리 세상 트렌드에 따라 팬질이나 했으면 한갓졌으려나요. 말씀하신 대로 저는 하필 별자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유를 줄여 말하면 비로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사 네 박자 쿵짝이라는데, 저 포함 어떤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날마다 가슴속에 물음표가 꼬여갈 적에, 별자리와 사주명리의 어떤 언어들이 그걸 풀어주고, 마침내 받아들이게 해줬습니다. “왜 이래? 왜 저래?”를 “그래서 그랬구나, 그러라 그래”로 바꿔놓았달까요. 여전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충동과 발작의 상징 양자리인 제가 가늘고 긴 호흡으로 시간을 풀어가니 신기하다 못해 신비한 노릇입니다.

끝으로,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물이 왔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모리 오가이가 <한산습득>이라는 단편에 쓴 한 구절이라는데, 미시마 유키오가 그 문장을 핀셋처럼 집어 골라내 <문장독본>에 소개한 글을 읽었습니다. 감각에 대해, 생각에 대해, 이미지와 문장에 대해 계곡처럼 뚜렷하다가도 이끼처럼 모호해지길 오가고 있습니다.

#미러드, mirrored

2021년 5월,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문을 연 장우철 작가의 아틀리에 미러드는 편집적인 공간이다. 오랜 시간 글과 사진을 다뤄온 장우철 작가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포스터, 액자 등 사진을 활용한 굿즈도 엿볼 수도 있고, 의도를 예측할 수 없는 소품이 무심하게 설치되어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공간의 가운데 큰 하얀색 대리석 테이블이 있고, 모퉁이엔 ‘펄’사의 드럼이 사이드 테이블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의도되었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관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새로움이나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미러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무언가를 반사하고 투영하는 속성은 사진 작업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곳의 어떤 사진은 거울을 통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창밖 풍경이 비치기도 한다.

#그의 잡지 이야기

장우철 작가는 매거진 피처 에디터로 2002년부터 약 15년간 일했고, 이후 여러 전시와 세 권의 책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보다 전인 1998년 여름엔 홀로 독립 잡지를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그 잡지의 제목은 바로 <원맨잡진 그랩백Grabbag>. 그의 말에 따르면 쓰고 싶은 것과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건을 일으킨 현장으로서, 에디터를 꿈꾸는 스물 몇 살 대학생의 꿈이 꿈처럼 빛났을지언정 편집과 디자인은 형편없는 인쇄 뭉치였다고. 하지만 총 3회 발행했던 잡지는 서울 대학가 앞의 사회과학 서점에 입고되었고, 1000부 넘게 판매되기도 했다. 다시 잡지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는 그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제가 만들고 싶은 잡지는 이미 예전에 저보다 훨씬 멋진 사람들이 만들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미러드에서 볼 수 있는 포스터들

쇼윈도에 걸린 사진 은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활짝 핀 나리꽃을 찍은 사진이다. 이 나리꽃은 미러드의 오프닝이자 첫 전시였던 의 포스터로도 사용됐는데, 오픈 첫날엔 이동열 트럼펫터가 나리꽃에 어울리는 곡을 지어 나발을 불기도 했다. 작가의 자리 위에 걸려 있는 에는 클레마티스, 델피니움, 제라늄, 아네모네, 스위트피, 디모르포세카가 초여름이나 아침 같은 선명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벽 한쪽을 나란히 채운 세 장의 사진은 최근 진행한 팝업 전시 <봄의 무릎>이란 이름으로 묶어 선보인 포스터들로, 목련과 사과 그리고 식물과 기물을 배치해 정적이면서도 봄 특유의 생명력을 전하고 있다.


정규환

에디터. 도시 생활자를 위한 팟캐스트 <개인사정>을 제작하며, 삼각지에 동료들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사무소 ‘GLG’를 운영 중이다. @kh.inspiration

이규연

바쁜 일상 속 반짝이는 찰나를 담는 사진작가. 편안하고 차분한 사진을 좋아하고,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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