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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2 커버스토리

HOW SWEET (2) <선재 업고 튀어>를 보세요, 두 번 보세요, 아니 열 번이요

2024.07.09

< 선재 업고 튀어 > 스틸

글. 김송희 | 사진제공. tvN

‘최애’가 자살을 했다.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그저 환하게 세상을 비추기만 할 것 같았던 나의 아이돌이.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울면서 뛰쳐나간 거리에는 무심하게도 최애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가 전광판으로 흘러나오고, 내 세상은 무너졌지만 사람들은 평온하다. 사고 후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돼 절망하는 나에게 “고마워요, 살아 있어줘서.”라고 말해줬던 나의 최애. 최애를 살리기 위해 나는 15년 전 과거로 타임슬립한다. <선재 업고 튀어>(tvN, TVING)는 첫 회 20여 분 만에 저 내용을 아주 짧게 설명하고는 여주인공을 과거로 보내버린다. 그저 팬과 아이돌 관계인 줄 알았던 선재(변우석)와 솔(김혜윤)은 알고 보니 청소년 시절 골목 하나를 사이로 근처에 살던 이웃사촌이었다. 아마도 10대 때 어떤 어긋남과 스침이 분명 존재했을 것 같은 사이.

고등학생 선재는 가수가 되기 전 수영 선수였고 솔이 타임슬립한 시점은 선재가 어깨를 다치기 직전이다. 선재의 소속 그룹 이클립스의 ‘덕질’을 오래 한 덕분에 솔은 사실 선재의 과거사를 잘 알고 있다. 솔은 선재가 다치지 않게 하려고 팔방으로 뛰어다니고 선재에게도 ‘경기에 나가지 말라.’고 말해주려 하지만.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말’을 하면 시간이 정지해버린다. 선재의 시계를 이용해 과거로 이동할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타임슬립의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발화하는 순간 시간이 멈추는 것이다.

제목이 뭐 저래, 싶었던 ‘선재 업고 튀어’는 솔의 팬카페 활동 아이디다. 솔은 사실 지금 건강하고 안전한 선재를 업고 미래로 튀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선재 업고 튀어>가 ‘그저 그런 아이돌과 팬의 연애사’처럼 보였지만, 이렇게 선풍적인 입소문을 얻게 된 데에는 ‘알고 보니 선재가 솔을 먼저 좋아했다.’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는 미래의 솔 시점에서 주로 극을 전개하지만, 선재의 시점을 간혹 보여주며 참을 수 없는 비애와 설렘을 동반한다. 알콩달콩 가볍고 귀여운 로맨스라기엔 첫 회에 남자 주인공을 ‘죽이며’ 시작하기에 과거의 선재가 나올 때마다 그 어린 소년이 짊어져야 했을 삶의 무게가 느껴져 더불어 슬퍼지기도 하는 것이다. 30대의 내가 10대로 돌아가 서툰 내가 했던 나쁜 결정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 누구나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이미 그러한 내용의 영화와 드라마도 수차례 제작된 바가 있다.

네가 다른 시간 속에 있다 해도, 나는

선재의 일상에 뛰어들어 선재의 안전을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매번 실수만 연발하는 초반의 솔을 보고 있으면 이 드라마의 캐릭터 설정이 최근의 로맨스물보다는 2000년대 초반의 무언가가 연상된다. 단순히 밝고 명랑하고, 주체적인 그런 ‘여성 시청자들이 응원할 법한 여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귀여움. 그렇다. 이것은 ‘귀여니’ 소설로 대표되는 밀레니얼 세대 초기의 인터넷 소설류의 여주인공이다. 솔이 타임슬립해서 간 과거는 2008년이다. 때문에 이 드라마는 과거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90년대를 향수했던 것과 같은 비슷한 풍경이 등장한다. 솔의 친구들이 폴더폰을 들고 있고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이 싸이월드에서 튀어나온 것만 봐도 마음이 괜히 몽실몽실해진다. 더구나 솔의 어머니가 비디오 가게를 운영한다는 설정도 그러하다. 사실 2008년은 비디오 가게가 문 닫고 사라지던 시기다. 넷플릭스가 온라인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2007년이다.

레트로한 시대성을 갖고 갈 뿐 아니라 <선재 업고 튀어>는 주인공들 설정마저도 지금의 웹소설보다는 과거의 인터넷 소설을 닮아 있다. 현재 포털을 기반으로 연재되는 웹소설의 로맨스물보다는 과거의 ‘인터넷 소설’이라 불리던 것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인터넷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절대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불의를 참지 않을 뿐 아니라 없는 사건도 일으키는 사고뭉치인 덕분에 남자 주인공과 지독하게 얽히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솔은 여기에 2020년대를 살다 온 어른스러움과 주체성을 더한 긍적적인 인물이다. 내 노력으로 사랑하는 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부터가 얼마나 긍정적인가. 사고뭉치 같지만 솔은 자기 인생을 누가 구해주길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서는 주체자다.

선재는 꿈이 좌절당하고, 솔을 짝사랑하며 솔에게 한 고백은 몇 번이나 좌절당하고 솔에게 가닿지 않는다. 2008년에 스마트폰이 없기에 가능한 설정들이 드라마에는 여러 차례 등장하고 이 때문에 솔과 선재는 엇갈린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타임리프를 한 마코토에게 미래에서 온 소년 치아키가 하는 대사 “미래에서 기다릴게”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대사가 이 드라마에도 등장하는데 여기선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한다. “너가 다른 시간 속에 있다 해도 다 뛰어넘어서 널 보러 갈 거야.” 물론 그 다음 붙는 말은 “내가 네 팬이라고 했잖아.”이다. 솔은 선재와 연결되는 쌍방 연애보다는 선재를 지켜주는 것을 우선시한다. 자신의 사랑이 보답받기보다는 ‘최애’의 행복만을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요즘의 팬덤이 아이돌에게 하는 사랑 고백을 닮아 있다.

<선재 업고 튀어> 스틸

일상에 번져오는 청량함

지금의 여성 시청자들은 백마 탄 왕자님보다는 자신과 함께 내 미래를 그려갈 무해한 동반자를 원한다, 고 최근 로맨스물 드라마 비평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솔은 선재에게 도움을 받기보다 자신이 선재를 구원하려 한다. 자기 때문에 선재가 죽을까 봐 “내가 위험해도 구하지 마. 제발 나 좀 못 본 체해줘.”라고 부탁한다. <눈물의 여왕>에서 해인(김지원)이 현우(김수현)에게 “당신 눈에 눈물 안 나게 할 거”라고 프러포즈를 했듯이, <선재 업고 튀어>의 솔 역시 선재를 ‘내가 지켜줄 거’라고 호언장담한다. 물론 여자 주인공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서 구해주는 것은 결국 남자 주인공이 되지만 주요 서사에서 이들은 서로를 구원한다.

유튜브에는 <선재 업고 튀어>를 보는 각종 리뷰 영상이 범람한다. 이들은 모두 “이렇게 끝난다고? 나 죽어. 난 몰라!”라며 눈물을 흘리고 베개를 주먹으로 펑펑 친다. 주로 30대 여성 유튜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온라인 반응이 특히 시끄러울 때는 키스신이지만, 이들은 선재가 가진 육체성과 비극성, 내성적이면서 소년 같은 매력에 환호한다. 선재의 성격이 그래서 어때? 라고 물어보면 솔과는 달리 한 줄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선재는 솔을 뒤에서 지켜보거나, 솔이 일으키는 사건에 휘말리며 솔 외의 타인들에게는 무뚝뚝하고 대쪽 같은 철벽남이다. 어깨가 파열되어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아버지에게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수영이 하기 싫다’고 반항적으로 응수한다. 서툴고 부족하지만, 그것마저도 10대 소년의 청량함으로 느껴진다. 코믹하고 가볍지만 비극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그 비극은 개인적인 것이라 시청자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는다. 최근 OTT의 무거운 장르물에 지쳐 있는 시청자들에게 <눈물의 여왕>에 이어 <선재 업고 튀어>가 사랑받고 있는 이유다. 청량하고 코믹하며, 주인공들은 사랑스럽고 응원하고 싶은 존재일 것. 즐거울 일 없는 2024년의 초여름에 우리를 찾아온 <선업튀>, 이제 중반을 넘어가는 드라마가 고구마 구간을 무사히 넘어가 쌍방 연애와 구원으로 끝까지 설레며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COVER STORY - HOW SWEET (3) 그럼에도 로맨스"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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