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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2 커버스토리

HOW SWEET (3) 그럼에도 로맨스

2024.07.09

드라마 <런온> 포스터

다시 돌아온 로맨스의 계절”이라는, 원고 청탁하는 메일 속 문장에 시선이 머물렀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문장 아닌가! 정말 로맨스는 ‘다시’ 돌아온 걸까? 최근 <눈물의 여왕>(tvN)과 <선재 업고 튀어>(tvN)의 인기를 보면 확실히 그런 것도 같다. 그렇다면 로맨스는 언제, 왜 우리 곁을 떠난 걸까? 실제로 최근 몇 년 동안 드라마에서 ‘로맨스’는 퇴출되는 분위기이긴 했다. 사람들은 더는 계급 격차를 극복하거나, 자신의 운명을 건 낭만적 사랑 이야기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대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악을 응징하는 정의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나 괴물과 영웅들이 나오는 ‘도파민’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반응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에도 로맨스는 양념처럼 끼얹어졌으나 개연성 없이 끼얹어진 로맨스를 더 이상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런 변화는 연애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 혹은 사치가 된 우리 일생과 사회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즉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 모두 ‘로맨스’는 이제 개연성을 잃은 장르가 된 것이다.

로맨스의 영리한 변주

정말 로맨스는 드라마 세계를 떠난 걸까? 떠났다기보다는, 그 시대와 세대의 요구에 맞게 다른 얼굴로, 보다 다양하게 변해온 것은 아닐까? 이제 사람들은 ‘싸가지 없고 외로운 재벌’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캔디’가 사랑‘만’ 하는 로맨스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느닷없이 손목 잡고 끌고 나가거나 벽에 밀치고 키스하거나 윽박지르는 걸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운명적인 사랑’을 원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에 내 운명을 거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 상대를 아무리 사랑해도 ‘나’를 잃을 정도로 사랑하고 싶지는 않다. 안전하고 평등한 사랑을 원한다. ‘판타지’보다는 ‘가성비’ 충족시키는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로맨스에 대한 가치관도 변한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 속 로맨스도 변할 수밖에.

그래서 2015년 이후의 로맨스 드라마들은 <이번 생은 처음이라>(tvN)처럼 연애와 결혼이 점점 어려워지는 세대의 고민을 보다 현실적으로 담아내거나,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tvN) 속 인물들을 통해 연애뿐 아니라 일을 통한 성취도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상을 제시하거나, <멜로가 체질>(JTBC), <런 온>(JTBC), <유미의 세포들>(tvN), <그 해 우리는>(SBS) 속 인물들처럼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등 과거보다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로맨스를 보여주게 되었다. 즉, 개인의 성장담으로서의 로맨스 드라마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성애’ ‘주인공’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물들의 로맨스를 보여준 것 또한 2015년 이후의 로맨스 드라마의 특징이다. 로맨스의 내용뿐 아니라,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변했다. 과거에는 ‘남성성’으로 매력을 어필하던 남자 주인공들은 무해한 존재로, 여자 주인공들은 보다 주체적인 존재로 진화했다.

그중 <런 온>은 이런 로맨스 드라마의 변화를 가장 성실하게 보여준 드라마일 것이다. 영화를 번역하는 미주(신세경)는 번역을 위해 같은 장면을 수없이 ‘되감기’를 해야 한다. 육상 국가대표인 선겸(임시완)은 되도록 빨리 ‘앞으로’ 가야 하는 사람이다. 또 다른 인물 단아(최수영)는 아들만 우대하는 재벌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반면 미대생 영화(강태오)는 자존심이 센 자유로운 영혼이다. <런 온>은 이렇게 자라온 환경과 성향, (같은 한국말을 쓰지만)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얽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주인공들의 로맨스뿐 아니라 노년의 쇼윈도 부부,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무성애자 등 ‘나’로서 살며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기 원하는 각 인물들의 선택도 비중 있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런 온>에는 설레는 로맨스뿐 아니라, 인간관계나 삶에 대한 통찰도 의미 있게 공존한다. 이전 로맨스 드라마들이 ‘판타지’를 채워주었다면, <런 온>은 평범한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제공한다.

현생 판타지 사이

단지 현실적이기만 하다면 로맨스 드라마는 이처럼 오래 사랑받는 장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 사랑! 그놈의 사랑 타령! 난 사랑 타령하는 드라마가 좋아. 실제로 할 일은 없으니까.”라고 외치던 <멜로가 체질> 속 진주(천우희)처럼 연애와 결혼이 사치가 된 사회에서 ‘현생’을 사느라 연애할 틈도, 의지도 없는 이들에게 로맨스 드라마는 ‘판타지’일 때 더 아름답기도 하다. 그렇기에 로맨스는 조선 시대를 비롯한 시대극에도, 회귀물과 같은 판타지 드라마와도 잘 어울린다. ‘로맨스 사극’을 표방한 드라마들이나 <선재 업고 튀어>와 같은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눈물의 여왕>처럼 계급 격차, 불치병, 기억상실 등 지긋지긋한 ‘클리셰’가 잔뜩 끼얹어진 로맨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라는 지긋지긋한 마음도 들지만, 우리는 어느새 그 판타지 세계에 과몰입하여 해인(김지원)과 현우(김수현)가 사랑 후에 찾아온 권태와 역경을 딛고 행복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렇게 로맨스 드라마는 우리의 퍽퍽한 현실과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하고 싶은 판타지 사이 어디쯤에서 우리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면과 일상이 버석거릴 때면 마치 미주처럼 <런 온>을 되돌려보곤 한다. 과거에 보았던 로맨스 드라마 속 몇몇 장면도 내 마음속 플레이리스트에 언제나 존재한다. 로맨스 드라마의 인기가 예전보다는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마음에 로맨스 드라마 하나쯤은 품고 산다. 비록 드라마일지라도 타인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현실 속 내 연애 세포도 되살아나고 생의 의지가 다시 생기는 느낌이랄까? 이게 우리가 로맨스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 아닐까? 나 또한 그간 본 드라마들에서 ‘로맨스’라는 빛이 반짝이는 순간을 사랑한다.


오수경

<드라마의 말들> 저자.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마감 노동’을 한다.

이 글은 "COVER STORY - HOW SWEET (4) 로맨스가 필요해 - 취향에 따라 골라 보는 로맨스 웹소설"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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