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외주 프로덕션 조연출 신세인 승주(이주승). 영상을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런 승주에게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결혼식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찍어 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물론 이번에도 조감독이지만 잘해내면 이번에야말로 나만의 작품을 연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승주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동료 영태(구성환)와 타지 땅을 밟지만, 연출을 맡기로 했던 현지 감독이 사고를 당하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찍으려고 했던 결혼식은 이미 끝난 뒤, 그토록 꿈꾸던 입봉을 위해서는 일주일 안에 작업물을 가지고 귀국해야 한다. 다큐는 ‘팩트’, 입봉만 하면 진짜 다큐가 뭔지 알려 주겠다고 말하던 승주는 결국 촬영을 위해 가짜 신랑 역할을 소화하기로 한다.
과연 나라면 이 상황에 어떤 선택을 할까? 다시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선택에 놓이고 마는 고단한 청춘, 승주를 보고 있자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거짓을 선택한 그를 전적으로 응원하진 못하지만, 다큐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인 그의 선택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다우렌의 결혼>에서 또 한 번 ‘찐친’ 케미를 자랑한 구성환, 이주승 배우를 만났다.
글. 김윤지 | 사진. 신중혁 | 스타일리스트. 정소연
임찬익 감독이 <나 혼자 산다>를 보고 두 분을 동반 캐스팅했다고 들었는데,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실제로 절친한 사이지만, 연기 호흡을 맞추는 건 처음이잖아요.
- 성환 그때가 일이 없던 시기였거든요. 오랜만에 받는 시나리오이기도 했고, 읽어보니 너무 재밌어서 배로 흥분했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 처음 버전은 지금보다 코미디 느낌이 강했거든요. 카자흐스탄이라는 낯선 곳에서 친한 동생이랑 함께 작품을 찍는다고 하니까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여러모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어요.
= 주승 평소에 제가 잘 하지 않는 밝은 장르의 영화다 보니까 조금 신선했어요. 저는 작품을 할 때 배우들끼리 무조건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관계성에 맞는 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근데 영태와 승주는 촬영 감독과 입봉을 준비하는 조연출이니까 굉장히 각별한 사이일 거고, 친할수록 좋은 케미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형이랑은 워낙 친하다 보니 둘의 관계성을 표현하기 수월했죠.
카자흐스탄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죠? 두 분이 거의 한 달 동안 한방에서 함께 지냈다던데.
- 성환 저는 불편한 게 없었는데 주승이가 저 때문에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눈만 붙이면 잔다는 걸 그때 알았거든요.(웃음) 촬영 전까지 저는 제가 잠자리에 되게 예민한 줄 알았어요.
= 주승 예민한 편이라 잠 못 잘 것 같다고 해놓고 항상 먼저 자더라고요. 코 골면서.
- 성환 그래서 나중에는 주승이한테 얘기했어요. 너 먼저 자라.(웃음)
= 주승 그리고 형이 진짜 자주 씻거든요. 하루에 수건을 막 세 장씩 써요. 아니, 뭔지 아시죠? 방에 수건이 네 장뿐인데 형이 하루에 세 장이나 써버리면 저는 아침저녁을 하나로 버텨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는 제 수건 하나라도 챙기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웃음)
저예산 영화라 매니저 없이 출국해서 촬영을 진행한 걸로 아는데, 힘든 점은 없었어요?
- 성환 개인적으로는 가족적인 분위기라 더 좋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같은 차로 이동하고 같은 방에서 자고, 아침이면 숙소 앞에 있는 베이스캠프에 모여서 얘기하고 그랬거든요.
= 주승 그리고 카자흐스탄이 물가가 진짜 저렴해요. 맥주가 한 500원이었나?
- 성환 게다가 날씨랑 경치는 거의 LA라, 한 달이라는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현지 음식도 입맛에 너무 잘 맞아서 저한텐 촬영 현장이 거의 할리우드였죠.(웃음)
= 주승 형은 현지 음식을 거의 집밥 먹듯이 먹더라고요.(웃음) 아, 그리고 거기 현지 매니저분들이 계셨는데 저희 피부 탈까 봐 우산도 씌워주시고 컨디션도 계속 체크해주셔서 불편함은 전혀 없었어요. 1년 찍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성환 주승이는 시골보다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같은 도시를 선호해서 한 달 이상은 힘들었을 거예요.(웃음) 아, 그리고 우산 하니까 생각이 났는데 저한테는 우산을 안 씌워주시더라고요.(일동 웃음) 그래서 피부가 많이 탔어요. 제가 몽골 분들이랑 체형이 비슷해서 그런지 주승이랑 같이 서 있으면 스태프인지 매니저인지 모르시더라고요.
주승 님은 카자흐스탄 신예 배우 아디나 바잔과 가짜 신랑으로 합을 맞췄는데, 언어가 다른 상대 배우와 교감하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 주승 유라 역의 박 루슬란 피디님이 실제 고려인이라 통역을 계속 해주셨어요. 역할 자체가 서로 소통이 잘 안 되는 관계라 친밀한 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적인 얘기는 많이 안 하려고 했는데, 항상 식사는 같이 했거든요. 둘이서는 영어로 대화했는데, 아디나는 영어를 잘하는데, 저는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가.(웃음) 자꾸 제 영어 발음을 체크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엔 그냥 조용하게 있었어요. 거기가 인터넷이 잘 안 되거든요. 파파고도 못 쓰고 이러니까, 방법이 없더라고요.
성환 님은 그동안 주로 무게감 있는 역할들을 연기해왔잖아요. 이번 영화에서는 유쾌한 캐릭터 영태를 연기했는데 어땠어요?
- 성환 영태는, 조금 더 밝은 저 같은 느낌이에요. 아무 데서나 잘 자고, 잘 먹고, 순간순간이 행복한. 다큐를 완성해야 된다는 생각뿐인 승주와 달리 늘 태평하고 촬영보다는 술과 음식에 관심이 더 많지만, 사표를 제출하고 자기 작품을 찍겠다는 승주한테 선뜻 돈봉투를 내밀며 꿈에 힘을 실어주는 속이 깊은 인물이에요. 이제까지 좀 센 역할들을 많이 연기해왔는데, 사실 저랑 제일 잘 맞는 건 영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할 때 특별히 뭘 준비하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영화 개봉을 앞두고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꾸밈없는 일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이전에 출연했던 작품들도 하나둘 언급되며 주목을 받고 있는데, 변화를 실감한 적이 있어요?
- 성환 <나 혼자 산다>가 방영한 지 한 3주 정도 됐나요? 제가 이후로 밖을 나간 게 한두 번 정도에 그쳐요. 게다가 저는 외출을 해도 동네 근처 돌아다니는 게 다거든요. 멀리 나간다 쳐도 늘 가던 곳만 가고. 어느 정도냐면 저희 집 앞에 피시방이 많은데 굳이 멀리 있는 피시방까지 찾아가요. 주승이 어머니네 근처에 있는 곳인데, 저한텐 거기가 익숙해서요. 주로 집에만 있고, 늘 익숙한 곳만 찾는 편이라 아직 실감이 나진 않아요. 방송이 화제가 된 것도 있지만, 제가 살아가는 방식에 많이들 공감해주시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특히 감사하죠.
반려견 꽃분이의 유튜브 채널도 함께 주목받고 있잖아요.
- 성환 <꽃분이> 채널 구독자 수가 거의 7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더라고요. 제가 완전 ‘컴맹’이라 아직 수익 창출도 못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인데, 사실 그 채널은 유튜브를 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꽃분이와의 추억을 기록하려고 만든 거거든요. 제 핸드폰이 되게 오래된 기종이라 꽃분이 영상만으로 용량이 꽉 차서, 2년 전쯤 백업용으로 만든 채널인데 이렇게 사랑을 받게 됐네요. 꽃분이 간식 많이 사줘야죠.(웃음)
이를 지켜본 주승 님의 마음이 어땠는지도 궁금한데요.
= 주승 형이 혼자 산 시간이 엄청 길거든요. 혼자 되게 잘 지내고,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단단하게 잡혀 있는 사람이라 당연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실 줄 알았어요. 비둘기까지 도와주는 남자.(웃음)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특히 주승 님은 감독으로서 단편영화를 연출한 적이 있는 만큼 승주에게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 주승 저도 영화감독이 꿈이거든요. 두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했고, 승주의 입장이 되어본 적이 있다 보니 공감이 많이 갔어요. 지금도 장편영화를 써놓은 게 있는데 제작이 될까 말까 한 그런 상황이거든요. 입봉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고, 만년 조연출로 입봉을 꿈꾸는 승주가 얼마나 간절한지도 알고 있어요. 사실 저나 승주뿐 아니라, 모든 청춘들이 그런 불안한 시기를 겪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경험하는 성장 과정이고, 그 시기를 겪어야만 더 단단해질 수 있으니까.
다큐멘터리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승주는 입봉 확답을 받은 상황에 진짜 ‘내 작품’을 찍고자 사표를 제출하잖아요. 본인이어도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 주승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승주처럼 부산에 내려가서 <갈치의 꿈>을 찍지는 않았겠죠.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아마 승주도 촬영하다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해서 다른 작품을 찍지 않았을까.(웃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두 분도 승주처럼 자신의 꿈을 위해 무언가를 과감히 포기했던 적이 있어요?
- 성환 포기라기보다는, 이런 건 있어요.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어서 30~40대가 되었을 때까지도 아버지가 저한테 기술 배우라는 얘기를 계속 하셨어요. 배우라는 직업이 안정적이진 않으니까요. 근데 저는 아버지 말을 안 들었죠. 어느 순간부터 제가 배우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물론 아버지가 쿨한 분이셔서 엄청나게 반대를 하지는 않으셨지만, 부모님의 반대에도 배우라는 길을 계속해서 걸어왔고, 여기까지 왔네요.
= 주승 연기를 중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되게 무탈하게 잘 해온 것 같아요. 배우로서 꾸준히 작품을 해왔으니까. 그래서 배우라는 꿈을 위해 뭘 포기했느냐 물으면 잘 모르겠어요. 근데 배우로서 최선을 다했느냐 생각했을 때 그러지 못한 부분도 분명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있었거든요. 뭐랄까.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는데, 이제는 조금 준비된 자세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만약 내가 더 잘돼도 이제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성환 좀 덧붙이자면, 제 이름 앞에 ‘20년 무명 청산’ 이런 표현이 붙기도 하는데, 제 마음속에서만큼은 저는 무명이 아니었거든요. 사실 제가 중간중간 조연으로 터뜨렸던 작품들이 많이 있어요. <통 메모리즈>처럼 프로필에는 안 나오는 작품들도 있고요. 이번에 방송이 화제가 되면서 <스토브리그>,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같이 제가 과거 출연했던 작품들이 언급이 되곤 하는데, 그렇게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만나서 버틸 수 있었고, 지금까지 연기를 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타지에서 함께 고생한 서로에게 칭찬 한마디씩 해준다면요?
- 성환 영태는 늘 전전긍긍하는 승주와 달리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거든요. 사실 실제로도 제가 영태고 영태가 저여서, 다음 날 촬영이 없다 그러면 촬영이 힘드니까 맥주도 마시고, 쓰러져서 자기도 하고 그랬는데 주승이가 가운데에서 중심을 잘 잡아줬죠. 승주의 감정선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인데, 주승이는 한 시간 반 동안 영화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을 가졌어요.
= 주승 형이 저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아직 속에 소녀 감성이 있어요. 사람이 좀 말랑말랑해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는데, 형이랑 연기하면 되게 편해요. 사실 보통 형 정도 연차가 되면 후배들한테 되게 어려울 수 있거든요. 근데 형은 후배들한테도 친구처럼 대해줘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요. 형이 자유롭게 날것의 연기를 해서, 저도 덩달아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고요. 그동안 되게 건조하고 진지한 역할을 많이 맡다가 이번에 어떻게 보면 만화 같은 영화를 찍게 돼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형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승주와 영태를 통해 두 분의 꿈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아요. 앞으로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 성환 아직 배우로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저는 주인공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주연, 조연을 나누기보다는 여러 가지 장르를 많이 경험해보고 싶어요. 스릴러, 로맨스, 코미디 어떤 장르든요. 전 아직 제가 꿈을 펼치기엔 젊다고 생각하거든요.
= 주승 꿈의 꼭짓점은 없는 것 같아요. 늘 다음 작품이 꿈이고, 다음 작품이 끝나면 또 그다음 작품이 꿈이 되는 거죠. 매번 작품이 끝날 때마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이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을 많이 알게 돼서 저는 배우라는 직업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제가 맡은 역할들을 통해서 세상을 공부하고,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해나가는 그런 배우가 됐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