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판매원은 왜 다 남성이냐고, 묻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과거 여성 판매원도 있었지만, 여성 홈리스의 경우 장시간 거리에서 판매하는 것에 남성 판매원에 비해 더욱 어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여성 홈리스들이 거리 판매 외에 잡지로 독자들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성 홈리스들이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 것이 바로 잡지 포장 업무인데요. 정기적으로 빅이슈 사무실을 찾아 정기구독자에게 발송할 잡지를 포장하는 업무를 여성 홈리스들이 맡고 있습니다. 비록 생활비도 안 되는 정도의 수익일지 몰라도 이와 같은 일자리 경험은 ‘일’을 찾기 어려운 여성 홈리스에게 사회로 돌아갈 자신감을 주기도 합니다. 내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일을 하러 갈 일터가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니까요. 또 노숙 상황에서 벗어나 자립을 꿈꿔볼 좋은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신간을 기다리고 있을 구독자들을 생각하며, 포장 작업이 한창인 이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여기 모인 권미정, 최수림, 박윤미(모두 가명) 씨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글. 안덕희 | 사진. 김화경
여성 홈리스로서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오늘 인터뷰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빅이슈 사무실이 있는 성수동까지 오는 길이 멀지는 않으셨어요?
- 미정 저는 시흥에서 왔어요. 시화 쪽이요. 빅이슈 사무실에 오는 날은 지하철 타고 놀이 삼아 와요.(웃음) 창밖으로 보이는 푸르름이 좋아서, 그런 거 보면서 와요. 이 작업에는 꾸준히 오랫동안 참여했어요.
= 윤미 저는 홍제동에서 와요. 빅이슈 사무실이 얼마 전까지 불광역 근처에 있었잖아요. 그때는 가까웠는데 지금은 좀 멀어졌어요.
- 수림 저도 불광동에 있을 때부터 왔었어요. 계속 참여했던 건 아니지만, 포장 작업할 기회가 생기면 빅이슈에 오곤 했었어요.
어떤 계기로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되셨어요?
- 윤미 제가 지금 서대문구에 있는 열린여성센터에서 지내고 있어요. 센터 실무자 선생님들께서 《빅이슈》 포장 작업을 추천해주셔서 해보게 됐어요. 올해 3월에 처음 작업하러 왔었어요. 이제 두 달 정도 됐네요.
= 수림 저도 거기 같이 있어요. 저는 빅이슈가 불광역에 있을 때부터 했으니까… 2022년에 처음 시작했네요.
- 미정 저는 지금은 센터에서 나와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는데요, 저도 전에 센터에 있을 때 그곳에서 소개해주셔서 빅이슈에 오게 됐었어요. 아, 저는 연희동에 있는 디딤센터에 있었어요.
열린여성센터나 디딤센터 모두 여성 일시보호소지요. 당장 머물 곳이 없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센터인데, 열린여성센터에는 몇 분의 여성 홈리스가 머물고 있어요?
- 수림 정원이 30명인데, 현재 30명까지는 안 되고요. 스무 명 정도 있어요.
《빅이슈》 포장 작업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여성 홈리스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진짜 그런가요?(웃음)
- 미정 센터에서 자립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소개해주시거든요. 주방 보조니, 청소 일이니, 여러 부업을 해봤는데요. 그런 일들보다는 이 작업이 쉬워요. 그러니까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죠.
= 수림 저는 센터에 오기 전, 원래 용인에 살았거든요. 그쪽엔 물류센터가 많아서 물류 일을 했었어요.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주소지 라벨 작업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주소지 붙이고 잡지 넣고 하는 이런 작업이 괜찮아요. 오늘 작업도 포장 봉투에 주소 라벨 붙이는 거니까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와서 세 시간씩 하고 가는데요. 이 점도 좋아요. 다른 일은 보통 여덟 시간씩 일해야 하잖아요. 짧게 일하니 좋지요.
- 윤미 이 작업은 단순 반복이잖아요. 하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져서 좋은 거 같아요.(웃음)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세요?
- 윤미 신간 나오는 날과 나오기 전날 두 번 작업을 하는데요. 전날엔 주소 라벨링 하고요, 빅이슈 판매원들이 판매지에서 들고 있거나 전시해놓을 홍보물을 코팅하는 일을 해요. 그러고 다 하고 나면 주변 정리를 하고요.(웃음)
= 수림 신간 나오는 날에는 봉투에 잡지를 넣는 작업을 해요.
- 윤미 봉투에 신간 넣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이 일도 그렇고 그 일도 그렇고 다 재미있어요.
작업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 윤미 저는 크게 어려운 건 없어요.
= 수림 저한테 가장 어려운 건… 멀어진 거리요.(웃음) 빅이슈가 성수동으로 이사한 후 오기가 좀 멀어졌지요. 일에 관련해서 스트레스 받고 그런 건 없어요.
- 미정 저는 나이가 있다 보니, 눈이 침침해서 그게 좀 그래요. 그래도 여기 담당자분이 잘 가르쳐주시니까 괜찮아요. 제가 남들보다 손이 느려서 빨리빨리 못해내는데, 천천히 하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냥 재미있어요.(웃음)
고시원에서 지내는 건 어떠세요?
- 미정 제가 있는 고시원은 여자 전용이 아니고 남자들도 있는 고시원이니까 스트레스를 받아요. 남자들이 그렇게 장난을 쳐요. ‘내가 밥 사줄게, 같이 먹으러 갈까?’ 막 이런 식으로 장난해요. 그런 장난에 스트레스 받아요. 제가 원래 부산 쪽에서 살았거든요. 서울로 온 지 1년 됐어요.
고향이 부산이세요?
- 미정 아니요. 원래는 서울에서 살았어요. 서울에서 학교도 다니고 직장도 다녔는데 결혼하면서 부산으로 내려갔지요. 그쪽에는 운동화 제조 회사가 많아요. 부산으로 이사하고는 그런 데 다녔었어요. 그런데 그런 공장 일은 냄새가 심해요. 운동화 밑창 붙이고 이러니까 본드 냄새, 고무 냄새가 많이 나요. 임신하기 전까지 다니다가 임신하고는 못 다녔어요. 그리고 봉투 공장에서 쓰레기봉투도 만들고 검정 비닐봉지도 만들고 그랬어요. 시골 비닐하우스에 가서 일도 하고요. 신랑하고 아이랑 저, 이렇게 셋이 그래도 잘 살았는데 남편이 돌아가시고 혼자 되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미우나 고우나 싸우고 그랬던 세월이 그립고 그래요. 오갈 데 없이 거리에 나앉고 보니 많이 외롭고 서글펐어요.
센터에서 지내는 건 어떠세요?
- 윤미 센터에서 지낸 지 3개월밖에 안 됐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까 불편한 것도 있지요. 거기에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마음이 아픈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분들과 함께 지내려면 힘들죠. 근데 혼자 지내는 것보다 나은 점도 있긴 해요.(웃음)
= 미정 센터에서 쓰레기 모으는 사람도 봤어요.
그 사람은 저장강박증이 있었나 보네요.
- 미정 그런 사람은 사물함이고 장롱이고 어디에나 쓰레기를 모아둬요. 냄새나고… 공동생활에서 그러면 같이 지내기 힘들어요.
= 수림 저는 센터에서 지낸 지 2년이 다 돼가거든요. 전 여기 센터가 처음이었는데 괜찮았어요. 한 방에 두 명이 지내는데 제가 ‘룸메’를 잘 만났어요. 2년이나 센터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게, 그게 참 중요했지요. 재활과 자활을 돕는 센터라서 일자리도 알선해주시고. 소장님이 워낙 좋으시고 실무 선생님들도 잘해주세요. 특히 저희 센터 밥이 맛있습니다!(웃음)
- 윤미 맞아요. 밥이 너무 잘 나와요. 간식도 잘 나오고요. 저 여기 와서 살쪘어요.(웃음)
포장 작업 말고, 다른 일은 어떤 것 해보셨어요?
- 윤미 센터에서 자활 일을 하거든요. 센터 안에서 분리수거 하고 계단 청소 같은 거 해요.
= 수림 처음에 센터 오면 취업을 바로 하기 어려우니까 그런 일부터 시작하는 거죠. 놀고먹으면 안 되니까요.(웃음)
- 윤미 저는 지금 공공근로 신청하고 결과 기다리고 있어요.
어떤 공공근로를 신청하셨어요?
- 윤미 박물관하고 아동센터에 신청했는데요. 박물관에서는 안내하는 일을 하고 아동센터에 가게 되면 등하교 돌보미를 하게 될 것 같아요. 공공근로를 하게 되면 7월부터는 그곳으로 일하러 다녀야 하니까 빅이슈에는 못 오겠네요.(웃음)
= 수림 누워만 있고 활동을 안 하면 센터의 다른 사람도 영향을 받아요. 따라 하게 되거든요.(웃음) 저는 공공근로를 1년을 했거든요. 북가좌동 주민센터에서 ‘알리미’ 일을 했어요. 서대문구청에 스마트정보과라는 부서가 있어요. 거기에서 노인분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쓰시는 방법 알려드리는 강좌를 열었었는데요. 거기 보조 강사로 일했어요. 그러면서 어르신들 대하는 법을 좀 배운 거 같아요. 그리고 센터에 있으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거든요. 아, 저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어요. 카페에 취업해서 이틀간 일해봤어요.(웃음) 취업이 돼서 나갔는데 너무 바쁜 거예요. 큰 빌딩 안에 있는 카페였는데, 점심시간이나 이럴 때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가는데, 너무 정신없어서 제가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요즘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나요?
- 윤미 저는 솔직히 재미있는 게 없어요.(웃음) 아직은 생활이 안정된 것도 아니고 불안정한 상태여서 재밌는 게 없어요.
= 수림 제가 워낙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좋아하는 것도 많은데요. 룸메랑 사이가 좋아서 자전거 타고 같이 여기저기 다니거든요. 지난번에는 홍제천 따라 망원동까지 갔었는데요. 난지캠핑장까지 따릉이로 갔었어요. 한강에서 돗자리 펴고 라면도 끓여 먹고 그랬는데 진짜 재미있더라고요.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요.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갖고 싶으세요?
- 윤미 직업이요? 아직은 그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게 급하다 보니까요.
= 수림 다시 물류 쪽 일을 하고 싶은데요. 몸이 안 좋아져서 그게 좀 걱정이에요. 지금은 좀 돈을 적게 벌더라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좋아요. 물류센터에서 몇 년을 일하면서 예비조장까지 했었는데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새벽 12시, 1시까지 일할 때가 있었어요. 그땐 너무 힘들고 몸이 축나더라고요. 일당이 높으니까 돈은 좀 모이는데 건강이 나빠져서 오래는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일당이 적더라도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요. 그래서 요즘 여기저기 면접도 보고 그래요.
‘앞으로 이러이러한 것들을 이루고 싶다.’ 하는 게 있으세요?
- 윤미 집을 얻어서 이쁘게 꾸며놓고 애들 데리고 살고 싶어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요. 지금은 함께 못 지내고 있지만요. 이번에 SH 임대주택 신청했어요. 일단 신청서만 넣어놓은 상태예요. 근데 그게 그렇게 쉽게 당첨이 안 된대요.
= 미정 저도 임대주택 같은 데 들어가게 돼서 안정적으로 살면서 밭도 조그맣게 일궈보고 싶고 닭도 몇 마리 키워보고 싶고 그래요. 시골 생활을 하고 싶어요. 근데 한편 으론 무서울 것 같기도 해요. 나이가 있고 아픈데 혼자 지내는 게 좀 두렵기도 하고 그래요. 나이 먹고 몸 아프고 나니까 모든 게 힘드네요. 힘들지만 외로움을 덜 느끼면서 살고 싶어요.
- 수림 그냥 재밌게 잘 살고 싶어요. 제가 워낙 겁이 많고 그랬는데 이제는 이것저것 좀 자신감이 생겼어요.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고 그럭저럭 좋은 날들을 보내고 있는 거 같아요. 제 마음이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도 또 좋은 말도 해줄 수 있고요. 센터에 오고 처음엔, 저도 쉽지 않았어요. 누구에게나 적응의 시간은 필요하니까요.
한국에서 여성 홈리스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수는 매우 많은데요. 남성 홈리스처럼 거리보다는 공원 화장실이나 후미진 골목 안 등 사람들 눈에 덜 띄는 곳에서,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아서인 것 같습니다.
- 수림 여자 홈리스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센터에 처음 들어갔을 때 ‘노숙인’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 붙어 있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고 놀랐어요. 그땐 ‘아, 내가 노숙인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웃음) 저는 거리 노숙은 안 해봤었어서 ‘노숙인’이란 말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던 거죠.
= 미정 나도나도.(웃음) 저도 센터에서 좀 충격이었어요. 정말이지 엉망진창인 아줌마들도 보고, 막 괴로워하는 것도 보고, 불같이 화내는 것도 보고. 괴짜들도 많고, 몸도 맘도 아픈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또 그 사람들을 나쁘게만 생각할 수는 없더라고요. 마음이 힘들어서 괴로운데 하소연할 데는 없고… 그래서 그러는구나,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요.(웃음)
- 윤미 여성 홈리스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남성 노숙인 보호시설은 많은데 여성 시설은 별로 없어요. 시설도 더 생기고 지원도 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