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현주
현재 넷플릭스에서 국내 시리즈 1위에 랭크된 〈하이라키〉는 7부작의 학원 미스터리 로맨스 드라마이다. 흥행 중이지만, 이 드라마를 다 보면 이런 의문만 남는다. 대체 이 작품을 통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물론 이 질문 자체가 위선적이다. 이런 장르는 학교 폭력과 화려한 파티가 뒤섞인 적당히 자극적인 장면들과 10대의 자아실현 고민을 살짝 얹은 예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로 소비되는 목적으로 제작되고, 그 이상의 윤리적 교훈을 바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라키〉는 기대가 없어도 실망스러운데, 비슷한 구조의 드라마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맥스턴 홀‒너와 나의 세계〉와 비교하면 이런 불만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
〈하이라키〉와 〈맥스턴 홀〉은 학교를 지배하는 상류층의 아이와 장학생 아이 사이의 계급 갈등과 연애를 그린다는 기본 구조는 동일하다. 〈하이라키〉의 경우에는 상위 0.01%만 다닐 수 있다는 주신고에 장학생이 들어와 죽은 형의 미스터리를 파헤친다는 플롯으로 진행된다. 주신고의 장학생 인한(김민철)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후, 그 빈 자리에 들어오게 된 강하(이채민). 그는 이제까지의 다른 장학생들과는 다르게 학교의 지배계급인 이사장의 손자 김리안(김재원)과 그의 친구들에게 기죽지 않는 모습으로 시선을 끈다. 거기에 리안의 옛 여자 친구이자 주신고의 여왕으로 꼽히는 정재이(노정의)가 돌아오자 하, 재이, 리안 사이에는 또 다른 구도가 만들어진다. 하와 재이는 가까워지지만, 재이에게는 남들에게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고 그 때문에 협박받는다.
6부작 독일 드라마 〈맥스턴 홀〉도 주인공은 루비 벨(하리에트 헤르비크‒마텐)이라는 장학생이다.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고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는 루비는 맥스턴 홀을 무사히 졸업해 옥스퍼드에 진학하는 것만이 꿈이다. 그러다 어느 날 루비는 학교의 지배층에 있는 보퍼트 집안의 리디아(소냐 바이서)의 비밀을 알게 되고, 리디아의 쌍둥이 동생인 제임스(다미안 하르둥)는 루비의 입을 막기 위해 거래를 시도하다가 오히려 경멸을 사서 둘은 대립한다. 학교 파티 준비 위원회에 들어간 제임스와 루비는 서로 끌리며 가까워지지만, 영국 굴지의 패션 회사 사장인 제임스의 아버지는 루비를 모욕한다.
두 드라마의 유사성은 이제까지 10대 학원물에서 본 클리셰의 반복이다. 귀족 사립 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온 학생과 귀족 학생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70년대 이케다 리요코 만화 〈오르페우스의 창〉에도 있을 정도로 고전적인 설정이다. 다만 시대에 맞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디테일은 조금씩 달라진다. 일본 만화 〈꽃보다 남자〉의 경우에는 학교 내 따돌림에 대한 담론이 사회적 주목을 받던 시기에 등장했고, 미국 드라마인 〈가십 걸〉은 SNS가 폭발적으로 도약하는 시기에 만들어지며 셀러브리티 문화의 형성을 그리는 효과는 있었다. 〈상속자들〉은 〈가십 걸〉과 〈꽃보다 남자〉를 한국형 입시 전형 제도에 끼워 넣어 김은숙 작가의 언어로 재생한 한국형 쁘띠 재벌물이다. 2018년에 넷플릭스에 공개된 〈엘리트들〉도 근처 상류층 사립 학교로 전학하게 된 세 명의 전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으로 마약, 섹스, 살인 등이 등장하는 넷플릭스 학원물 문법을 보여준다.
학원물에서도 재벌이 그려지는 세상
〈하이라키〉는 〈엘리트들〉식 구도를 그대로 따르면서 언어만 한국어로 만들었다. 드라마 속 도쿄와 뉴욕, 스페인의 학교들도 그다지 현실적이진 않겠지만, 〈하이라키〉에 나오는 풀파티, 레이싱, 럭비를 포함한 학생들의 문화 자체는 한국적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고, 경제 계급이 승인한 노골적인 신체 폭력도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진다. 똑같이 학교 내 위계 문제를 다룬 티빙의 〈피라미드 게임〉도 인위적인 설정을 썼지만 〈하이라키〉에 비하면 극사실주의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청소년 소설 원작인 〈맥스턴 홀〉은 독일에서 제작해 독일어로 진행되지만, 드라마 속 배경은 영국으로 애초에 현실감을 분리해버렸다. 외부자적 시선에서 바라보는 영국의 이미지만을 차용했고, 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그들이 기획한 행사의 콘셉트만큼이나 레트로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현대의 학원물을 보는 시청자들은 애초에 이런 정도의 공간, 시간적 위화감은 너그럽게 보아 넘긴다. 겉으로 계급 갈등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학교를 뛰쳐나가 혁명에 뛰어드는 급진성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잘 만든 학원물은 그 자체로 계급투쟁물이다. 평등을 가르치는 교실에서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급식을 먹으면서도, 청소년들은 거기서 선명한 계급의 분리를 느낀다. 학교 안의 계급은 성적이나 운동 능력, 사회 친화력 등 학교 내의 내적 운영 원리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출신 계급, 즉 부모의 경제 능력이 아이들에게 대물림되는 방식으로 정해지는 현실을 날카롭게 그리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거기 더해 학원 로맨스는 계급 분리에 질문을 던지는 장르이다. 이제 다른 계급 출신의 사람들이 동등하게 만나서 자연스레 사랑에 빠질 수 있는 환경 자체가 학교밖에 없다.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동류로 섞이지 않고 직장 내의 갑과 을처럼 만나는 상황만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러나 학교 내에서 공존하기만 할 뿐, 공감하지는 못하는 아이들끼리 만나 사랑에 빠지면 거기에서 성장이 일어난다. 10대는 변화의 마지막 기회이다.
〈꽃보다 남자〉가 심각한 폭력성이 있어도 계속 리메이크되는 학원물의 고전으로 남은 건 “사랑으로 인해 변화한다.”는 로맨스의 틀에 인간적 성숙이라는 청소년물의 모티브를 어떻게든 살려냈기 때문이었다. 〈맥스턴 홀〉은 새롭진 않아도 이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처럼 서로를 오해하던 루비와 제임스는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한다. 현실을 개척하려는 루비에게 감화받은 제임스는 자기 계급의 허위 의식을 직시하며 각성한다. 반면 〈하이라키〉는 하와 재이 사이의 진정한 연대감을 구축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계급 투쟁에 나선 강하의 도전이 그려졌다고 하더라도, 드라마는 김빠진 탄산음료 같은 파티 묘사에 몰두하고 주신고를 지배하는 상류층 아이 네 명의 서사를 강조한다. 그들끼리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에는 딱히 공감도 가지 않고, 족내혼적인 관계만 강화할 뿐이다. 하와 재이의 관계성이 약하다 보니, 마지막 재이의 선택도 도식적인 결말로 보인다. 심지어 15세 이상 관람가로 나오면서 자극적인 요소도 밋밋하게 깎여나갔다.
무엇보다도 〈하이라키〉에서는 한국 드라마에 면면히 흐르는 재벌 사랑의 정신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이전의 재벌 드라마들은 그래도 계급을 넘을 수 있다는 겉치레 정도의 제스처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의 여왕〉에서 봤듯이 재벌 총수가 비자금으로 9천억을 조성해도 그 집안이 도로 기업을 찾는 게 해피엔딩으로 그려진다. 한번 정해진 위계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하이라키〉 속 세계에서는 학교 폭력을 저지르거나 묵인한 아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재벌 아이들의 자기 연민만 있을 뿐이다. 물론 재벌들도 인간이니 상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누구 보고 누구를 동정하란 말인가? 모두가 워너비 건물주인 세상에서는 노동계급에 이입하기보다는 재벌에 몰입하기 더 쉬울 수도 있겠지만, 학원물에서까지 보는 건 입맛이 쓰다.
박현주
작가, 드라마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