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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25

녹색빛 - 해변이 사라지고 있다?

2024.07.25

무너져 내린 하시동·안인 해안사구

글. 박성준 | 사진제공. 녹색연합

강원도 강릉시 하시동리 해변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모래언덕이 있다. 하시동·안인 해안사구로 불리는 이곳은 수천 년간 남대천과 군산천을 따라 흘러온 모래가 해변에 쌓이고 바람에 날리기를 반복하며, 2,400여 년 전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2km 길이의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모래언덕은 축구장 32.7개와 맞먹는 면적(233,964㎡)

으로 동해안에서 가장 넓은 해안사구이기도 하다. 고운 모래 위로 뿌리내린 다양한 사구식물과 수달, 삵, 물수리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독특한 생태계를 간직하고 있어, 2008년 환경부에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지난 1월, 내가 본 해안사구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해변이 무너져 내려 2m 높이의 침식 단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던 산책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쓰려져 있었다. 해변 입구는 출입 금지 표지판과 붉은색 테이프로 가로막혀 있었고 그 너머로 복구 작업을 위해 동원된 굴삭기와 돌무더기가 파도가 들이치고 있는 해변 옆으로 위태롭게 서 있었다.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은 하시동·안인 해안사구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이유를 강릉 안인화력발전소 공사의 영향이라고 말한다. 해안사구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안인화력발전소는 2020년부터 해상 방파제 공사를 시작했다. 석탄을 실어나를 대형 수송선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을 만들기 위해서다.

하시동·안인 해안사구는 드넓은 백사장과 해안사구에 조성된 소나무 숲을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이자 주민들의 휴식처였지만, 공사 시작 후 발생한 급격한 침식으로 산책로가 무너지는 등 안전 문제가 발생해 몇 년째 출입이 금지된 상황이다. 이에 발전소 사업자인 삼성물산과 관계 기관에서 급히 모래를 보충하고 마대 자루를 쌓아 침식을 막아보려 했지만, 한번 교란이 생긴 해변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해안선을 따라 돌을 쌓고 콘크리트 방파제를 설치하는 침식 방지 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해안사구에 가득 핀 갯메꽃

바다에 뛰어들기 , 먼저 해야

연안은 생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에서 경계를 형성해 파도와 태풍으로부터 농지와 주거지를 보호할 뿐 아니라, 육상의 물을 정화하고 저장한다. 특히 해안사구는 척박한 모래에서 적응해온 사구식물과 그곳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곤충과 동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360개 해안 중 44.7%가 우심(우려, 심각)등급으로 침식으로 인해 해변이 무너져 내리거나 면적이 줄어든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17년 국립생태원의 조사에 따르면 해안사구의 면적이 1970년대와 비교해 36.5%가량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해변이 깎이고 사라지는 현상의 원인을 무분별한 연안 개발과 기후변화에서 찾는다. 해변에서 침식과 퇴적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지금처럼 침식이 일어난 후에도 장기간 회복되지 못하는 것은 곳곳에 설치된 시설물로 인한 연안 환경 교란*과 빠르게 변화한 기후조건** 때문이다.

정부는 2000년부터 연안 침식에 대비하기 위해 계획을 수립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해왔다.*** 그러나 주로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 콘크리트 시설물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대비책이 이루어지면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녹색연합은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침식 저감 시설물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54개 해변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전체 조사 지점 중 34곳에서 저감 시설 설치 이후에도 침식이 계속되거나 구조물이 무너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몇몇 해안에서는 오히려 시설물 설치 이후 더욱 침식된 곳도 있었다.

울진군 금음해변. 줄어든 모래사장 위로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다.

해결책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해안선 후퇴 정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단계라고 주장한다. 연안 가까이에서 진행되는 개발을 억제하고 이미 설치된 시설물은 해안에서 멀리 이동시키는 것. 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모래 흐름을 회복하고 바다와 육지 사이에 충분한 완충 공간이 조성되도록 돕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영국, 프랑스는 해안선 후퇴 정책을 도입해 해안가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완충 공간을 복원하여 태풍과 침식 피해에 대비하고 있다.

큰 변화가 필요한 해결책이다. 특히 연안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요구된다. 변화가 생기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민들이 침식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정부가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여름휴가로 바다에 갈 계획이 있다면, 바다에 뛰어들기 전 내가 만난 해변이 어떤 모습인지 찬찬히 살펴주기를 부탁한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는 구간은 없는지, 지난번보다 바다까지의 거리가 짧아지지는 않았는지 관찰해보고 혹시나 이상한 점이 있다면 해당 시·군청에 연락해 알리자. 해변이 이상하다고. 많은 시민들이 바다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정책을 바꾸고 바다를 회복하는 움직임이 된다.

*

강과 하천에 설치된 댐과 보는 바다로 유입되는 모래의 양을 감소시키고 항만, 방파제, 대형 발전소와 같은 해안 돌출 시설물은 해변을 따라 이동하는 모래의 흐름을 방해한다. 또한 해안도로, 관광시설과 같이 해변을 매립해 지어지는 시설물과 직접적인 모래량 감소를 야기하는 바닷모래 채취도 주요한 원인이다.

**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높은 파도와 태풍 발생 빈도가 잦아지면서 침식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2020년 유엔에서 발간한 기후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강도 높은 태풍이 더욱 자주 발생할 것이며 해수면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연안 침식 또한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연안정비계획으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1조 1819억 원이 투입되었고, 2020년부터 2029년까지 2조 891억 원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박성준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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